「천재 유교수의 생활」이 애장판으로 발매되었다. 이 만화가 아직 느리게나마 연재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의 일이다. 이 책을 모을까 고민만 하고 있던 나같은 독자에게는 정말 매력적인 발매지만(그리고 이미 구매했다. 아, 애장판 완전판 이런 말에 덥석덥석 낚이면 안되는데.) 사실 출판사의 행태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먼저 발매가 되기는 했다.

  이 책은 경제학자 유택 교수와 그의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마치 「요츠바랑」이나 「충사」처럼 특별한 위기가 없는 상황들을, 담담한 그림체로 아주 담백하게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그 일상은 대개 유교수의 관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예컨대 도둑 고양이가 길가의 음식물 쓰레기를 집어 뜯는 것도 그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관찰을 통해 다시 창조된다.

  결국 유교수가 없으면 이 만화의 모든 사건은 의미가 없게 된다. 오랜 기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유교수, 아무래도 유교수를 제일 잘 설명하는 표현은 이 만화책의 날개에 적힌 글일 것이다.

  "Y대학 경제학부 교수 유택. 길을 갈 때는 반드시 우측통행, 횡단보도가 아니면 건너지 않는다. 싸고 맛있는 전갱이 한 마리를 살 수 있다면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걸어다닌다. 이 책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 자유경제법칙에 충실한 어느 학자의 극명하고 유쾌한 기록이다."

  만화를 보다보면 저 글귀 중 어느 하다도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을 갈 때 우측통행을 하는 것을 넘어 걷는 속도마저 일정해야 했는데, 마치 인간 시계였다는 칸트의 재림이 아닌가 싶다. 또 하필이면 저 말이 거짓이 아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참 곤란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행히(?) 유교수의 아내는 유교수와 매우 다르다. 유교수가 쌓아 놓은 책을 보고 곤란해하는 일반적인 가정 주부이다. 사실 일반적인 가정 주부라는 말에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로맨스라고는 한 점도 없는 유교수의 괴상한 생활 방식을 참아내며 딸 넷을 키워냈다. 살아있는 보살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대인배다.

  요즘 유행하는 청소년용 경제 교육 만화도 아니고, 유교수의 학문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대사나 생각,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글귀로 추측해 봤을때 정통 자유주의 경제학일 가능성이 높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아니다. 비용, 이득, 손해, 효용, 거래, 시장 등의 단어로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고 세계를 가늠하는 학문이다. 그가 케인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고 'FTA'나 'GATT 체제'의 유용성을 논하는 만화책이 되지 않는다. 어느 인터넷 서점의 어느 리뷰를 살펴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 찬 만화책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는 경제학에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정치나 문화 등 어느 분야에도 다 적용될수 있는 사상이다. 이 나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자유가 권력에 비례해서 나눠지고 있을 뿐이지만. 그리고 그 자유주의는 일본의 대중 문화 가장 아래에 깔려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만화에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소년만화에서 그렇다. 국가 단위의 영광을 바라는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정리도 힘든 마당이니까.

  유교수의 자유주의는 일반적인 소년만화의 자유주의보다 표면에 드러나 있다. 유교수는 동시에 뛰어난 관찰자이며, 탐구심이 넘치는 학자이다. 유교수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인물을 파악하려 하지만, 동시에 그 관찰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긍정적인 답을 끌어내려 하기도 한다. 요컨대 그는 서로에게 최대의 효용을 끌어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길가에 지나가는 도둑 고양이와의 관계도 그렇다. 그는 고양이에게 4개들이 전갱이 세트 중, 한 마리를 내줌으로써 고양이에게는 식사를 제공하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기지 않게 하여 쓰레기 냄새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한 독서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 서로 효용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아야 한다. 상대가 어떤 것인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의 지금 상태는 어떤지. 유교수가 남을 관찰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이 만화에서 웃음을 주는 여러 장면들은, 사실 유교수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에서 온다. 그는 극도록 합리적인 시선에서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듯이 세상의 일은 늘 합리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수는 그런 괴리에서 멈추려 들지 않는다. 그는 현상을 보고, 그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 그러니까 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유교수의 자유주의는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지독한 원칙주의자인 그는 결코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 원칙에는 법도 포함되기 때문에, 그는 교통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타인의 개성에 대한 존중이 곧 자기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치 볼테르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혹은 칼 포퍼가 일본의 경제학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그의 딸 세츠코의 남자친구가 지독한 펑크 풍 복장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고, 오히려 그가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계속 유지할수 있다면 존중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남을 관찰하듯이, 타인이 자신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요 몇년간 우리에게 자유주의라는 말은 '신자유주의'로 익숙하다. 근 몇년간 일련의 경제 정책은 저 사상을 따른 것이다. FTA, M&A, 비지니스 프렌들리 같은 단어들은 비용, 이득, 손해, 효용 같은 단어보다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시류에 맞춰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새로 태어난 이 괴상한 자유주의의 바람은 모순과 함께 참패하고 이제 세계적으로 멎어들어가는 것 같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이를 자처하는 인간들이 가득하다. '원칙'을 넘어 '능력'이라는 말. 그리고 '실용'이라는 말은 결국 유교수가 굳게 지키고 있는 '원칙'이 빠져있다. 본인들 입으로도 그렇게 주장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은 칼날같은 폭풍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상 중,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만든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중 현대까지 살아남은 것은 모두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원칙을 담고 있다. 이른바 휴머니즘이다. 자유주의도 그랬다. 정치적으로는 왕이 지배하는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태어났고, 경제적으로는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문화적으로는 표현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주창된 것이다. 그리고 유교수가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 누구보다 원칙을 굳게 지키고 있는 사람의 자유주의를. 우리는 그런 유교수의 생활을 보고 따듯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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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수가 분한 이지봉 선생님이 자꾸 묻는 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뭐라고?" 그러면 제자들이 반사적으로 대답해야 하는 말. "운동하는 것들 무식하다는 소리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태권도를 하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꽤 재능이 있었고, 본인도 성실했다. 대회에 나갔다 하면 상을 타왔다. 나는 성적이 꽤 좋은 편에 속했고, 그래서 우리는 진짜 중딩스러운 실없는 대화를 자주 했다. 내가 "넌 공부만 하냐, 태권도를 해!" 이러면 그쪽에서 "공부도 못하는 새끼가..."하는 식으로 받는 옆에서 보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화인데, 우리는 재밌다고 자주 해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운동을 관두었다는 것이다. 사실 운동 하기가 싫었단다. 지금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암암리에 존재하는 폭력이 싫었던걸까, 한계에 맞딱트린걸까(그럴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던걸까? 지금 그를 만나 물어보고 싶다.

  단순한 지식 양을 묻는 것이라면, 사실 스포츠 선수들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스포츠 선수가 존재하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들은 '전문인'으로서 자신들이 다루는 용구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학문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힘든 이유와 같다.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스포츠에서도 한 분야의 대가가, 다른 운동에서도 잘한다는 법이 없다. 운동능력으로만 해결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무엇보다 자신들의 종목에 대해서는 깊게 사고해야 한다. 그 중 가장 깊게 통찰한 자가 최고가 되는 것이다. 축구에서 디 스테파뇨가 한 말은, 카뮈가 한 말보다 단연 더 잘 알려져있다. 어떤 학문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말이다.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이 한 말만큼 권위있는 말이 있는가, 농구 선수가 아닌 사람의 말이 농구 선수의 말만큼 가치가 있게 여겨지던가? 스포츠 선수에게 '무식'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 그가 그의 종목을,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먼저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교육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무식한 운동선수라는 것은 그러한 '교육'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을 강제로 교실로 몰아넣은 후 수업을 듣게 한다고 운동선수에게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나오듯이,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은 교육자 개인의 만족도 못 채운다. 스코어를 넘어, 이기는 방법을 넘어 아이들이 자신들의 스포츠와 교감을 하게 해야 할 것이다. 브라질의 어린이들은 가난하지만, 그렇다고 악으로 축구를 하기 보다는 즐거워서 축구를 한다.

  「킹콩을 들다」에서 역기와 삶의 무게를 논하는 장면이 있다. 돈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종목 중 하나인 역도를 선택한 영자는 그 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하필 이 영화가 역도에 관한 영화였다는 것은, 단순히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 이상의 함의가 있어 보인다. 신파가 싸구려든 아니든, 삶의 무게랑 겹쳤을 때 안 울려고 발악을 해도 눈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이래서 스포츠 영화가 스포츠보다 재미없다고 악다구를 쓰면서(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실이다.), 신파는 싸구려라면서, 신파가 넘치는 스포츠 영화를 계속 보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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