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사모 분량을 줄이고 정몽준과의 단일화, 후단협, 대선을 넣는 것이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나름 수긍이 가는 주장이지만, 그래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이 있다.

정치인 지지자 집단 중 유독 공격적이고 꽉 막혔다고 비난받는 노사모인데, 사실 생각해보면 노사모만큼 극적인 외연확장에 성공한 경우가 없고, 그 방법은 놀랍게도 설득이다. 영화에서 노사모는 경선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으로 대의원과 이인제를 제외한 타 경선주자의 지지자들을 설득한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노무현이여야 하는지에 방점을 찍으면서 당내 지지율 2%의 후보를 대선후보로 만들어낸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의 지지자층 중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지자 아닌 사람들의 설득에 나선 것은 노사모가 유일할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야합으로 세력을 불린 YS, 지지층이 차마 스스로 지지한다고 말도 못 하던 DJ, 경선 끝난 시점에서 이미 이겼던 MB, 마지막으로 박근혜...특히 박근혜 극렬 지지층은 다들 잘 알다시피 많이 좀...진짜 박근혜 지지층이 단 한 번이라도 꼽질이 아닌 설득이라는 것을 한 적이 있는가? 대통령 아닌 사람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으로 치면 홍, 안, 유, 심 다 해당된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혹시 적극성이라는 게 때로는 남을 설득하고, 때로는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양날의 검일까? 쉬운 설명인데,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 지지층이 매우 적극적인데, 대개 설득에 실패하거나 교조적이라고 욕만 먹는 것을 보면...그냥 노무현 지지층이 두 가지 성격을 다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2. 문재인 지지층도 비슷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 문 지지층과 진보언론이 사소한 것부터 좀 큰 것까지 별걸 다 가지고 싸우느라 바쁜데, 그 원인이 진보언론이 생각하듯 문 지지층의 쪼잔함과 종교성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문 지지자들이 이겼음에도 승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 화가 나있다는 것이다.


문 지지층은 12년 대선부터 지난 5년간 문재인과 친노와 엮여 박터지게 까이고 조롱당했다. 일베에게는 온갖 합성으로 까이고 반대편에서는 깨시민이라고 놀림받고. 어쨌든 너네는 하는 짓도 글렀고 이길 가능성도 전혀 없다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박근혜 게이트가 있긴 했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는 당의 후보를 15% 이상 박살내지 않았는가? 여기에 지지자들이 공헌한 바가 크다. 촛불로 생긴 에너지를 문재인에 대한 지지로 전환시키기 위해 정말 애썼다. 선거전략 중 많은 부분이 이들의 기획이다. '파란을 일으키자' 같은 슬로건과 포스터도 당이 아니라 지지자들 작품이고...


이걸 가지고 양측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 대립을 서로가 왜 안 되는 놈인지 이유를 수없이 찍어내는데, 사실 문재인의 지지층 중 많은 이들은 노무현 특유의 캐릭터와 죽음 빼곤 기억이 희미한 사람들이다. 기억이 희미한 만큼, 예컨대 노무현이 비정규직 문제를 유발시켰기 때문에 절대 노무현을 좋아할 수 없다고 말하면, 화를 내기보다는 "그래 그건 노무현의 실수네"라고 별 고민 없이 넘어갈 사람이 더 많다. 이건 진보 언론들이 본인들 평가가 틀렸고 저들이 주역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대선 다 끝나서 "문재인은 괜찮은데 지지자들이 별로..."라는 태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고. 문 지지자들도 이제 짜잘한 것좀 그만 물고 늘어졌음 좋겠다. 이겼으니까.



3. 마침내 노무현 이야기. 영화는 주로 2002년의 대선 경선만을 다룬다. 광주 경선, 인천 경선 장면은 정말 멋지다. 특히 인천에서 색깔론 공세에서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묻는 장면은 남자인 나도 설레는데 결혼한 여자라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저런 정면돌파하는 태도가 노무현의 인간으로서 가장 멋진 면모이기도 한데, 그것을 떠나 하필 색깔론에 맞서 저런 말을 했다는 데 주목해보자.


평소에 정치논쟁을 거의 안 하고 이야기도 안 꺼내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길어지다보면 결국 북한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보는 것도 짜증난다. 별 상관 없는 이야기에서도 '김씨 왕조'라고 언급을 하고 지나가고, 영화 전에 광고 트는 것처럼 본론 펼치기 전에 '물론 북한(종북)은 나쁘지만'이라고 단서조항을 까는 사람들이 많다. 김정은에게 "꿀꾸리우스"라는 별명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암만 봐도 구린 게 오타쿠들 센스다. 아무도 뭐라 안할 때도 자기들이 찔려서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이 얼마나 나쁘든 정책 이야기하는데 '북한이 나쁘지만'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나? 그냥 건조하게 독재국가라고 하면 될 것이지 굳이 '김씨 왕조'에 '꿀꾸리우스' 같이 온갖 과장된 표현을 섞어가며 자신이 얼마나 빨갱이를 싫어하는지 강조를 해야 말할 자격이 생기나? 누구 허락받고 말해야하나? 다 일종의 자기검열 아닌가? 노무현이 답을 줬다고 생각한다.



4. 모두가 알다시피 노무현은 그 거친 언사에 언론과의 적대적인 관계가 얹어져 큰 고생을 했다. 노무현은 수많은 사람들을 공격하였고, 영화에 경선 상대로 나오는 모든 인물이 노무현에게 한 번 이상 욕을 얻어먹었는데, 특히 중간에 사퇴하는 김중권은 '기회주의자'라고 욕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노무현이 의외로 특정인에게 지속적으로 적대감을 표출한 경우는 별로 없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이회창에게도 그렇게 안 했다. 딱 한 명, 영화의 메인 빌런으로 나오는 이인제만이 그가 거의 십년에 걸쳐 꾸준히 비난한 인간이다. 노무현이 이인제를 싫어했다는 언급은 이 영화에도 나오고, 하여튼 정말 수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인제와 같은 정치인 때문에 나라가 망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이인제는 한때의 카리스마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은 간데없으며, 그 무수한 당적변경 때문에 반쯤은 전국민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현 여권 지지자들도 덕분에 DJ가 대통령 됐다고 낄낄거린다. 나도 영화 보면서 이인제 나올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데....그런 그를 정말 진지하게 악의 축으로 생각했을 노무현을 생각해보면 참 세상일은 모르는 일이다.



5. 이인제가 후보경선토론에서 노무현의 과거 발언을 가지고 공격하는데, 노무현이 "국채로 회사 주식을 매입한 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자"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하고, 노무현은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며 발언의 일부만 떼어서 사람의 사상을 검증하지 말라고 반박한다. 저 발언이 언제적 발언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좀 놀랐다. 김상조 교수에게 물어봐도 고개를 저을만한 생각일 것이다. 언제적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노무현의 대통령 이후 행보를 봤을 때 저 생각을 접은지 꽤 됐으리라 짐작한다.


어디서 나온 생각일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일단 노무현은 70년대에 사시를 붙은 사람이고, 대학을 안 붙었으니 80년대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던 대학 운동권 분위기하고도 크게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학생들을 돕고 그들과 같이 운동을 하다보니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다.


노무현의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그보다도 80, 90년대 초중반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론을 개발하고 갱신하면서 활동한 경제전문가가 별로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그러니까 지금 청문회에서 고생하고 있는 김상조 같은 포지션의 사람이 저땐 정말 더욱 없었을 것이고, 인용할 말이라곤 현실에 강해도 이론에는 약한 동지들 말밖에 없고, 그러니 대선 나올 때쯤에는 상대세력에게 무식하다는 조롱이나 위험분자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의 말이 쌓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게 제일 안타깝다. 정말 혼자 두들겨맞는 수밖에 없다.



6. 그런데 여기서 정치인 노무현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다. 평생을 노동 및 인권 변호사로 살아왔고, 또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지식을 주입받은 노무현이 막상 정치인이 되어서는 '지역주의 청산'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했다는 것은 동물적 감각이라 해야할지 통찰력이라고 해야할지...하여튼 이게 정치인 노무현이 가장 뛰어났던 부분이라고 본다. 저렇게 인식을 하는 사람은 더 있었을지 몰라도 실천을 한 사람은 유일하지 않았는가...


노동 및 인권을 비롯한 여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고, 정치는 의사결정 과정인데, 의사결정에 있어 지역주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니 지역주의와 맞서 싸운 것이다. 아마 지역주의가 타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은 삼당합당이나 DJP처럼 야합이 될수밖에 없다고 본 것 같다.


영화에서 서갑원이 증언하기를, 노무현이 14대 때 참모들에게 김대중을 지지하자면서, 그들이 가장 힘든 지금 도와주고 나중에 당당하게 손 내밀자고 했단다. 감동적이었다. 누가 이렇게 큰 스케일로 말할 수 있을까...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신념이 그를 끝을 알 수 없는 고난으로 내몰았지만, 막상 본인이 모든 것을 단념했을 때는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7. 노무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끊임없이 시대의 모순과 마찰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 삶이 불꽃같이 치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그 모순의 몇몇은 그의 시대에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고, 몇몇은 그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권위라는 게 공허한 것임을 누구보다 열심히 증명해내고 싶어했다. 그 어떤 예술가보다도 노무현이 여기에 공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대세력은 고졸인데다가 거친 언행의 노무현의 권위를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마음껏 조롱햇다. 노무현은 그들을 상대로는 권위를 입증해보이고 싶어하였다.

노무현은 당대 정치인 중 돈에 관해 누구보다도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을 치를만한 유력 정치인이 자금을 그나마 깨끗하게 운용할 수 있게된 것은 제도와 기술이 다 갖춰진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는 대선자금논란 때문에 아끼던 측근을 감옥에 보냈다. 자기에게 엄격했던만큼 친형에게는 엄격하지 못했고, 결국 가족문제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단초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유시민이 말했듯이 그가 새 시대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 시대는 노무현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노무현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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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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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이 창조한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신어(newspeak)'일 것이다. 신어는 오세아니아 정부 ‘영사’가 창제하였다. 신어는 피지배자들에게 모순된 말조차 의문을 품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이중사고’를 실현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독재정부를 영원히 존속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신어는 문법도 어휘도 무척 단순하지만, 바로 그때문에 인간의 감정도 사고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오직 빅브라더의 지배를 굳히기 위해 만들어진 신어는 다른 언어처럼 세계의 거울이 될 수 없었다. 세계와 언어의 이런 차이가 강렬한 아이러니를 낳았다. 이 기괴한 단순함은 <1984>만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아예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영원히 전수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전제가 기저에 깔려있다. 사실 현실의 국가도 신어 같은 시도를 하지 않을 뿐, 언어가 사고에 앞선다는 듯 행동을 하기는 한다. 현실의 국가도 정책을 부드러운 말로 포장한다. 언어를 창제하지는 않지만 종종 언어순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사실 국가만 하는 짓도 아니다. 사회에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단어를 선점하려는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상대가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오염이라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이럴 때 신어가 언어의 중요성의 예시로 종종 튀어나오곤 한다. 마치 소설의 산물이 현실의 예시인 것처럼.


하지만 신어가 정말로 언어가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예시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신어의 보급은 현실세계에서는 비슷한 예조차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정치권력의 힘 때문에 겨우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오세아니아는 대략 2차대전 중에 건국이 됐든지, 결성이 됐든지 한 것 같다. 아직도 국가인지 연합체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의 배경인 1984년까지 대략 40년 동안 신어를 강제하는 것을 넘어 신어로 된 기록을 말살하기까지 했음에도 작중에서는 신어의 보급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작중인물들이 창제자의 의도를 우롱하는 방식으로 신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줄리아가 스스로가 하체 이하만 혁명적이라고 말했듯이.


신어체계를 설명하는 챕터의 시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어의 보급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작중 시점 이후이다. 그러니까 국제적으로는 세 열강의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국내적으로는 사회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 어떤 동력도 잃은 채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지속될 때에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신어가 보급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독재에 순응한 게 아니라, 독재에 순응하게 됐기에 사람들이 신어를 받아들였다. 신어가 완전히 보급된 것은 피지배자들의 생각이 말살됐다는 게 아니라, 빅브라더를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수십년 동안 유지됐다는 뜻이다.


우리가 언어로 사고하고, 또 제때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평생 지적 학습에 장벽이 생긴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단어의 사전적, 사회적 의미에 일일이 지배당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모국어에 쉽게 지배당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단어의 의미를 바꾸려고 하는 것, 특정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같이 언어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언어에 지배당하지는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컨대 언어의 갈등은 언어가 정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마법 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 그 자체하고는 큰 관련이 없다. 우리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언어가 사고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이에 따라 상대방의 언어를 공격하는 일이 무척 효과적이고 선동적이기 때문에, 즉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기 때문에 언어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난다.


<1984>의 신어도 이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대중들의 이중사고를 유도하겠다는 신어의 창제의도는 분명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작중에서 언어는 단 한 번도 사고를 지배하지 못한다. 오히려 신어를 부정했을 때 중벌에 처하는 규범으로만 작동할 뿐이다. 즉 신어는 언어라기보다는 지배규범에 가깝다. 하지만 순응하는 피지배자는 물론 저항하는 피지배자와 신어를 만든 이들조차 이를 결코 인식하지 못한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운명처럼 찾아온 부조리에 저항은 하되 부조리 자체에는 전혀 의심을 품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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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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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20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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