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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섞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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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로버트 루들럼이 쓴 제이슨 본 시리즈 소설은 3부작이었지만, 원작이 있는 이 영화는 사실 3부작이 아닐수도 있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본 아이덴티티만 봐도 그렇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제이슨 본은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자신의 기억을 일부만 찾고는 여자친구인 마리와 재회하면서, 웃고 그리고 끝이난다. 제이슨 본으로 분한 맷 데이먼도 이 영화가 3부작이란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절대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첫 작품의 깜짝 흥행에 성공, 결국 처음 영화가 나온지 6년만에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가 나왔다. '본 얼티메이텀', 본의 최후통첩이라는 뜻이다. 제이슨 본은 하나의 진화하는 생물처럼 영화가 거듭될수록 나날이 발전했고 이제 액션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위의 포스터는 사실 공식 포스터가 아닌, 개봉 전의 홍보용 포스터였다만, 사실 저 포스터만큼 본 얼티메이텀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포스터가 있을까 싶다. 묵묵히 자신의 파괴가 시작된 곳을, 모든 일이 시작된 곳을 바라보고 있는 제이슨 본. 그닥 몸매가 섹시하지도 않은, 패션 센스가 튀지도 않게 수수한 검은 옷차림, 그렇다고 눈에 띄는 미남도 아니고, 이제는 본 시리즈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 이마의 주름은 물론 몸 곳곳에 주름이 생긴 맷 데이먼. 그가 뉴욕을 바라보고 있다.

  본 아이덴티티, 2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한 맷 데이먼은 이 영화를 골랐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린 스파이 제이슨 본은, 정치적 위기에 처한 CIA 산하의 트레드스톤 간부들에게 끊임없이 쫓기고, 자신의 사랑을 만나고, 결국은 기억을 아주 조금 되찾은채 여자 친구와 행복한 도피를 하는 듯 보였다. 말빨도 없고, 무기는 겨우 권총 하나밖에 없고 차는 늘 얻어타고 대중교통을 활용하는 생활형(?) 스파이 제이슨 본은 본드걸에 둘러쌓인 제임스 본드와 비교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시리즈의 2번째 작품이었던 본 슈프리머시. '블러디 선데이'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고 스타 감독으로 도약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었다. 어쩌면 이 영화가 전체성에 대한 경고를 지니게 된 것도 감독의 영향이 아닐까싶다. 본 슈프리머시는 본의 속죄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 도입부부터, 전편 히로인을 죽이는 과감한 시나리오를 만든 감독과 작가는 본이 살아있는한 '자신도 모르는 과거의 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수 없음을 보여준다. 분명 자의로 했던 일도 아니고, 지금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때문에 본은 그 많은 CIA의 추격을 뿌리치고 추운 땅 모스크바까지 가서 자신이 죽인 부모때문에 평생을 오해 속에 살아왔던 딸에게, 별다른 변명없이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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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바로 다음부터 본 얼티메이텀은 시작된다. 속죄는 끝났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자신이 처음 암살을 한 이유가 CIA 간부 애봇의 공금 횡령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복수가 시작된다. 이미 본 슈프리머시에서  애봇은 죽었다. 그러면 이제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왜 나는 어쩌다가 사람 잡는 놈이 되어서 어디 들어가면 감시카메라 위치부터 확인하고 대략 옛날 여자로 짐작되는 사람에게 "도망치는 생활도 곧 익숙해질 거야."라는 로맨스 대사 제로를 자랑하곤 다른 감정없이 "나는 누구인가?"만 맨날 궁금해하는 놈이 되었는가?

  사실 본 얼티메이텀은 본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별다른 고찰 없이 그냥 '막' 봐도 잘 빠진 새끈한 액션영화다. 별 CG도 없이 스턴트로만 때우는 사실적인 액션은 '다이하드 4.0'보다 더 아날로그적이고 현란하다. 특히 이번 영화중 압권으로 뽑히는 모로코 탕헤르에서의 CIA 요원 클리시 데쉬와의 대결은 액션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불렛 타임(하일라이트 부분을 느리게 보여주는 것), 혹은 리얼 액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옹박에서 보여주었던 리플레이(이건 좀 심했다.)도 없이 쌩액션을 보여준다. 워낙 빠른 시간에 쑥쑥 지나가서 뭔 일이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엄청난 완성도와 구성을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촬영 기술이다. 디워가 미국에서 본 얼티메이텀과 같은 기간에 개봉했으면 아마 이 부분부터 까였을것 같다. 영화는 전부 핸드헬드, 즉 고정시키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보통 무겁지가 않다. 카메라맨들 엄청 괴로웠을 것이다.) 도대체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그렇게 카메라를 돌릴수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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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은 액션 영화의 하일라이트 급의 장면이 본 얼티메이텀에 수없이도 나오는데도, 이 영화가 진정 최고의 영화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액션 이외의 것이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본 얼티메이텀은 도덕성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제이슨 본이 시초였던 트레드스톤과 블랙브라이어 작전을 CIA의 간부들은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라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 모든 감시 카메라를 실시간으로 보고, 민간인을 기절시키고, 타국 경찰을 조종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은 누굴까? 제이슨 본이 첫 임무 대상은 블라드미르 네스키. 러시아 정치인인데, 그는 CIA 간부 애봇과 러시아 재벌(유코스의 효도로코프스키가 모델이라는 말이 있다.)간의 자금 횡령 계획을 밝히려다 죽고 만다. 또 제이슨 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임무에 실패한 대상, 아프리카 정치인 움보시. 그는 CIA의 아프리카 통제에 대해 털어놓으려다 죽고 만다. 결국 제이슨 본이 죽이려는 사람들은 꼰대들의 체제 유지에 방해되는 사람이고, 제이슨 본들은 그들의 얼굴이 기억나는데 이름이 기억 안난다고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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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그것이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이 영화는 미국의 그런 독선적이고 보수적인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일까? 아니다. 그러면 제이슨 본의 삶이 처절히 망가지는 것에 집중했을리가 없다. 결국 이 영화는 국가와 체제가 얼마나 사람을 눌러대는가, 또 그게 정당한가, 그걸 묘사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체제란걸 돌리기 위해 발에 땀나게 돈다. 선생들은, 또 각종 매체에서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쳤고 그걸 또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어한다. 왜 우리는 전쟁에서는 왜 사람을 죽여도 되는가, 왜 우리는 군대에 가야 하는가를 지금까지 합리적으로 한 번이라도 설명해 준 적이 있던가? 우리가 발에 땀나도록 체제를 돌리고 결국은 몸과 마음이 아작난채 버려지는 것은 과연 내 주위의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 체제를 만든 분들을 위한 것인지 '본 얼티메이텀'은 화두를 던져준다.

  아마 이 영화에서 액션 이외의 화제로 제일 많이 회자될 만한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본이 살려준 블랙브라이어 요원이 궁지에 몰린 본에게 묻는다.

  "나를 왜 살려줬지?"

  그러자 본이 대답한다.

  "너는 날 왜 죽여야하는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CIA의 다른 요원들도 본을 포위하기 시작하자 본이 말을 잇는다.

  "우리들을 봐.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라고."

  결국 그 요원은 본을 쏘지 않고 그냥 본이 강물로 도망치게 냅둔다. 제이슨 본은 자기가 제이슨 본이 아니니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꼰대들을 살려주고, '꼰대 악당'들이 결국은 모두 체포되고, 제이슨 본은 죽은척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대충 타이밍을 봐서 수영쳐 나가는것이(제이슨 본의 시체가 3일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뉴스기사와 겹치며.) 이 묵직한 영화의 미덕이랄까. 제이슨 본의 외상은 우리들의 내상이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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