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인정, 갑질의 절정을 보여준 남양유업 사태, '성공한 한국남자'의 모습과 박근혜 대통령의 안목을 보여주는 윤창중 사태, 이런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다 보니 같은 시기에 일어난 웬만한 사건들이 모두 사소해보이는 착시도 일어난다. 시기가 평안한 때였더라면,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죽겠다고 비명을 질러도 TV에서는 연예인 스캔들을 보도해주는 평소였다면, 린의 신곡 '유리심장'도 조금 더 화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쁜 놈이라 욕하고(제발 욕하지 마요)/쉽게 끝날 거라 하고(제발 그만 좀 해요)/헤어져라 또 헤어져라 귀가 닳게 듣는 말/유리 심장을 갖고 살아요(난 그래요)/가슴이 깨질 것만 같아요(하나도 남김없이 다)/다 버리라 다 지우라 하면 너무 억울해요 난/유리 심장을 갖고 살아서(그렇게 살아서)/언제 부서질 지 모르는 나라서(깨져버릴 것 같아서)/헤어지란 말만 끝내라는 말만/그 말만 하지 말아요'


  린과 프로듀서 '이단옆차기'가 같이 작사했다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이 곡을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린과 이수의 스캔들이 터졌고, 사람들은 노래 속의 '나쁜 놈'이 이수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수가 정말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법원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다. 이수는 2009년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당시 피해자는 '제가 그(이수)가 연애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룸살롱이나 뭐 이런 데 가면 여자들 다 똑같다고 싫다고 난 이런 거 되게 좋아한다'라고 말했다"라고 증언했다. 연애에서의 '나쁜 남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죄질이 더럽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린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유리심장'이 본인의 이야기가 맞다고 인정함으로써 '나쁜 놈'이 이수가 맞다는 것도 인증했다. 그러며 남자친구가 무대에 빨리 복귀하기 바라는 심정을 토로했다.


  승부수라면 승부수다. 고통받는 연인을 위한 승부수인지, 아니면 어느정도 지명도가 있는 보컬리스트가 스캔들을 등에 업고 더욱 더 뜨기 위한 승부수인지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결국 연인의 애처로운 행보가 이수에게 면죄부를 안겨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비련의 여인이 된 린에게는 괜찮은 한 수였다. '유리심장'은 발매 이후 줄곧 차트 상위권을 유지했다. 위에 있는 노래라곤 월드스타 싸이의 '젠틀맨'과 돌아온 거장 조용필의 'Bounce'뿐이었으니 나름 '인간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곡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노래를 못 부를 이유도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도 있다. 게다가 예술은 고통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매체다. 본인이 억울하다는 데 그런 심정까지 표현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대중이 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없으면 음악을 사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만, 잘 팔리는 걸 보면 대중의 잣대에서 납득이 간다는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유리심장'이 음악산업구조 덕을 많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대 기획사의 이점 같은 거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홍보비, TV 출연 기회, 라디오 출연 기회, 신문 등등...그것 말고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곡의 중간에 랩이 있는데, 이 랩은 인기 아이돌 '비스트'의 용준형이 불렀다. 비스트는 1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참 많은데, 알다시피 아이돌 팬들 대단히 극성맞다. '비스트'라는 그룹으로 곡이 나오는 게 아니라, 멤버 중 한 명이 솔로로 나와도 구입하고, 방송에 출연하면 본방사수, 심지어 다른 가수의 곡에 짧게 피쳐링을 해줘도 짧게나마 '오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구매한다. 비스트의 팬들이 '유리심장'의 도덕성에 회의를 느끼든 말든 구매할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오빠가 노래를 불러줬는데...이것보다 안 좋은 건, 오빠가 노래를 불러줬는데 나쁜 놈일리가! 게다가 사연 자체의 멜로드라마스러움, 즉 노이즈마케팅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니, 어떻게보면 안 뜨기가 어려운 곡이다.


  많은 돈이 투자되면, 투자한 측에서는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유리심장'은 그렇게 보면 흥행성적이 괜찮았으니 모범사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끔찍한 건 린에게 돈 이상의 것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린이 차트성적을 보고 위로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며. 물론 직접 범죄를 저지른 이수가 위로받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기는 하지만. 마치 누군가 한 명이 술을 사는 술자리와 비슷하다. 술을 얻어먹는 다른 사람들은 술 먹고 하는 신세타령을 잠자코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상황이 더 이상한 것은 기실 그 돈마저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음악을 사는 건 소비자니까.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선택은 선택권이 있을 때나 하는 것이다. 만약 린이 곡을 발표할 때와 정확히 같은 시점에, 성매매 사건의 피해자가 린이 '유리심장'을 제작하고 홍보할 때와 같은 자본을 가지고, 같은 인프라의 힘을 입어 이수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고 이런 노래는 발표되어서 안 된다고 호소할 수 있었더라면, 그땐 대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실 기회를 준다 해도 피해자에게 다시 한 번 사건을 언급해야 한다는 그 자체로도 가혹하다. 


  하지만 성매매 사건의 피해자는 그럴 힘이 없었고, 덕분에 린은 돈도 벌고 위로도 받는다. 살기 힘든 세상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해도 위로도 엉뚱한 곳으로 향하니. 린의 동료 연예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녀를 비호하며 상황을 거들기까지 한다. 차라리 걸그룹의 노출은 흥행이라는 목적이 노골적으로 보여 솔직하기라도 하지만, 이건 대체 뭔가.


  개인적으로는 둘의 사랑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나쁜 놈'을 감당할 자신이 충분히 있는 것 같으니, 쓰레기는 쓰레기장에 매립하듯 이왕이면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낫지 않은가? 그러나 비련의 여주인공 놀이는 그만하길 바란다. 지금처럼 피해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업고 방송에 나와 떠드는 건 비겁한 폭력이다. 그러니까 이수 얘기를 하고 싶으면 피해자의 동의를 한 번 얻어보시든지. 안 그럴 거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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