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는 너무 어렸다.
물리적 거리도 멀었고
그래서 그냥 끔찍한 일이고 슬픈 일이라는 애매한 감각이 전부였다.

11년이 지났고, 지금은 많이 다르다. 지척의 일이다.
나는 지금 방송사에 있다.
일반적인 형태의 방송국이나 프로덕션은 아니고
직접 보도하는 입장도 아닐 분더러 분야도 다르지만
KBS와 MBC의 직원과 퇴직자가 많은 곳이다.
문제의 MBC 뉴스의 보험금 계산 보도 땐
내 앞자리에 MBC 퇴직자 한 분이 있었다.
"아니 저것들은 뭔데 저런 걸 보도해? 정신이 있나 없나?....MBC네 아이고."
우리 국장님은 KBS 직원이다.
담배 한 대 피시면서 지들도 자식이 있으면서
어찌 저런 보도를 할 수 있을까 한숨을 쉬셨다.
KBS도 반성을 해야 한다며.
답답해서 잠을 설치셨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우리 누나는 수원시의 중학교 교사다.
1학년 반의 담임을 맡고 있다.
경기 남부의 학교들은 좁은 바닥이라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란다.
학생들을 구조하다 죽었다는
35세 교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보도된 대로, 원래 좋은 사람이 맞단다.
며칠 간 교무실은 초상집 분위기였단다.
착한 사람들이 죽었다고.
여러가지 의미로 착하다는 것이다.
서로를 돕는 정의로운 착함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의심 없이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선생님은 의심 없이 선장 말을 잘 듣는...그런 착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믿어야할 선장은 개자식이었고,
그 선장이 몬 세월호는 이름만큼이나 오래된 데다가 무리한 확장을 거듭했던 시한폭탄이었다.
어떤 사고가 터졌더라도 비슷했을 것이다.
반 마다 한 명씩이라도 사태를 확인했더라면....하지만 모르는 걸 어떡하나. 그게 잘못인가.
교무실에서는 이런 논의들이 오고 갔을 거다.
수학여행은 왜 가나. 옛날처럼 여행이 부족한 시대도 아닌데.
교육은 왜 하나. 협동적으로 순응하는 게 죽음을 부추겼는데.

나도 수학여행을 여러번 가봤고
군시절 휴가 나올 때 배도 여러번 타봤다.
요 며칠 간 가정해봤다.
8년 전 쯤이라면 내가 저 위치에 있었을 수도 있으니
정말 내가 저 배 안에 있었다면
착하게 있었을까 의심을 해봤을까
수십번을 가정해봐도 나는 제 자리에 앉아
속으로 침착해지자 되뇌이며
옆자리 사람들을 진정시켰을 거다. 남의 구명조끼 찍찍이도 붙여주고
선생님 우리 누나도 애들아 괜찮아를 반복하며
통제를 따랐을 거다. 그렇게 우리 둘 다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다르게 움직여야 하는데...하지만 그러지 못할 수밖에.
배에 대해서도 바다에 대해서도 모르는 걸 어떡하나.
모르는 걸 어떡하겠냐만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선생님에 대한 말도 있었다.
죽기 전에는 이랬단다.
평교사만 버리고 도망온 건가.
죽은 후에는 이랬단다.
이왕 살았으면 죽지나 말지.
놀랍게도 이 잔인한 평가와
교감선생님의 참담함이 둘 다 이해가 간다.
알바는 다 죽고 정규직은 거의 다 산 선원들.
나도 알바에 내 모습을 겹쳐본다.
하물며 평교사들은 어떨까.
교감선생님, 담임선생님들....고인의 명복을 빈다.

가장 끔찍했던 건...라고 적고보니
사실 모든 게 끔찍해서
뭘 하나 짚지도 못 하겠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세계의 밑바닥을 본 기분이다.
최악의 비극을 옷감으로 삼아
본인의 성향과 취향이 드러나는 수일이었다

잃어본 적도 없으면서 잃은 이들을 미개인이라 하는 재벌 2세
대통령이 진도방문 하자마자 지지율 조사 요청하는 정치 기술자들
웹사이트에서는 주워담지 못할 말을 하면서 당당하게 화환을 보내 비난을 비껴가는 버러지들...
문자 마케팅에 이걸 써먹는 미친 공감불능자들
조금이라도 어떻게 본인이 서 있는 지평에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언론들
뉴스 보면서 껄껄 웃으며 본인 수학여행 추억담을 풀어놓는 어른들....
...만큼이나 끔찍했던 건...
누가 페이스북 어느 페이지에 뭐가 좋다고 누르는 것만 보는 것도 세상은 지옥이었다
애처로운 인간들...다 봤다
처음에는 온난한 주장으로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가장 심층적 욕망을 드러낸 이들...

실패한 수습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욕망과 사정이 얽히고 섥힌 사건이지만
기준은 간단하다
죽은 이들의 가족, 아직 생사를 모르는 이들의 가족...그 본인들이
만족할 수 없다면, 뭔가 남들이 속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그걸로 실패다
어쩔 건가, 선동이라고 밀어붙일 건가
인터넷에 파다하게 돌던 학부모인 척 하는 선동자가
결국 학부모로 밝혀졌다
글로 댓글로 씨부리던 때처럼 직접 찾아가서 사과라도 할 건가...안 하겠지
여러 사람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느 세력이 옳기 바라며
그로 인해 누군가가 나쁜 놈이길 간절히 바란 다른 누군가의 욕망
그때마다 희생자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은 그렇게 했겠지만
그들은 피해자이지 병자가 아니고, 이 땅이 거대한 정신병동도 아니다
정신병원에서는 약물로 감정을 조절하려 하고
이 땅에서는 뉴스로 감정을 제한하려 한다
하지만 분노도 선택이니
그들에게 감정을 취사선택하라고 하지 말기를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한참 걸릴 수도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유족에게 평온한 삶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아직 실종인 사람들은...
어딘가 현대의 상식과 공학지식을
뛰어넘을 만큼의 여유가 아직 배 안에 있어
그 곳에 누군가라도 버티고 있길 바란다
집에 가야지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잠을 자야지...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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