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차에 치여 죽기 좋은 도시다. 내 숙소는 보스포러스 다리 건너 카라쾨이 지역에 있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모든 차량들이 다리 앞에 집결하고, 그 틈에서 트램이 무심하게 제 갈 길 간다. 횡단보도 없는 교차로가 부지기수다. 눈치껏 건너야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인도와 차도에 깔린 돌이 비슷하여, 때로는 등 뒤로 죽일듯 달려드는 차량 덕분에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게 된 적도 있다. 그거 빼곤 멋진 도시다. 음식은 아주 싼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맛이 좋다. 지평선 쪽 풍경을 스카이라인이라고 하던가, 아름답다. 어제 아침에 시내로 들어왔는데, 보스포러스 다리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몇몇 보았다. 이런 게 일상의 풍경이라니, 축복받은 거다.


거리에는 개와 고양이가 많다. 대개 주인이 없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도 도둑고양이는 많지만...문제는 개들이다. 작은 개가 하나도 없다. 다 덩치가 큰 개들이라서 좁은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는 섬칫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온순해서 별 일 없었다. 고양이는 정말 어디에나 있다. 모스크에 가도 있고, 박물관 가는 길에도 있고, 공원에도 있고....심지어 내가 묵는 숙소에도 하나 키운다. 사람의 손길이 익숙한지 내가 앞에 앉아도 도망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관계로 피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기도 중인가 보다. 숙소 밖에 아마도 코란을 암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새벽에도 저 소리 때문에 깼다.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어제는 이스탄불 최고의 번화가라는 탁심 광장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모스크 안에 들어가봤는데, 기도시간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하며 기도를 올리고 나갔다. 그냥 잠깐 들렸다 가는 게 아니다. 일단 모스크 밖의 수도에서 몸을 씻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잘 모른다 ㅋㅋㅋㅋ 다만 종교가 그렇듯이 정성을 요구하고, 신자들은 기꺼이 요구에 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진짜 신이 있다면 그건 알라가 아니라 아타튀르크일 것이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데,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는 어디에나 있다. 이슬람의 신은 우상화 할 수 없기 때문이, 사찰로 치면 불상이 있을 장소에 빈 공간이 있지만, 아타튀르크는 실존했기 때문이 우상으로 만들 수 있다. 먼저 지폐에 그의 얼굴이 있다. 10리라든가 50리라에만 있다든가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모든 지폐에 그의 얼굴이 있다. 거리마다 동상이 있고, 후미진 동네일 수록 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었는데, 아마 학교 건물인 것 같다. 거기에도 거대한 터키 국기 옆에 아타튀르크가 그려진 같은 크기의 깃발이 걸려있었다. 좀 헤매다가 들어간 후즐근한 찻집에도 아타튀르크 사진이 액자로 걸려있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오늘 아침, 하기아 소피아에 들렸다가 나오는대 왠 중딩들(로 추정됨)이 날 둘러쌌다. English Club이라고 적혀있는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그중 퉁퉁한 남자애가, 이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인가 생각하며 가방끈을 쥐고 잔뜩 쫄아있던 내게 용건을 말했다. 외국인을 영어로 인터뷰하는 게 숙제니 좀 도와달란다. 아이고, 당연히 도와줘야죠. (속으로 매우 안심했다) 두 유 노우 앏뿌ㅐㄹㄱ로런란류너ㅏ?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되물었더니 느리게 말해주었다. 두 유우 노오우 아타튀르크? 아, 이럴 수가.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의 터키 버전이 이런 거구나...난 대답했다. 오브 코스!


심문이 이어졌다. 뭐하던 분인지 알아요? 터키 초대 대통령이잖아요. 그 전엔 군인이었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훌륭한 분이죠. 구체적으로 뭐했는지 아세요? 터키 문자도 만들고, 러시아 사람들도 무찌르고, 터키를 근대화하셨죠. 이렇게 대답하니 아이들은 만족한 듯 나랑 사진 몇 방을 박고 갈 길을 갔다. 아마 선생님에게 보여주려고 찍은 것일 거다. 내 핸드폰으로도 몇 방 찍었다. 다 아이폰 유저였는데, 개중 여자애는 아이폰 6 플러스였다. 보고 있어 쿡 형? 호모포비아의 나라에서도 다 아이폰 쓴대. 근데 휘지는 않게 만들었어야지...


물론 위대한 인물이지만 죽은 지 백년이 다 되가는 사람을, 21세기에 태어난 아이가 외국인에게 처음 던지는 질문이 두 유 노우 아타튀르크일 정도로 이 시대까지 영웅이라니, 내 정서로는 이해가 잘 안 되지만...걷다보니 짐작가는 이유가 있다. 이스탄불 거리에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다. 탁심 광장에서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고, 트램 뒤에 매달려 이동하기도 한다. 술탄아흐메트에서는 떼로 몰려와 구걸하고, 심지어 먹고 있는 음식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하지 못해 지친 애들은 응달에 누워 허공을 보는지 마는지. 때로는 차도르를 걸친 여성이 젖먹이를 안고 간절하게 쳐다보는 경우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시리아 혹은 이라크에서 왔다. 둘 다 요 몇 년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국가다. 그리고 이 난민들을 수용할만한 능력과 배짱이 되는 이슬람권 국가는 터키 뿐이다. (라고 밥 먹다 만난 아저씨가 주장했다.) 이슬람 문화권의 다른 국가들의 참상, 그와 대비되는 근대화된 터키...우린 저렇지 않다고, 하지만 아타튀르크가 없었더라면 저 아비류환의 무대였을 수도 있다고...혼란스러운 세계가 오늘날까지 그의 후광을 지켜주고 있다.


오후에는 그랜드 바자에 들렸다. 바자라고 해봤자, 내가 살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단종된 오메가 시게라든가, 밟고 지나가기도 아까운 고급 카페트, 은붙이 금붙이...외국어는 또 어찌 그리 잘하던지, 일본어로 호객하는대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갑자기 한국어로 어디 가세요? 라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고 지나갔다. 커다란 그릇을 파는 가게였다. 역시 내가 들를만한 곳은 아니다. 숄은 좀 흥미가 가서 몇 군데 들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이걸 들고 89일을 더...라고 생각하니 아무 것도 사고 싶지 않았다. 있는 것도 버리고 싶은 마당에. 사지 마라 민기야. 인사동에도 비슷한 거 많이 판다...라고 자기 최면.


그래도 먹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싼 것 중에서는 홍합밥이 가장 맛있었고, 비싼 것 중에서는 디저트 류가 괜찮았다. 터키 차도 좋다. 오기 전까지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줄로만 상상했는데, 차를 마시는 게 굉장히 일상적인 광경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고 차를 마시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2014/11/07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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