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 다음은 칼스루에였다. 딱히 칼스루에 탐방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근처에 하이델베르크와 바덴바덴이 있었기 때문에, 숙소만 칼스루에 역 근처에 잡아두려고 했던 것이다. 아마 카메라 렌즈가 박살나지만 않았으면 간만에 꽉꽉 채워서 관광을 다녔겠지만...하이델베르크는 대학교와 성에 한 번 들린 후 그냥 칼스루에로 돌아왔다. 수백년 됐다는 대학 도서관은 외관부터 압도적이었는데, 열람실에 못 들어가본 게 아쉽다.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것 같아서 그냥 돌아왔다. 성은...언제 지어진 성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냥 올라가서 사진 몇 개 찍고 바람 좀 쐬다가 내려왔다. 중간에 독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가족과 마주쳤다. 왜 독일에 사는 것이라고 추정을 했냐면, 7~8살 정도 되어보이는 꼬맹이가 자기 아버지를 '파파'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파파, 파파는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에요?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대답했다.음...없어. 아버님이 평화주의자이신가 보다...싶어서 나도 한 번 생각을 해봤다. 싫어하는 인간이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하나를 꼽으라니 다들 자격미달이었다.

바덴바덴은 가지 못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목욕목욕...이지만 그게 어원은 아니다. 원래 바덴 주의 바덴 시였는데, 바덴 주가 뷔르템부르크 주와 통합되는 바람에 정체성을 지키려다가 졸지에 바덴바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실제로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지인 것도 맞하다. 역사도 오래됐다. 도스도옙스키도 재혼을 하고 바덴바덴으로 신혼여행을 왔으니. 나도 온천 때문에 가려고 했던 것인데, 돈이 없어서 못 갔다. 입장료, 타월 대여료, 이런 비용. 저런 비용을 더해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지금은 무리해서라도 갈 걸 그랬나 약간 후회가 든다.

칼스루에의 호스텔은 살면서 가본 모든 호스텔 중 가장 이상했다. 최악은 아닌데, 그냥 이상했다. 6인 도미토리였는데, 침대가 4대 다닥다닥 붙어있다. 침대 두 대가 안 보여서 4인 도미토리로 업그레이드를 해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방 안에 방이 있었다. 그 안에 나머지 침대 2대가 있었다. 이렇게 방이 어바어마하게 넓은데...막상 락커도 없어서 휑했다. 바닥에서 뒹굴기라도 하라는 건지. 벽은 또 유리벽이라서 시내 풍경이 훤히 보였다. 머무는 동안 방을 같이 썼던 조피와 막심도 같은 생각이었다. 둘 다 독일인이었다. 조피는 에어푸르트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석사생이다. 아르바이트로 하는 CPR 교관일 때문에 칼스루에에 며칠 묵는다고 했다. 막심은 쾰른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한다고 하였다. 독일자랑 좀 해보라고 하니까 막심이 독일인들은 재미 없는 인간들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조피가 동의했다. 유럽을 다 돌고 있다니까 어느 나라 사람들이 잘 생겼는지(조피) 혹은 예쁜지(막심) 뽑아달란다. 남자는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독일...여자는 슬로베니아, 독일, 루마니아 순으로 꼽았던 것 같다. 독일 순위는 약간 립서비스를 넣긴 했다 ㅋㅋㅋ. 막심이 장난조로 물었다. 조피는 몇 번째에요? 내가 대답했다. 독일에선 첫 번째죠. 조피가 말했다. 당연하지! 둘 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특히 한국어가 따로 존재한다는 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문자가 생긴지 500년 됐다고 하니, 그거밖에 안 됐냐면서 신기해했다. 왕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도 인상깊었나 보다. 막심이 물었다. 왕 이름이 뭐예요? 세종이에요. 막심이 희한해했다. 우리 동네 '삐리리' 이름도 세종이었던 거 같은데....안타깝게도 삐리리 부분이 기억이 안 난다. 음식점이었나? 세종이 고기를 좋아하긴 했는데...

내가 말했다. 서양인들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은데, 미국인만큼은 금방 알겠어요. 티가 나요. 조피가 동의했다. 미국인들은 눈에 틔죠. 자기들이 정말 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이어 말했다. 일단 미국인들은 시끄러워요. 방 같이 쓰기 싫죠. 막심이 물었다. 그러면 한국인들 좋아하겠네요.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다 조용하던데. 내가 말했다. 언어 문제죠. 외국이니까 긴장도 되고...당신들이 한국 호스텔 와서 한국인들에게 둘러쌓인다고 생각해봐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독일인들이 조용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다음날은 프랑크푸르트에 갔다. 딱히 한 건 없다. 애초에 일박이었으니 그냥 온 김에 찍고 가겠다는 심정이었다. 그 다음주에 대규모 박람회가 있다는데 못 보고 가는 건 아쉬웠다. 숙소는 홍등가의 정중앙에 있었다. 커튼을 쳐놓아도 불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마인 강으로 산책을 나가는 길에 헐벗은 채 호객하던 여자가 내 팔꿈치를 낚아채더니 니하오, 곤니치와, 안녕이라며 각종 언어로 내 국적을 확인했다. 지나쳤다.

밤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시간이 이미 열 시를 넘겼다. 3인실이었는데 나머지 둘은 나가서 안 들어왔다. 자려고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들어왔다. 내게 중국어로 인사를 했다. 한국인이라고 했다. 미안하다면서 웃었다. 그는 중국계 독일인이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이번에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직을 하게 됐는데. 아파트를 알아보느라 며칠 째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른댔다. 뮌헨에서는 공장의 로봇팔 프로그램을 짰고, 여기서는 주식거래 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될 것이라거 하였다. 뮌헨에서는 공장,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주식의 소프트웨어를 짜는 중국계 독일인이라..왠지 독일 산업구조의 대변인을 만난 것 같다.

그는 이번 일이 아주 기대된다고 했다. 평소 주가예측, 파생상품, 빅데이터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저 모든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주변상황과 징조의 방대한 데이터로...예를 들면 거대 투자기업이 투자를 한다든지, 혹은 주가변동 그래프가 어떻게 생겼는지 등...으로 주가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단다. 실제로 지금 많이 연구되는 분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한테 주식책 사서 보지 말라는 조언도 하였다. 절대 따라해선 안 된다고. 어차피 돈이 없어서 할 수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의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말했다. 실은 제 주변에 스포츠 도박의 고수가 하나 있고, 또 주워들은 얘기도 많은데, 비슷한 거 같네요. 거기서도 팀의 평소 실력과 관계없이 오랫동안 쌓인 데이터로만 판단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경기가 몇 시에 있냐 무슨 요일이냐 얼마나 쉬었냐, 혹은 최근 몇 경기 성적을 보아하니 현재 상한선 혹은 하한선이다, 아니면 현재 추세를 유지할 것이다...그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게 가능해요? 내가 대답했다. 원정에서 4-0, 5-0 정도로 참패한 팀은 다음 경기가 홈일 경우 상대가 누구든지 잘 잡는 편이에요. 그가 잠깐 생각하더니,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바로 쾰른으로 갔다. 여기가 독일에서 마지막 도시가 될 예정이다. 역에 도착하니 쾰른 대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지켜볼 여유는 별로 없었고, 바로 숙소로 체크인을 하러 갔다. 중앙역에 트램이 없어서,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두 정거장 간 후 갈아타서 한 정거장 더 가야했다.

갈아타는 정거장 플랫폼에서 생긴 일이다. 어느 방향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벽에 붙은 노선도만 한참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선도에 빨간점이 나타나서 휘휘 움직여댔다. 반대편 플랫폼에서 레이저 포인트로 장난치는 게 확실했다. 머리도 까맣고 배낭도 메고 있으니 만만해보였나 보다. 울컥했지만 참았다. 모르는 척 뒤도 안 돌아봤다. 점도 곧 사라졌다. 그리곤 여전히 노선도를 쳐다보는데, 빨간점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는 뒤돌아섰다. 세 명이 있었는데, 두 명은 나이가 있는 부부 같았고, 나머지 사내새끼가 범인 같았다. 검지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플랫폼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쌍욕을 했다. 물론 독일어로는 머리도 제대로 못 자르니 한국어로 했다. 이 (20-2) (인류의 오랜 친구인 포유류 동물)(생식에 필요한 남성의 신체부위) 같은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짐승)야, 한 번 더 하면 손가락 분질러버린다. 사람들이 다 나 혹은 그 쪽을 쳐다보는 거 같았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노선도를 읽었고, 빨간점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 반에 체크인 하자마자 인터넷에서 스포츠를 틀어주는 술집을 검색했다. 아스날 경기가 두 시 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었으면 관광할 시간도 있고 좋았겠지만, 경기는 봐야했기 때문에 ㅜㅜ 3:0으로 깔끔하게 이겼다. 세번째 골 들어갈 때 환호하다가 손가락을 다친 것 빼곤 모든 게 완벽했다. 경기를 보곤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쾰른 대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냥 라인 강 한 번 넘어갔다 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번 룸메이트는 페루인 렌초였다. 마드리드에서 공부중인데 방학을 맞아 놀러왔다고 한다. 당장 내일 마드리드로 돌아간다며 처참한 심정을 내비쳤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정말 생각치도 못한 질문이 날라왔다. 웹툰 읽어요? 처음에 설마 그 웹툰이겠어, 내가 발음을 잘못 알아들었겠지 싶었는데...그 이후에 '만화'라고 확실히 말해주었다. 신의 탑과 노블레스를 읽는단다. 뭔지는 안다고 하였다. 좀 실망스러운 듯이 한국인들은 웹툰 별로 안 읽나봐요...라길래 많이 본다고, 다만 내가 신의 탑과 노블레스를 안 볼 분이라고 다독여줬다. 날 보고 어떤 웹툰을 읽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솔직히 대답했다. 두 유 노우 이말년?

사람들이 페루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심지어 남미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면서 내가 페루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렌초에게 잉카 콜라를 마셔봤다고 하였다. 그러자 아주 반가운 얼굴로 참 맛있지 않냐면서 내 동의를 구했다. 잉카 콜라는 페루의 탄산음료인데, 검은 색은 아니고 노란 색이다. 전세계를 점령한 코카 콜라가 페루에 진출했을 때 이미 잉카 콜라는 페루를 점령했고, 아무리 해도 페루 내에서는 잉카 콜라를 이길 수 없었던 코카 콜라 컴퍼니는 결국....잉카 콜라를 인수하였다. 실제로 맛은 많이 다르다. 잉카 콜라는 판타에 가깝다.

그는 나한테 언젠가 한국과 일본에 여행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구글에서 코리언 걸이라는 검색어로 이미지 검색을 한 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각종 걸그룹 사진이 많았다. 그가 내게 물었다. 정말 다들 이렇게 생겼어요? 내가 되물었다. 페루비언 걸로 검색해서 나오는 사진하고 실제 페루하고 비슷하나요? 나름 골려주려고 한 말인데...오히려 내가 한 방 먹었다. 실제로 페루비언 걸로 검색해보니 전통의상 입은 앳된 어린이들 사진만 엄청 많이 나왔다.

밤 늦게는 퓌센 이후로 간만에 한국인을 만났다. 울산에서 온 20대 후반의 여성분이었는데, 나보고 대뜸 고향이 어디냐길래, 수원이라고 했더니 갸웃거렸다. 이상하다...말씨가 서울 말씨가 아닌데. 좀 충격이었다 ㅜㅜ 유럽에만 벌써 세 번째 여행이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독일만 돈단다. 내일은 아헨에 있는 온천을 간다는데, 혼탕일까봐 걱정이셨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외간 남자에게 알몸을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다음날이 독일에서의 마지막 하루였다. 시내로 나갔다. 월요일이라 박물관들은 다 닫아서, 사진만 찍고 돌아다니는 것빼곤 할 게 없었다. 초콜렛 박물관 매장이라도 열려있었으면 좋을련만...닫혀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바람이 너무 쎄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 건물 밖에서 딱 봐도 한국인이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고 있었다. 도와주고 같이 들어갔다. 어디어디 가세요? 독일만 돌아다닌단다. 이쪽도 유럽 몇 번 와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독문과라서 와본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독일에 한 달 있으면서 처음으로 독어전공자를 만났다. 여행 시작한 지 5일 됐다고 하였다. 같이 저녁을 먹고 짤막하게 여행 얘기를 하다가 각자 방으로 갔다.

오늘 아침 쾰른은 아주 맑았다. 요 며칠과 다르게 바람도 잔잔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사진이라도 좀 더 찍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10시 42분 발착이었다. 저번달 17일에 드레스덴으로 들어왔으니, 근 한 달 있었다. 또 올 일이 있을까...질문을 해봤는데 아마 있을 거다. 근거는 없다. 직감이다. 언젠가 늦게라도.


2015/1/14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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