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도는 지 모르겠다.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주차할 곳이 없을뿐이다. 주차장도 없고, 남의 대문 앞이 대기도 그렇고, 남의 가게 앞은 아예 막혔고. 희욱 형님이 나직하게 말했다. 하여간 맘에 안 들어....광주. 내가 거들었다. 여긴 정말 차 세울 데가 없네요. 형님이 말했다. 지방이 그렇긴 한데...광주가 유독 심해. 어쩔 수 없이 남의 대문 앞에 세우기로 하고, 아까 들어갔던 거리로 다시 들어갔다. 일차선이라고 해도 믿을 이차선 골목에 낡고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사이에 어찌저찌 차를 대고, 또 그 틈을 인간들이 비집고 다니고, 거미줄처럼 쳐진 전선이 조그만 하늘마저 춘추전국시대처럼 조각냈고, 지평선 방향에는 고층아파트가 떡하니 서있고, 저 멀리는 산이 언뜻 보이는듯 마는듯, 정말 한국적인 풍경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닌 건 아닌데, 어쨌든 이런 골목은 한국 밖에서는 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겨우 자리를 찾아 차를 댔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가게에서는 뱅어회와 삼겹살과 낚지볶음과 우럭탕을 팔았다. 민물고기탕 집에서는 바다고기도 같이 팔았다. 헤매던 길에서 본 허름한 체육관에서는 무에타이와 에어로빅과 태보와 몸짱머시기를 같이 가르쳤다. 가게들도 골목을 닮아 좁은 주방에 이것저것을 꽉꽉 우겨넣나 보다. 우리는 안심과 갈비와 살치살을 파는 고깃집에 들어갔다. 7월 15일 점심, 유니버시아드 주관방송 팀의 마지막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서울로 올라갔지만, 나는 남은 일이 있어서 IBC로 돌아갔다. 그것마저 처리하니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이제 계획했던 대로 광주에서 2박 놀기만 하면 되지만...일단 핸드폰 배터리가 없었던 관계로,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고 난장판이 된 사무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기다렸다. 이번이 인천아시안게임에 이은 두 번째 국제대회였다. 별 보람은 없었다. 그땐 뭔가 뻥 뚤린 듯한 시원함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속으로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막판 되니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집에 가고 싶다....그러면 옆자리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없고, 별 고생도 안 해서 그런 것도 같다. 뭐 그래도 소고기는 원없이 먹었다. 1년치는 먹은 것 같다. 돌아가서는 살을 좀 빼야겠다...


결국 한참 지나 네 시쯤 IBC를 나왔다. 숙소는 광주의 중심가라는 충장로 쪽이었다. 정말 무거운 배낭에, 백팩을 하나 더 짊어지고 겨우 지하철 문화전당역에 도착해서 지상으로 나오니, 비깨나 퍼붓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장 전날 신촌의 자취방이 짐을 부친 참이었는데, 거기 우산도 넣어서 보낸 것이다. 별 수 없었다. 후드를 눌러쓰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별로 어렵진 않았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돈은 내일 내고 그냥 비밀번호 치고 들어가란다. 그래서 손님이 아무도 없나보구나 싶어서 랄랄라 신나서 들어갔더니 도미토리 안쪽에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곱슬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깎다 만 것이 참으로 홍대피플 여행객 같았는데,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고 보니 외국인이었다. 다시 인사했다. 헬로. 그는 내 가방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오스프리 가방이네요. 좋은 거 쓰네요. 짜식, 뭘 좀 아네....


이름은 엘버, 뉴욕에서 왔단다. 이 좁은 한국을 무려 세 달째 여행중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대체 이 땅에 세 달이나 즐기고 뜯을 게 있단 말인가. 혹시나 도보로 이동하냐고 물어봤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보고 한국을 구석구석 여행하라고 해도 두 달이 안 걸릴 거 같은데...서울에서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쭉 도는 중이고, 다음에는 남미를 가겠단다. 그러면서 내게 녹차를 타줬다. 내가 녹차를 타는 외국인에게 안 좋은 기억이 좀 있지만, 우려와는 달리 엘버는 멀쩡한 인간이었다. 내가 말했다. 광주의 호스텔에서 이 시기에 외국인을 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엘버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서울에 있을 땐 안 그랬는데, 작은 동네일 수록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요. 지금은 깎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녔는데...그땐 사람들에게 말 걸면 도망갔어요. 특히 노인들이 그렇죠. 그러고보니 녹사평이나 이촌 쪽 가봤냐고 묻는 걸 깜빡했다. 아마 대한민국이서 노인들이 외국인들을 신기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동네가 아닐까 싶다.


피곤해서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여덟시였다. 엘버가 없었다. 밖을 보니 비도 그쳤겠다, 나도 대충 옷 비슷한 걸 걸치고 휘적휘적 나섰다. 딱히 할 건 없어서 계속 걸었다. 예술이 없는 예술의 거리를 걸었고, 전국 어딜가도 있는 충장로를 걸었다. 네온싸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이 부셨다. 모텔간판이 반짝이는 거야 전국 어디서든 그런 거니 이해를 하겠다만, 영업시간이 한참 전에 끝난 철물점의 간판이 밤새 반짝여야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다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창가 자리에 앉아 컵라면을 뜯었다. 으슥한 골목이 보였다. 사람들이 조막만한 처마 안으로 들어와서, 담배를 피고, 담배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잦아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갔다. 바람막이를 대충 털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것도 외국인이. 이번에는 체코에서 온 여자였다. 아까 한 말을 약간 바꿔서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광주의 호스텔에서 이 시기에 외국인을 두 명이나 볼 줄은 몰랐는데요.


이름은 마그다, 사실 한국에 온 게 처음이 아니란다. 체코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벌써 네 번이나 한국을 왔고, 미래에는 한국의 체코 대사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대충 들어보니 나보다 훨씬 한국 구석구석에 많이 가봤다. 당장 오늘 청산도 갔다 오는 길이라는데, 난 청산도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이번에만 목포, 나주, 완도 등등...한국 드라마와 배우들도 참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종석을 제일 좋아한단다. 2년 전에 실제로 보고 싸인도 받았단다. 내가 말했다. 이종석도 신기해 하겠네요. 체코 여자가 팬이라고 싸인해갈라고 하면. 마그다의 대답은 담백했다. 저 같은 애들 많아요. 이종석 때문에 본 시크릿 가든 이후로는 현빈도 좋아졌단다. 해병대도 좋단다. 엘버가 자기도 좋아하는 한국 배우가 하나 있다면서, 구글에서 송강호를 검색해서 보여줬지만 마그다는 한 귀로 흘렸다.


만약 한국에 산다면 어느 도시를 고르겠냐고 엘버가 물어봤다. 난 당연히 서울이라고 최소한 수도권은 벗어날 수 없다고 그렇지 않다면 죽음을 달라고 했고, 엘버와 마그다도 서울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마그다는 어처구니 없게도 삼척이라는 대답을 했다. 정말로요? 정말로요. 제가 원래 조용한 마을 출신이기도 하구요...삼척에서 2주동안 살아보기도 했고...또 삼척도 있을 건 다 있어요. 내가 물어봤다. 삼척에 영화관 있어요? 아뇨....그래도 동해까지만 가면 되는데. 체코 이야기도 잠깐 했다. 내가 프라하와 브르노에 가봤다고 하니, 대체 브르노에는 뭣하러 갔냐고 나를 타박했다. 엘버가 브르노가 어떤 곳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체코의 광주라고 대답해줬다. 할 게 아무 것도 없는 곳이거든요...


다음날이었다. 아침 여덟시 쯤에 잠깐 일어났는데, 점심 약속이 취소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뭘 할지 잠깐 고민해봤는데...아무래도 할 게 없었다. 어제 대충 걸어봤지 않은가? 예술이 없는 예술의 거리, 전국 어디에나 다 있는 번화가. 대인시장에 한 번 가볼까...아니지 시장이 가고 싶으면 나중에 망원 시장이나 가지...무등산이라도 탈까...아니지 산 타고 싶으면 나중에 북한산이나 타지... 근교의 다른 도시를 가볼까...귀찮기도 하고 왔다가는 것도 일이고...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난 결코 여행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결국 다시 디비져 잤다. 열 한 시쯤 되니 햇볕은 따갑고 이부자리는 습해서 더 잘 수가 없었다. 일어나니 마그다는 이미 충주로 떠나서 없었고, 엘버도 어디 나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대충 아침을 해결한 후...거실의 원목 의자에 누워서 또 잤다. 그러곤 거의 두 시쯤에 깼나보다. 엘버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가요? 내가 물었다. 엘버는 그렇다면서, 따라오겠냐고 물었다. 잠깐 생각해봤는데...계속 누워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엘버는 괜찮은 라면집을 어제 봤다면서(먹었다는 게 아니라!), 거기 가자면서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미국인이 광주에서 한국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희한한 광경이었지만, 잠깐뿐이었다. 금새 길을 잃었고, 나는 라면 안 먹어도 되니까 그냥 보이는 데서 대충 떼우자고 말했다. 골목 안쪽으로 꺾어들어갔더니 마침 고기뷔페가 있었다. 내가 물었다. 고기뷔페 가본 적 있어요? 머뭇머뭇 거리는 게 딱 봐도 없는 눈치였다. 9,900원이면 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어요. 그리 말했더니 놀라면서, 당장 들어가자고 하였다. 그렇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리는 게 대충은 느껴졌다. 고기는 내가 구웠다. 엘버는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들에게 헬로 하이 쓰잘데없는 인사를 걸었고, 여고생들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떠듬떠듬 인사를 받아주면 역시 한국인들은 참 멋지고 친절하다면서 한국예찬을 했다. 순진한 건지 약은 건지...아마 그는 평생 한국인들이 자기에게 친절한 이유를 모르고 살 거다.


밥을 먹고는 엘버를 따라 걸었다. 엘버는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고, 나는 남 따라다니는 걸 싫어하진 않았다. 골목의 가게마다, 특히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나 옷가게를 볼때마다 개성이 넘친다고 감탄하며 연발 셔터를 눌러대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가게를 볼 때마다 영화 <밀양> 같은 데 나오는 옷가게 아줌마들만 생각날뿐이다. 어디가 어디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도시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도 어떤 차이나 장점을 찾아내려는 엘버를 보면서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다. 그래도 그가 말했던 것 중에 한 가지는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주요 도시의 중심에 언제나 강이 흐른다는 것...물 흐르는 게 왠만하면 나쁠 건 없다


어느 건물 옥상에 올라가니 그곳에도 카페가 있었다. 빽빽하게 늘어선 건물, 종종 보이는 파란 슬레이트 지붕, 멀리 보이는 낡은 아파트와 새 아파트, 그 뒤의 산...다시 한 번 참으로 한국적인 풍경이었다. 엘버에게도 말했다. 아마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엘버는 그 와중에도 삐죽빼죽 튀어나온, 유독 주위와 안 어울리고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을 열심히 찍었는데, 보아하니 다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건물들이었다. 혹시 엘버도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 저 건물들이 뭔지 알아요? 엘버가 모른다고, 무슨 건물이냐고 되물었다. 전부 모텔이에요. 엘버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텔들 중 하나의 이름은 모텔 맨하탄이었다. 뉴요커인 엘버를 위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왼쪽에 5.18 기록관이 보였다. 문득 엘버가 어젯밤 광주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끔찍하다고 탄성을 지른 게 기억이 나서, 저 건물이 그런 건물이라고 말해주니 한 번 가보자고 한다. 따라갔다. 마침 방문자 안내소 같은 게 있었다. 들어가보니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젊은 사람 둘이 찾아온데다가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외국인이다보니 아주 반가웠나보다. 내가 일반인이 볼 수 있는 박물관 같은 게 있냐고 물어보니, 할아버지께서 아예 가이드를 해주겠다면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내가 광주에서 본 모든 사람 중 가장 사투리가 심한 분이었다.


저녁에는 군대 후임 이영학을 만났다. 이 년 반만에 처음 본 것일 게다. 초소에서 떠들 듯이 떠들었다. 주로 내가 떠들고, 이영학이 듣는다는 뜻이다. 저녁에 뭐 할 거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내가 대답했다. 숙소를 예약을 해두긴 했는데...그냥 집에 갈 거야. 밤차 타고 집에 가게. 내가 유럽에서 3개월을 다녔는데 여긴 2일을 못 버티겠어. 난 지방이 싫어. 광주 토박이 이영학은 그래도 광주의 장점을 한 번 말해보라고 자꾸 나를 추궁했다. 내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고기는 정말 맛있었어. 마지막 식사였던 민속촌의 돼지갈비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밥을 먹자마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광주송정역에 가서 밤차를 타고(나주곰탕집에 또 못 간게 아쉽다), 새벽 한 시에 용산역에 돌아왔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취객들이 계단에 기대 졸고 있었다. 멀리선 고층 크레인이 졸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울말을 썼다. 매연에 젖은 밤공기가 신선했다. 홈 스윗 홈. 역시 집이 최고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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