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다. 접영 물잡기를 배우는 날이다. 물잡기라는 게 별 건 아니다. 수중에서 팔꿈치를 안쪽으로 구부리고 손바닥으로 물을 밀어주는 동작을 물잡기라고 한다. 물잡기를 하지 않아도 접영을 할 수는 있다. 팔꿈치를 수직으로 펴서 풍차를 돌리듯이 돌리면 된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빨리 갈 수도 없고, 수면 위로 높이 올라오기도 어렵다. 한 번 늦어지고 낮아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앞으로 나가는 것도 고역이다. 결국 접영으로 한 바퀴를 돌고 또 다음 바퀴를 돌고 싶은 사람이라면 물잡기를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접영 물잡기를 상급반에서 웨이브 동작과 같이 배웠고, 접영을 배운 이후부터는 쭉 물접기를 해왔기 때문에 새로 배울 건 없었다. 하지만 좀 헤매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회원들을 한 바퀴 돌리며 위에서 지켜보던 강사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원님들, 팔꿈치를 구부리기 전에 팔을 벌려야 한다고요. 접영 50미터! 그렇게 회원님들께서 한 바퀴 더 돌고 왔지만 강사는 여전히 답답해했다. 회원님들, 다들 위에 올라가봐요. 시범을 보여줄게요. 그 말을 듣고 따라 올라가려는데 강사가 내 어깨를 잡았다. 민기 씨가 시범 보여요. 강사가 풀 밖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자, 팔을 얼마나 벌리는지 보세요. 이 정도 벌려야 한다고! 민기 씨, 저기 가운데까지 갔다가 와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시범으로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여전히 아줌마 아저씨들이 물밖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가만히 서있었다. 강사가 예의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 분, 제가 작년 말에 초급반에서 처음 가르쳤는데, (잠깐의 침묵), 이렇게 될 줄 몰랐네요. 박수 한 번 쳐주세요. 강사가 먼저 직접 박수를 쳐주었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따라 쳐주었다. 나는 허리를 몇 번 굽혀 답례를 하였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강사와는 다른 이유이다. 그는 아무리 끌어당겨도 물속으로 가라앉기만 하던 내 모습을 기억해서 한 말이겠지만, 나는 운동을 더 안 하면 건강이 얼마나 더 떨어질 지 몰라 시작한 수영이 때로는 내게 목적의식을 주고,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사람들하고 친해지게 해주고, 때로는 이렇게 소소한 성취감을 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네 편으로 글을 쓸 줄도 당연히 몰랐다.

 

  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원래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지금보다는 훨씬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하였다. 물론 완전히 내 얘기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수영의 역사, 수영에 대한 나의 생각,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상 같은 게 마법처럼 섞여 기이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형성하는 매우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역시 개뿔, 크나큰 욕심이었다. 특히 몸의 움직임에 관해서 더 자세히 묘사를 하고 싶었는데 전혀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다시 읽어보니 평소에 쓰던 글, 특히 여행다닐 때 썼던 글과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다. 역시 삶이란 그냥 살다보면 쳇바퀴를 돌리게 된다. 잠깐 벗어난다 하더라도 가는 길은 결국 오르막길,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지름길. 그 밥에 그 나물.


   다시 수영 이야기. 위에 적었다시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목과 어깨가 아파서 잠을 못 잤다.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병원에서도 수영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잠을 못 자는 정도는 아닌데 극적으로 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많이 사라졌다. 멀쩡한 부분에도 미약하게나마 새로운 통증도 생기는 마당이다. 과연 수영이 도움이 될까? 여기에는 회의적이지만, 어차피 이제는 수영을 하는 목적이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올림픽 슬로건 같은 이유로 수영을 하고 있다. ‘더 높이’는 아니지만 ‘더 멀리, 더 빠르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내내 이 생각만 하고 산다.


   건강 따위는 집어치워두고, 현재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당장 할 것들은 아니고 그래도 3년 안에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트라이애슬론이다. 철인삼종경기라고 번역을 하는 그 종목이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을 봐야만 했던 아시안게임 때도 ENG로 하이라이트만 송출해서 아무관심이 없던 종목이었는데, 느닷없이 관심이 생겼다. 사실 수영을 배우기 전인가 태흠이 형이 내게 철인삼종협회에 회비도 내고 언젠가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수영을 배우다보니 문득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이애슬론에는 여러 가지 룰이 있지만 그 중에서 올림픽 룰에 따르면 수영 1.5km, 사이클 40km, 러닝 10km이다. 지금도 힘을 아끼면서 간다면 1.5km를 돌 수는 있다. 사이클을 제대로 탈 줄 모르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일단 수영 1.5km를 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별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있다. 원래 근거 없는 희망이 꿈을 이뤄주는 법이다.


   두 번째는, 수영 대회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 나가서 뒤에서 두 번째라도 좋으니 꼴찌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게 트라이애슬론보다 아득해 보인다. 자유형 50m를 헤엄친다고 하면, 내가 컨디션이 좋은 날, 아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할 줄 아는 모든 것을 구사하면서, 젖먹던 힘까지 발악을 해야 겨우 40초를 넘기지 않는다. 취미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잘 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내 친구 권순균이 20초대 후반이라고 한다. 이쯤이면 대회 메달권이다.


  그러니까 나와 금메달 사이에는 대략 10초라는 간격이 있는 셈인데, 세상에 10초라니 이게 넘을 수 있는 간극인가? 올림픽에서 0.1초를 단축하겠다고 용을 쓰는 선수들을 그렇게 많이 봤는데 그 100배를 나보고 단축하라고? 물론 내가 우승을 할 생각은 꿈에도 없으니 정말 10초를 줄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내가 목표로 삼은 정도만 하려고 하여도 5초는 줄여야 한다. 절반이라니 그나마 낫다. 하지만 나는 나날이 늙어갈 것이다. 지금도 후달리는 근력이 3년 후에는 더 부족할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단 힘 좋은 사람들이 운동 잘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관절은 닳고 통증은 여전할 것이다. 숨은 더 가쁠 것이고 하루를 격렬히 살면 다음날은 개처럼 헐떡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다고 기대를 거는데, 이유가 있다. 수영을 아직 덜 배웠다. 나는 자유형 물접기를 아직 거의 못 하며, 고개를 들고 전방을 주시하지 못하며, 킥의 리듬이 자주 흐트러지고, 플립 턴을 제대로 못하고, 결정적으로 다이빙 스타트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자유형이 이 지경이면 접영은 말도 할 것도 없다.


   몇 주 전에 처음으로 내가 수영을 어떻게 하는 지 볼 수 있었다. 강사가 다이빙 스타트와 접영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주었다. 이게 수영하려고 물에 뛰어 들어가는 건지 심청이가 인당수에 퐁당 뛰어드는 건지 비거리부터 처참한데, 특히 무릎하고 발목이 자꾸 구부려지는 게 참담했다. 그날만 해도 참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괜찮다. 연습할 기회가 적어서 문제이기는 한데, 저게 해결된다면 39초에서 1초 정도는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25m 풀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50m에서는 속도가 더 잘 나올 지도 모른다. 역시 1초 정도. 나머지 단점들도 전부 1초 정도로 쳐준다면, 도합 6초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33초이다. 벌써 해낸 거나 마찬가지다, 축배를 들자. 아니다. 3년 후니까 좀 불이익을 주자. 1년에 0.33초씩, 3년이면 1초. 그래도 여전히 34초. 다시 한 번 축배를 들자.


   이렇게 디테일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매우 상당히 낙관적인 나의 미래 전망을 수영을 같이 다니는 아저씨 한 분에게 이야기 했다. 철인삼종도 나가고 대회도 나가보려고 하는데요...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 숨 쉴 때 너무 많이 돌아. 아, 그래도 3년 후인데요? 아저씨가 이번에는 손까지 휘휘 저었다. 옆의 다른 아저씨가 말했다. 그냥 나랑 같이 마라톤이나 나가자. 잠깐 고민하다가 부정적인 예측은 무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마라톤에 나가자는 제안도 덤으로 무시했다. 그리고는 혼자 생각했다. 어차피 삶에서 무엇을 하게 만드는 것은 낙관이다. 할 수 있다. 증명해 보겠다!


  하지만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또 대체 누구한테 증명하겠다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예정이지만,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온 김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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