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CHAPMAN (1876-1934)

허버트 채프먼

허버트 채프먼

 허버트 채프먼의 공은 단순히 트로피 갯수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팀 장악 능력, 혹은 전술적 창의성 자체는 후세의 감독들이 더 앞서 나갈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래서 역대 최고의 감독을 뽑으라고 하면 그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를수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너무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현대 축구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그의 이름은 절대 빠질 수가 없다. 그는 축구 대중화의 선구자였다.

  그는 단순한 근대적 전술을 넘어 축구 규칙과 여러가지 복합적 요소를 결합한 최초의 현대적 전술인 W-M 전술을 창조해냈다. 또한 스토퍼를 거의 최초로 활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아스날의 현재 유니폼이고 한 Red-White 디자인을 만들어냈고, 경기장에 최초로 야간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또한 일전의 이사회 중심의 축구 구단 운영에서 감독의 권한을 크게 올리기도 하였다.

전술가 채프먼

 위에는 현대의 명장들과 전술의 비교를 할 수 없을 말이라는 것을 써 놓았지만, 그러나 채프먼이 없었다면 후대의 명장들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초기의 잉글랜드 축구의 전술은 2-0-8 포메이션이었다. 숫자 놀음이 되어 버린 요즘 보면 웃음이 나오는 진영일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초기에는 저러하였다. 저 두 명의 수비수는 재미있게도, 센터백이나 스토퍼로 불리지 않고 풀백으로 불렸다. 그러니 채프먼이 만든 W-M이라는 전술은 혁신적일 수 밖에 없었다. 위에서 바라본 선수들의 위치가 마치 W-M이라는 전술은, 숫자로 보면 3-2-2-3이나 3-3-4에 가깝다고 한다.

 그는 스토퍼 하나를 센터백으로 두고, 양 윙백들의 오버래핑을 권장했다. 사실 이 전술은 그 당시 적용된 새로운 오프사이드 규칙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오프사이드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 수비수 숫자가 세명에서 두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윙백들이 오버래핑을 나가면 센터하프가 스토퍼와 같이 자리를 메꾸는 식이였다고 한다. 그의 이런 경이로운 혁신은, 당시로써는 놀라운 1점대 중반의 실점률을 아스날에게 안겨주었다. 또한 윙백들까지 활발하게 가담하는 공격은 기존의 밀집된 공격진에 효율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득점은 적었는데, 'Boring Arsenal'이라는 별명의 시초는 이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1930-31 시즌은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아스날은 127골을 퍼부었다.

 어쨌거나 그의 치밀한 전술은, 허버트 채프먼이 선수들에게 칠판에다가 분필을 찍찍 긁어대면서 전술 수업이나 하는 것 아니냐하는 비아냥을 듣게 했는데, 그 비아냥은 늘 상대편들이 하는 것이었다. 허버트 채프먼의 이 전술은 30년대 초반, 잉글랜드에 무적의 팀을 탄생시켰고, 얼마후 월드컵을 우승한 이탈리아 대표팀도 이 전술을 활용했다. 60년대 브라질이 충격적인 4-2-4 전술을 선보일때까지 W-M은 유럽을 지배했다.

팀 창조자 채프먼

 훌륭한 전술가이지만, 그는 그 전술에 맞춰줄 선수가 필요했고, 선수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숫자를 줄인 공격수에 좋은 선수를 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구 웸블리 구장의 최초 득점자인 데이비드 잭, 또한 아직도 많이 회자되는 알렉스 제임스 같은 선수들이 있고, 또한 전설적인 테드 드레이크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중 정수는 클리프 바스틴이다. 그는 티에리 앙리가 최근 기록을 깨트리기 전까지 아스날의 리그 최다 득점자(150골)이었다.
아르센 벵거와 비교하자면, 그는 선수 구매에 훨씬 더 열성적이었다. 위의 선수들 모두가 그가 영입을 한 선수였다. 그냥 영입이라면, 선수를 보는 눈이 상당히 좋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모두가 불법적인 영입이었다. 그는 알렉스 제임스 영입에 2만 파운드를 쏟아부었는데, 요즘은 좋은 선수의 주급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한술 더 떠서, 당시 FA는 주급 상한을 주었지만, 그는 어떤 선수와 1주일에 8파운드로 계약했다고 발표하고는 200파운드의 뒷돈을 건냈다. 결국 나중에는 주급 상한제가 사라지고, 어쨌거나 그는 나름 축구의 프로화와 양질의 선수들로 축구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약간은 지저분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늘 직접 선수를 찾아다녔는데, 그의 죽음도 폐렴에 걸렸지만 쉬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비를 맞으며 한 해의 마지막 날에 2군 경기를 보다가 연유한 것이었다. 런던의 반이 슬퍼했다.

 또한 그는 아스날의 전설적인 선수이기도 한 톰 휘태커를 코치로 기용하여 선수들의 피지컬적인 면을 단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휘태커는 얼마 후, 부상에 관련한 세계에서 따라올 수가 없는 전문가가 되었다. 톰 휘태커와 같이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만들어서 선수들의 능력을 향상히켰다.

클럽 지배자 채프먼

 아스날의 구단주였던 헨리 노리스 경이 채프먼을 고용한 바로 그 순간, 근대적인 팀 운영에서 현대로 넘어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선수에게 2만 파운드를 쏟아 부은것도, 200파운드의 뒷돈을 쓴 것도, 즉 구단의 재정을 마음대로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그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여 아스날을 기여코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정말 그는 아스날에 무한한 애정이 있었던 듯 싶다. 마치 조각품을 다루듯 세세하게 클럽의 모든 것을 손질했다. 경기장에 세계 최초로 야간등을 밝혔고, 유니폼 뒷쪽에 번호를 붙였으며, 관중석 공사를 지시하고, 유니폼 디자인을 손보았다. 리버풀과의 좋은 관계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클락 엔드

당시의 클락 엔드

 또한 그는 경기장 남쪽 스탠드에 시계를 붙였는데, FA는 이것이 심판 권한에 대한 침범이라 생각하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계가 붙어 있던 스탠드가 바로 클락 엔드였다. 이 허버트 채프먼의 정겨운 유산은, 지금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오롯하게 걸려있다.

 그가 클럽 재정을 마구 쓰고, 무언가를 계속 소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쓴 만큼 채워넣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케팅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는 광고지를 돌리고, 스타 선수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경기를 보는데 돈을 아끼지 않게 하였다. 이중 압권은 단연 아스날 역이었다. 그는 런던 철도 공사에 압력을 불어넣어, 하이버리 경기장과 가장 가까웠던 길레스피 로드 역의 이름을 아스날 역으로 바꾸자고 말했다. 당시 그는 "길레스피 로드를 누가 알겠냐, 아스날 역이라고 지으면 모두 다, '아 거기!' 하고 알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스날 역은 누구나 다 안다는 그의 주장은 자만에 빠진 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사실이었다. 진실로 그는 축구 대중화의 선구자였고, 사람들이 경기장에 맘 놓고 오게 한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스날은 영국 최고의 팀이었다.
아스날 역

아스날 역,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로 인해 곧 길레스피 로드로 돌아간다.


감독 채프먼

 1878년 1월 19일, 쉐필드에서 광부의 5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그는 노스햄프턴 타운, 리즈 시티, 허더스필드 타운을 거쳐 아스날에 오고 기어코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제는 그의 경력을 언급할 차례인듯 하다. 그는 트로피마저 수없이 쓸어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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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아스날 첫 시즌인 25-26시즌에는 2위, 다음 해 FA컵 결승전에는 준우승을 하고 잠잠했지만, 1930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아직도 아스날 최다골 기록인 127 골을 퍼부으며 30-31 시즌을 우승하며 리그를 우승한 최초의 남부 팀이 되었다. 2년 후 32-33시즌을 우승했고 33-34 시즌을 우승했다. 그는 1934년 시즌 초에 갑작스레 사망했지만, 그의 유산은 1935년에 다시한번 우승하므로써 이어졌다.

 그는 아스날을 이끌며 총 403경기를 치루었는데, 그 중 203경기를 이기고 97경기를 비겼고, 105경기를 졌다. 864골을 넣었고 598골을 실점하였다. 그가 오기 바로 전 시즌 아스날이 강등권에서 겨우 탈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경이가 따로 없다.

 2003년 그는 명예의 전당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또한 2005년 축구인으로는 최초로 블루 플레이크(주 : 일종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뽑으라고 하면, 그의 이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아스날 구단에서는 일찍부터 그를 기념하여, 하이버리에 이어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도 그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곳에서 그는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의 팀과 유산들을 아직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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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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