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앤 세바스챤은 누더기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사회주의의 아이들이라고 하면 멋지겠지만, 그건 뻥이니까요. 푼돈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굴러갔죠. 돼지같은 공무원의 주머니 속에 있는 잔돈. 청년 직업 훈련 프로그램 따위를 만들어서 상사 실적 쌓아주는 사람. 장부 숫자를 조작해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 신뢰를 쌓기 위해 창녀와 잔 사람.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Me and the Major, 그대로 해석하면 나와 소령님은 벨 앤 세바스챤의 두 번째 앨범인 If You're Feeling Sinister의 수록곡입니다. 위에 인용구는 앨범 자켓 제일 뒷페이지에 있는 밴드소개에서 한 문단을 가져온 건데...걸작이죠. 벨 앤 세바스챤은 앨범 자켓 보는 맛에 앨범을 모아요. 가끔 보면 이상한 인생상담도 해주고, 이상한 칼럼도 쓰고 그러는데 역시 이 앨범의 밴드소개만큼 걸작이 없죠. 웃퍼요.

노래는 들어보면 쉽게 알겠지만 멜로디는 밝고, 사운드는 경쾌하고 분위기는 따듯한데 가사는 따로 놀아요. 보통 많은 밴드들이 세상이 망해서 불만인 음악을 하거든요. 기타에 디스토션을 걸어가면서 아이 시바 좆같은 세상아ㅏ아아아아아아아...이러는데 벨 앤 세바스챤은 이들과는 달리 세상이 덜 망해서 불만인 음악을 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이 망하다 마는 바람에 지들만 망한 거예요. 다들 망하면 공평하기라도 하죠.

곡이 96년 곡이잖아요. 지금보면 사운드나 멜로디가 좋긴 하지만 새로운 건 없거든요. 그새 벨 앤 세바스챤도 비슷한 스타일을 잇고 또 이어간 중견밴드가 되었구요. 근데 당시 평단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면 당시에는 꽤 새로웠던 것도 같고요. 90년대 밴드 중 딱히 비슷한 밴드가 안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런데 역시 벨 앤 세바스챤 하면 멜로디고 사운드고 다 제껴놓고 저는 가사가 제일 인상 깊거든요. 이 다음 앨범의 첫 곡의 첫 줄이 아마, "그는 24살에 뇌졸증으로 쓰러졌어요, 그렇지만 않았어도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로 기억해요. 황당하죠. 하지만 만약 제가 가사를 쓴다면 가장 쓰고 싶은 스타일의 가사이기도 해요. 벨 앤 세바스챤이 세상에서 제일 가사를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머도 아픔도 모두 진짜처럼 느껴져서 좋아요.

군대 가기 전에는 이 다음 트랙인 Like Dylan in the Movies라는 곡을 좋아했는데, 갔다오니까 소령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이 눈에 막 띄더라고요. 노래의 주인공하고 영국군 소령이 우연히 기차 같은 칸에 들어가서 대화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는 거죠. 소령은 요즘 젊은이들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죄다 군대 보내야된다고 하고, 주인공은 그냥 듣고만 있지만, 노친내들이 우리 탓만 한다고 생각해요. 노래가 마음에 든다면 가사 한 번 읽어보세요. 좋아요.


2013.3.16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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