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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퀸 : 침묵의 교실>(이하 더 퀸)은 현재 다음에서 연재중인 김인정 작가의 웹툰이다. 오래 연재하지는 않았고, 10화 정도 진행이 되었다. 작가의 전작이 네이트에서 연재한 <꽃같은 인생>이었는데, 대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연애물이였다. 내용이 극적으로 전개되는 건 아니지만, 남성심리묘사가 여타 여성 만화가에 비해서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다 보니 남자의 마음이 어떻게 묘사되는 지 더 보게되긴 한다. 비슷하게 미대를 배경으로 한 캠퍼스 연애물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일본 작가 우미노 치카의 <허니와 클로버>인데, 역시 섬세한 심리묘사가 장점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남성 캐릭터들이, 실제 그 상황이라면 보여주기 힘든 태도를 보여준다. 그 충격과 공포의 결말이 가능하다고는 쳐도, 거기에 대한 주인공 다케모토의 태도(그래도 내 짝사랑은 의미가 있었다.)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는 <꽃같은 인생>이 더 나은 작품이라고 본다. 연재한 사이트가 네이트가 아니였더라면, 그리고 그림 스타일이 더 뚜렷했더라면 더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다. 주위에 본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댓글로 욕을 굉장히 많이 먹은 '여주' 캐릭터가 제일 좋았다.


  <더 퀸>은 전작의 대학교 캠퍼스에서 고등학교로 시간을 거슬러간다. 전작의 주인공들이 학생에서 막 사회생활로 넘어가는 시기였다면, 그래서 각종 고민에 '현실과 이상의 차이', '위선과 진심' 따위와 같은 딱지를 붙여대며 더욱 흔들리는 나이대였다면, 이번에는 딱히 넘어가는 시기가 아니여도 잘만 흔들리는 여고생들이다. 주인공은 새 학교에 전학을 온다. 부모님은 학교에서 잘 묻어가라고 말하고, 본인도 묻어가는 걸 잘 한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아이다. 평범하게 묻어가는 걸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면 정말 평범한 아이가 맞다. 새 학교 반에 들어가봤더니 어느 집단에나 그렇듯이 파벌이 있다. 예쁘고 권력 있는 애들이 뭉쳐다니고, 그런 애들을 질투하는 애들이 기가 눌린 채 뭉쳐다니고, 또 어느 집단에도 무익하고 무해한 걸 자처하며 충돌을 피하는 아이들이 있고, 신경 안 쓰는 독고다이도 있고, 제일 앞의 집단에게 딱 걸린 바람에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있고, 마지막으로 그들 모두를 보다듬고 쓰다듬어줄 목적으로 계약된, 그러나 계약조건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는 교사가 있다. 어디나 이렇게 사람은 갈리기 마련이지만, 시놉시스만 읽어도 피곤해지지 않는가? 게다가 주인공이 전학 온 이 반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표면적으로는 교내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더 퀸: 침묵의 교실>의 핵심은 '교실'보다 '침묵'에 있다. 침묵을 통해 폭력이 확대재생산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하는 사람들은 대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벽히 용납하지 못한 본인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더 퀸의 등장인물은 지금까지는 모두 예외없이 그러고 있다. 반의 여왕인 '유리'에 의해 공개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햇님'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이 햇님이에 대해서는 왕따를 시키는 집단을 물론이요, 따지고 보면 같은 피해자라 볼 수 있는 약한 애들도 동시에 침묵하고 있다. 공부만 하는 반장도 마찬가지다. 이게 비단 교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자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 양태가 다를 뿐이지, 기본은 강한 힘이 약한 힘을 짓누르고, 그 짓누르는 걸로부터 각종 물질적 이득과 정신적 만족감을 취하는 것이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본인의 차례가 오지 않았기에 그냥 방관한다. 개인과 개인 간에, 교사와 선생 간에, 상사와 부하 간에, 갑과 을 간에, 남자와 여자 간에, 연인과 연인 간에도. 최악은 여기서 강자를 옹호하는 것이다. 가해자에게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곡절 없는 사람이 어딨는가. 약자의 고통은 언제나 강자의 입장보다 가혹하다.


  작가가 가장 잘 다루는 캐릭터는 말 많고 활달한 캐릭터이다. 전작에서도 '여주'라는 캐릭터가 그랬는데, 연재 중에는 어장관리 한다는 이유로 욕댓글을 많이 먹었다. 그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걸 보면 역시 캐릭터가 좋은 캐릭터가 맞긴 맞았다. 이번에도 그렇다. 여전히 활달한 캐릭터에 강하다. 본작의 수다쟁이 캐릭터는 '지은'이다. 아이유가 생각나는 이름이다. 지은이는 굳이 따지면 '유리' 집단의 2인자쯤 되는데, 예쁘고 활달한 여고생이다. 주인공을 처음으로 반겨주는 것도 지은이다. 하지만 만화의 분위기가 이렇게 어두운 데 혼자 어떻게 빛나겠나? 지은이는 학교 주변 편의점의 알바 오빠를 짝사랑하고 자주 들른다. 하지만 만화 중간에 유리는 지은이 본인에게 잠깐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 알바와의 '썸'을 박살내라고 지시하고, 지은이는 울며 따른다. 자세한 지시사항은 만화를 직접 보는 편이 낫다. 그 후 지은이의 행보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훌륭한 사냥개가 된다. 원래 밝은 캐릭터들이야말로 이면을 드러낼 때 낙차가 크게 나타나는 법이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을 못 다루는 것도 아니다. 공부벌레 반장이 짧지만 인상 깊었다. 살짝 정의로워지려다 마는, 그러니까 특히 공부 많이 한 소시민들이 많이 보여주는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차기작 배경이 고등학교라는 데 좀 불만스러웠다. 왜 차기작인데 물리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좁은 곳으로 들어가는지.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작품 전체적으로 흐르는 긴장감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롭다. 아마 여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고른 이유는 작가 본인이 디테일하게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극적이고 거대한 사건이 필요하다. 이런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다른 작품들도 많았다. 좋은 작품도 있고 별로인 작품도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사건이 일어나야만 인물들의 태도와 입장이 극적으로 변하고, 침묵하는 대상이 변하고, 또 가끔가다 우리가 그렇듯이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도 나온다. 그렇게 전개되리라 본다. 그 결과가 해피엔딩일지 파국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방법은 강해지는 것뿐이다. 강한 사람만이 폭력을 당하지도 휘두르지도 않을 수 있다.



* 하지만 여고 교실을 배경으로 잡은 건 여전히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고등학교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너무 흔하기도 하고. 어쨌든 아무리 잘 전달해도 '여자들 사이는 저렇구나' 정도로 이해할 사람도 참 많을 거다. 최소한 공학으로는 잡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뭐 작가님이 잘 하겠지.


*댓글을 보니, 다른 학교를 배경으로 삼은 만화 하나랑 표절시비가 걸렸나 보다. <교실 뒷편의 침묵>이라는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일본만화인데, 국내에 정식발매도 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뭔 내용인지 찾아봤는데...아오 씨발 아오...이 정도로 다른 만화들은 표절 아니라고 설득하기도 귀찮다. 그래 나도 저분들 나이때는 저렇게 멍청했겠지...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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