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통증 때문이었다. 이전까진 수영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살면서 물놀이 할 일이 총합 몇번 있을 것이며, 그때마다 개헤엄으로 떼우면 될 것이고, 또 목숨 걸고 역류를 거슬러 올라갈 일은 더더욱 없을 것 같았으니, 당연히 수영에 관심이 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2015년 여름에는 달랐다. 목과 어깨에 만성적인 통증이 생긴 지 1년 반이 지났고, 통증이 심한 날 산발적으로 찾아오는 두통도 똑같이 1년 반이나 됐고, 여름이라 이게 더욱 더 거슬렸으며, 그간 모든 의사들이 수술 같은 게 필요한 건 아니고 잘 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으니, 이젠 정말 남은 수십 년 동안 이 통증과 더불어 지내야할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사람의 몸은, 특히 그중에서도 뼈와 관절 인대 같은 것들은 죄다 소모품이었다. 잘 관리하면 더 오래가기야 하겠지만, 결국은 다 늙고 닳아빠질 것들이었다. 근 1년이 다 되가는 요즘도 그렇게 느낀다. 아픈 건 여전하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왼쪽눈썹 뼈 뒤쪽을 누군가 지긋이 누르는 것만 같은 통증이 있다. 엄지로 눈썹을 꾹 눌러대면 잠깐 사라지고, 손을 떼면 돌아온다. 일주일 정도 됐다. 그간 자고 일어나면 통증이 아직 남아있는지 사라졌는지부터 확인했다. 매일 실망스러웠다. 어제야 이게 편두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한쪽 머리가 조금만 아프면 아 편두통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수영을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병원에 입원했다. 수영하다가 다쳐서 입원한 것은 아니고 원래 MRI를 한 번 찍어보기로 했던 날이었다. 언제 봐도 생소하게 생긴 기계들로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나니, 간호사가 결과는 내일 나오니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였다. 맨날 나이 지역 학교 직업 묻는 게 한국인들 의사소통의 문제점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병실은 그런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마흔은 훌쩍 넘겨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보자 처음으로 물은 질문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였다. 아, 저는 MRI 찍으려고 하루만 입원한 거예요. 아저씨가 허리에 감고 있는 보호대를 보니 되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당시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나이가 꽤 있는 환자들이었다.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밤새 골골대는 옆자리 할아버지, 커튼 밖에서 들리는 환자와 보호자의 무기력한 대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환자와 환자의 대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아 저는 두통이 심해서 왔어요. 목이 아파서 머리도 아프거든요. 여기서부터 귀가 솔깃했다. 나랑 같은 이야기 아닌가. 제가 이십 대에 취직하고 그때부터 계속 머리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해도 일을 해도 집중을 못 하겠는데, 그렇게 30년 정도 살았는데 갑자기 통증이 딱 그치대요. 그래서 2년 정도 잘 지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운동하다가 또 목을 다쳤고, 머리도 아파요. 이젠 정말 이렇게 못 살겠어요. 지금까지는 아프게 살았어도, 지금부터 죽기 전까지는 멀쩡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왔어요. 미래의 내가 와서 말하는 것 같았다.


  의사는 역시나 같은 말을 했다. 디스크는 아니고요, 근육이 문제가 있는 거예요. 디스크는 아니고 근육 문제라는 걸 여태 몇 번을 들었을까.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동네 의사가 했던 말, CT를 찍었을 때 여의도 성모병원 의사가 했던 말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일이었다. 어쨌든 처방전을 타러 갔더니 간호사가 여러가지 조언이 적혀있는 유인물 같은 걸 하나 준다.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적혀있는데 수영은 하면 좋은 일이란다.


  당시에도 좀 의문스럽긴 했는데, 요즘도 수영이 그렇게 근육에 좋은 지는 정말 모르겠다. 당연히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며, 웨이트나 내가 수영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운동인 킥복싱 같은 것보다는 부상 위험도 적은 게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자유형에서 지속적으로 어깨를 돌린다든가, 접영에서 허리를 퉁겨주고 목을 쉴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등의 동작들이 과연 관절에 좋기만 할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병원에서 수영이라는 운동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 영향력을 따져서 수영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통증에 좋다는 통념에 따라 적은 것 같았다.


  수영장에서 들은 얘기 중에서도 비슷한 게 있었다. 얼마 전에 강사가 말했다. 절대 밥 먹고 바로 수영장 오지 마세요. 컨디션 안 좋으면 운동 나오지 말고 쉬시구요. 자기가 젊은 시절 다른 수영장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초등학생 아이가 수영을 하다 죽었다고 한다. 아이의 어머니가 직전에 라면을 먹이고 운동에 보냈다고 한다. 그땐 그런가보다, 먹는 걸 조심해야겠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얼마전에 본 글에서 수영 전에 먹는 것이 통념과는 달리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적혀있었다. 이 글도 또 어느정도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그 어머니가 이 글을 봤으면 조금이라도 낫겠다 싶었다.


  현대사회가 많이 문명화가 되긴 하였지만 아직도 신화적인 믿음으로 얼렁뚱땅 퉁치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수은으로 화장을 하던 수 세기 전 사람들을 보고 놀라며 비웃고, 또 그들이 결코 수은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것을 몰랐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사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평소에 잘 때 선풍기를 꼭 끄게 했어야 했다며 죄책감을 느끼고 살 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남은 시간 동안 헛다리만 짚고 살아야 한다. 슬프지 않은가. 이번 옥시 사태도 마찬가지다. 공기청정기 세척제가 문제였다는 게 밝혀질 때까지 가족들은 빈약한 지식으로 봤을 때 그럴듯해 보이는 원인을 붙들고 얼마나 스스로를 원망했을까?


  특히 자식이 수영을 하다 죽었다면 더욱 더 가슴이 아플 것이다. 수영장에서는 어린이들을 더 격렬하게 굴리는 것 같다. 수영을 시작할 때 저녁 7시 시간대로 끊었는데, 직전 타임이 초등반이었다. 물에 들어가서 고개 내미는 것도 힘들어하던 당시 내 관점으로 봤을 때, 아이들은 잘했고, 강사는 무서웠다. 금목걸이를 걸친 배불뚝이 남자가 아이들에게 이놈저놈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가면서 쉬지도 않고 돌렸다. 회원님들 힘들면 천천히 가라는 성인반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선수반이려니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였다. 정말 이상했던 건 엄마들이 거기에 아무런 불평을 표하지 않고 2층 창문에서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전국의 수영장에서 초등학생을 다 이렇게 가르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은 아이도 저렇게 수영을 하지 않았을까. 쉬지도 못하고, 몸상태가 안 좋아도 말할 틈도 없고.


  어쨌든 수영이 내 몸상태를 낫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많이 사라졌고, 딴 생각만 자꾸 하게 되는데, 그러면 왜 아직까지 수영을 하고 있나? 이제는 그냥 재밌어서 한다. 수영을 시작하고 2주인지 3주인지 지나서, 남들보다 한참 늦게 처음으로 자유형 비슷한 무언가로 물 속에서 25m를 기어갔을 때 느꼈다. 이걸 내가 계속 하기는 할 것 같았다. 비록 오늘은 25m였지만 앞으로는 더 오래 갈 수 있을 것이고, 오늘은 물을 많이 먹긴 했지만 하다보면 좀 덜 먹지 않을까.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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