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뉘른베르크에서 2박을 했다. 지금까지 써본 호스텔 중 가장 숨막히는 곳이었다. 방이 좁다든가 하는 물리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시설은 여태 가본 곳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 했다. 인터넷 속도도 괜찮았다. 가격이 있긴 했지만 이건 굳이 따지자면
연말인데 예약 안 하고 멍청하게 있던 내 탓이다.
호스텔 입구부터 한국어 안내가 붙어있어서 의아했다. 체크인용
서류에도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가 전당대회를 치르며 위용을 뽐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들을 재판했던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도시인데다가 구시가지도 나름 볼만하긴 한데...한국인들이 그렇게 나치에 관심이 많았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뉘른베르크 근교에 있는 로텐부르크와 밤베르크가 한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란다. 막상 두 곳은 교통도 불편하고 숙박도
마땅찮아 근처에 있는 뉘른베르크에서 숙박을 하는 게 보통이란다. 특히 이 호스텔은 중앙역하고 멀지 않아 인기가 좋은 듯 하였다.
그런데 과연 뭐가 문제여서 그렇게 숨 막히는 건가...하면 바로 이게 문제였다. 한국인들을 한 방에 몰아넣는가 보다. 6인실에 나
혼자 남자이고 나머지 다섯이 여자였다. 여자들은 둘에 둘씩은 일행이었고, 나머지 한 명만 혼자 다녔다. 그 한 명도 다음날
떠났고...방 안에는 대개 핸드폰 액정 두들기는 소리만 났다. 나는 없는 듯 지냈다. 내가 방 안에서 한 일이라곤 호흡과
수면뿐이었다.
그렇게 2014년의 마지막 아침이 왔다. 다들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나도 호스텔을 나와 뮌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뮌헨으로 가는 길도 전부 하얀색이었다. 도착해서는 나가보지도 않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연말이 되니 호스텔이 너무 비싸 에어비엔비로 방을 구했다. 집은 뮌헨의 동쪽 끝에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리니 온통 하얬다. 주택가였는데 아파트 벽마저 흰색으로 칠해놓았다. 발이 푹푹 빠져서 두루미같은 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지나간 거리의 이름이 미하엘 엔데 슈트라세였는데, <모모>의 미하엘 엔데가 아닐까 싶다. 그 미하엘 엔데 슈트라세에서 우회전을 하고 들어가니 바로 호스트의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역에서 멀지 않았는데 바짓단은 벌써 다 젖어있었다. 집주인은 이집트 출신의 중년 남자 존이었다. 독일인 아내와 함께 살고 있고, 두 아들은 장성하여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가 내가 한국에서는 뭘 했냐고 물었다. TV에서 일했다고 하니, 둘째 아들도 TV에서 일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태프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해요. 기타도 잘 치고 건반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는데, 알잖소. 경쟁이 치열하니 걱정이 많이 돼요.
존은 베테랑 여행가였다. 수십년 전에 론니 플래닛 책과 지도밖에 딱히 믿을 게 없던 시절부터 배낭여행을 다녔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건 상상도 못한 시대였다. 이동은 히치하이킹으로, 숙박은 마을 식당 같은 데 죽치고 있으면 종종 신기해서 그런지 불쌍해서 그런지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는 현지인이 반드시 있었단다. 독일에 직장을 잡고 산 지 수십년이 된 지금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간다고 한다. 올해만 해도 불가리아와 그리스에 갔다왔고, 내년 초에 휴가를 내서 고향인 이집트에 다녀올 것이라고 했다. 물론 젊은 날처럼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고 벌써 호텔방을 잡아놨단다. 그가 독일에 사는 것은 여행 갈 때 유리하다고 하였다. 일단 임금이 높은 게 가장 큰 장점이고, 유럽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어딜 가든 가깝고...여튼 그런 이유로 제2의 고향이 된 독일이 좋다고 했다. 그래도 24시간 내내 일만 하는 독일인들이 답답하긴 하단다.
내가 기차로 여행한다고 하니 걱정부터 해주었다. 그도 도이체반에 신뢰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독일은 신뢰의 나라 아니냐고 물으니, 도이체반은 예외란다. 대신 자동차와 고속도로는 신뢰할만 하다고 했다. 내가 부러워했다. 우리는 폭스바겐이 수입차인데 독일은 국산차라면서. 한국은 현대와 기아에요. 국민을 봉으로 알아요. 그러면서 전설적인 에어백 충돌각 사건과, 국과수 수사결과 거부 사건을 설명하니 존은 껄껄 웃었다. 존이 자기가 사실 폭스바겐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폭스바겐은 그런 일이 절대 없다고, 테스트를 많이 한다고,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한다며 푸념 같은 자랑을 하였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바로 보상하여 입 막을 회사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가 물었다. 한국에는 정부와 공권력보다 기업의 힘이 세나?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죠?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뭐라 설명해야 그나마 맞을까...내가 대답했다. 상부상조하는 관계죠....우리도 독일처럼 24시간 내내 일만 하는 나라에요. 더 심할 수도 있을 걸요. 그래도 현대가 결코 폭스바겐처럼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진 않을 거예요. 존이 거들었다. 그렇죠. 언제나 사람보다는 시스템이 문제지. 특히 부패가 문제고요. 내가 말을 이었다. 현대는 폭스바겐처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존은 한국이 이집트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이집트에서 가장 강한 세력은 경찰이란다. 경찰은 언제나 꼬투리 잡을 것만 찾아다녀요. 경찰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돈이 많으면 괜찮아요. 뒷돈을 찔러주면 되거든요.
내 방은 2인실이였다. 만약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새해를 보고 올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 혼자였다. 존은 내가 떠나는 날에도 예약이 아무도 없다면서, 체크아웃도 하고 싶은 시각에 알아서 하랬다. 일단 혼자
새해를 맞이하긴 싫었기 때문에, 유랑에 가입했다. 네이버의 유명한 유럽여행 카페다. 가입은 해놓은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안
했나보다. 그런데 가입한다고 글을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방문횟수 4회를 채워야 한다 하여, 아이폰으로 접속하고 패드로
접속하고 온갖 꼼수를 동원한 끝에 겨우 4회를 채웠다. 역시나 뮌헨에서 새해를 혼자 맞기 싫은 한국인이 나 혼자는 아니였다. 그
중 연락이 닿는 어느 남자에게 연락하고, 저녁 7시에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막상 중앙역에 도착하여 만나니 14명의 거대한
집단이 되어있었다.
뮌헨의 중심인 마리엔플라츠...가 멀리서 보이는 다리 위에서 새해를 맞았다. 그 다리에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뮌헨의 새해맞이 전통은 불꽃놀이다. 시에서 공식적으로 주관하는 것은 아니고, 시민들이 각자 준비해온 폭죽을
시내 전역에서 터트리는데, 이것만 해도 결코 규모가 작지 않다. 오히려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폭죽이 주가 되다보니, 다리 위는
불빛과 화약냄새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밤하늘이 색색의 연기로 물들었다. 종종 장난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소리만 큰 공갈탄을 던지고
도주했다. 나는 한 살 더 먹었다.
떠나기 전에 내일 아침에 보자고 존에세 호언장담했지만, 나는 새벽 두 시 조금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존은 아직 깨어있었다. 밤새 놀겠다는 패기는 어디 갔냐고 놀렸다.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다음날
뮌헨 관광은 해야하니까...라고 답했다.
새해 첫날은 여행 다닌 이래 가장 기력이 없던 날이었다. 어디가 아팠던
것도 아닌데, 그저 힘도 의욕도 없었다. 박물관이 몰려있는 쾨니히스플라츠, 그리고 유명한 님펜부르크 궁전만 들려서 사진만 찍다
왔다. 일찍 잠들었다.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보니 존 부부는 나가고 없었다. 식탁 위이는 차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열쇠는
탁자 위에 두고 가라는 쪽지가 있었다. 나는 점심 다 되어서 숙소를 나섰다. 눈은 그쳤고 해가 떴다. 눈이 부셨다.
20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