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쉽게 읽혀져? 2007. 11. 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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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탐미주의자는 아니다. 그건 확실하게 말할수 있다.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그런 전유물을 즐길수 있는 지식도 없고 돈은 더 없다. 어쩌면 '미'라는 것은 그걸 즐길수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나영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하고, 미술의 구도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하곤 아무래도 영 차이가 많다. 그러나 김훈의 문장이 예쁘다는 것은 알겠다. 그건 '탐미'하곤 좀 거리가 있다고 믿고싶다. 문장은 짧은데 템포는 느리다.

  어릴 때는 개를 키웠다. 개에 나오는 것처럼 진돗개였다. 노란털의 개는 아니었다.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도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와 고향 진도로 돌아왔다는 그런 '백구'였다. 아버지는 어린 개의 꼬리를 잡고 들고오셨고, 어쨌거나 애완견이라는 느낌은 0.1%도 안드는 태도인데다가 아마 내가 그 개를 봤을대 처음으로 했던 말은 "이거 먹을거에요?" 이랬던거 같다. 오해하지 마라. 난 개고기 못 먹는다. 난 정말 개의 안위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개의 이름은 "진자"라고 붙였다. 순전히 이름이 유치하면 오래산다는 어른들의 믿음에서 온 별명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가족중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진자는 5년을 살고

  어느날 사라졌다. 뭐 풀어놓았기 때문에 새벽에 지혼자 동네 왔다 갔다 하는 일이야 흔했고, 집에만 쳐박혀있으면 비 오는 날의 진자는 우울해보였기 때문에 아버지도 묶어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개장수가 데려갔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고기를 연하게 만든답시고···

  어쨌거나 다른 개주인들 다 하듯이, "사라진 개 찾습니다." 전단지는 붙여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나같이 사람 얼굴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뭐 개 얼굴 구분 잘 하는 사람 한 둘은 있지 않겠느냐-하고 사진을 붙여야 하는데, 문제는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뭐 전단지 붙이는 일도 어물쩍어물쩍 되어버리고, 결국 진자는 내게 이것밖에 안 되는 거였나 생각하니까 너무 찝찝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보리'고, 진자보다는 조금 더 센스 있는 이름이다. 태어나보니 개였고, 태어나보니 수컷이었다는, 굉장히 운명론적으로 사고하는 개다. 바다란 건드릴 수도 없는 아득한 존재고, 주인이 자신을 두고 옮기면 옮기는 것이지, 진도의 그 백구처럼 허벌나게 뛰어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떠올리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암캐도 깡패같은 개가 먼저 차지하자 '어쩔수 없지'하고 넘어가는 개다.

  김훈 문장의 담백함은 어쩌면 이런 반쯤 포기한 운명론에서 오는걸까?

  책의 마지막 쯤, 극도의 아이러니가 있다. 보리는 자신의 주인이 떠난 학교 운동장에서 웅변을 듣는다. 자신이 좋아하던 흰둥이는 고기가 되었고, 그 장면을 보리는 거기에 대해 어떤 반항도 안하고 한 번 짖지도 않고 어쨌거나 몰래 지켜봤다. 그리고 그 개주인 꼬마가 그날에 대해 슬펐다고 말하는 웅변을 듣는 것이다. 꼬마는 그 당시에 슬펐다면서 울면서, 상품으로 장난감 로봇을 주자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로봇을 들어 올린다. 보리는 거기에 대해 어떤 논평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결국 개는 꼬마에게 장난감 로봇으로 쉬이 대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  내게도 진자라는 한 '생명'은 그랬던 것 아닐까? 분노인지 회한이지 알수도 없는 개가 본 그 아이러니가 자꾸 머릿속을 멈돈다.

  이럴때 김훈의 운명론은 문장만큼 달콤하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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