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에는 악사들이 죽치고 있다. 그들은 악기 케이스나 깡통을 발치에 놓고, 그 자리에서 공연을 한다. 가장 흔한 것은 어쿠스틱 기타, 그 다음은 바이올린. 종종 하프 같은 진귀한 악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물컵마다 수위를 다르게 하여 두들기는 사람도 있었다. 슈퍼스타K 시즌 3 이후 대개 버스킹이라 불리는 이 행위가 관광지에서의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아닌지는 듣는 이 나름이겠다.

버스킹만큼 오래되고 대중적인 음악감상법은 지구 상에 없을 것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공연장조차 없었으니 당연히 모든 공연은 실외공연이었을 것이다. 공연장이라는 게 생긴 이후에도 대부분의 대중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연장 안에 들어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녹음기술 따윈 당연히 없던 시대였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직접 부르거나 남이 불러주는 걸 듣는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한 번 까닥이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에야 버스킹 한 번 보는 것조차 특별해진 것이다.

유럽에서 본 대부분의 버스킹이 실력부터 레파토리까지 고만고만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정말 여러 번 놀랐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일이다. 잘츠부르크는 온 동네가 모차르트로 도배가 되어 있는 곳이다. 정말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 동네는 뭘 먹고 살았을까? 기념품 가게가 모차르트 관련 상품으로 꽉 차 있는 거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마트에서 파는 초콜렛이나 증류주에도 모차르트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 왜 모차르트 얼굴 박힌 휴지는 안 나오나 모르겠다. 그렇게 똥을 좋아하시던 분인데. 어쨌든 도시 전체에 흥미가 꺾인 상태로 구시가지를 배회하는데,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깡통 하나를 턱 내려놓더니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성악을 공부했다는 건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쉽게 알 수 있었다.

끝없이 올라가는 옥타브, 청아한 음색...같은 거야 뭐 글로 적어봤자 와닿지도 않는 거고...오히려 작은 목소리로 낮은 음을 부를 때가 더 놀라웠다. 그녀와 내 거리는 스무 보에서 서른 보 사이, 그리 가깝지는 않았다. 그런에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귀에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처음에는 아 지금은 작게 부르는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계속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이상한 거다. 비슷한 거리에서 목청 큰 아저씨들 떠드는 것도 잘 안 들리는데! 마이크를 쓰는 건 당연히 아니었고!! 실내도 아닌 광장 한복판에서!!! 내가 성악 공연을 본 적이 없어서 이게 평균인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빈(비엔나)에서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살면서 봤던 모든 버스킹 중 가장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시청 쪽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앞쪽에서 전자기타와 베이스의 합주가 들렸다. 별 대순가 싶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바로 옆을 지나가는 순간 흘깃 보니 전자기타와 베이스가 아니라...빗자루와 삽이었다. 그냥 음악 틀어놓고 치는 흉내내는 건가 싶어서 인파를 비집고 바로 앞에 서서 살펴봤다. 정말 연주하는 게 맞았다. 자루에 홈을 파서 픽업을 달고, 꼭다리에는 나사를 박고, 거기에 줄을 감아 구색을 갖췄다. 이 미친 듀오를 잠깐이라도 보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관광객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다. 나는 아예 카메라를 꺼내 영상을 찍었다. 사실 다들 그러고 있었다.

돈을 넣은 적은 딱 한 번 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다. 비만 종일 내린 하루였다. 지루한 시내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워킹 투어라도 따라다닐 걸 그랬다. 재밌는 이야기 한 두 개 정도는 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쨌거나 바람막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하철 역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익숙한 가락이 들리는 것이다. 이 노래가 뭐였더라.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회색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의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전자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제서야 제목이 기억났다. R.E.M의 Losing My Religion이었다. 관객은 나밖에 없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10대 소년들이 스케이트 보드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의 정면에서 약간 비껴선 채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에 지갑에서 몇 푼을 꺼내 기타케이스에 넣고 그곳을 떴다. 그게 소피아에서 보낸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프라하도 거리 공연의 천국이었다. 가만 보아하니 여기선 버스킹을 하려면 면허 같은 것도 있어야하나 보다. 공연 중간에 경찰이 공연자에게 이것저것 확인하는 것도 봤다. 공연하기 괜찮은 장소가 많다. 먼저 천문시계가 있는 광장, 여기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바로 옆에 있어서 인파가 많다. 현지인인지 관광객들인진 모르겠지만 돈 주는 데 관대하다. 실력만 괜찮으면 수입도 꽤 짭짤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프라하 성 내부에서는 못 봤지만, 내려가는 길에서는 언제나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존 레논 벽에도 당연히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 곳은 레논하고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곳이라고 할 순 없다. 원래 체코의 젊은이들이 자유에 대한 열망을 담아 몰래 낙서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냉전 시기 동구권의 젊은이들은 암시장에서 비틀즈 테이프를 구해서, 몰래 골방에서 듣고, 친구들과 돌려 듣고 했단다. 그들은 그렇게 비틀즈의 팬이 되었지만, 꿈이 그리던 슈퍼스타를 직접 보는 것은커녕 공공장소에서 비틀즈 음악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벽에 처음으로 존 레논의 얼굴을 그린 청년은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스프레이를 잡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이 흘러 개방이 된 지금은 각지의 사람들이 찾아와 존 레논을 추모하거나, 자유와 평화에 대한 그들만의 글귀를 적곤 한다. 적어도 "갑순아 사랑해"와 같은 낙서가 없다는 점에서 이 벽의 존재의의는 아직 살아있지 않나 싶다.


내가 갔을 때도 한 남자가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비틀즈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에 기대어 서서 한참을 노래만 들었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곡이었다. Hello Goodbye, Yesterday, Let It Be...전부 폴 맥카트니 곡이다...음?


2014/12/21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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