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그 줄리엣이 맞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바로 베로나다. 셰익스피어가 이 아름다운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짰던 것이다.

줄리엣의 집은 오래된 주택의 기품이 있었다. 줄리엣이 실존인물이라고 해도 믿겨지겠다. 한쪽 벽에는 벽을 타고 내려오는 은은한 불빛, 맞은편에는 한 때는 색이 바란 벽돌과 투박한 흰돌을 겹겹 쌓아올라 만든 이층 집, 바로 옆에는 벽에 걸림 덩굴이 축 쳐져 말라가고 있으나 아직 노란 단풍을 떨구진 않았다. 아마 셰익스피어는 지금 내 위치에 서서 저 발코니를 보면서 상상을 했을 것이다. 발코니 위에는 가련한 소녀 줄리엣이, 마당에는 용감한 소년 로미오가 서 있고 서로를 눈을 간절하게, 그 홍채에 비친 자기 자신은 가련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로미오, 그대의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개뿔, 사실 이 집은 셰익스피어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일단 발코니가 1920년에 만들어진 것이고, 셰익스피어는 17세기에 태어나서 17세기에 죽었다. 게다가 이탈리아에 와본 적이 없을 확률이 높담다. 딱히 저 발코니도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이 줄리엣의 집처럼 보이려고 만든 것도 아니고, 그저 당시 집주인의 취향일 뿐이란다. 그러나 한낱 주택이었던 이 건물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만큼 우아했고, 여기에 각종 오해와 욕망이 얽히고 섥힌 지 백 년이 지난 작금에는 베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줄리엣이 실존인물인 줄 아는 바보들은 물론, 그리 로맨틱하지 않은 뒷얘기를 아는 사람들까지, 그들 모두 좁은 입구를 비집고 들어가 발코니 쪽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연발 터트렸다. 종종 마이클 잭슨처럼 발코니까지 올라가서 플래시 세례를 맞는 사람도 있었다. 용감하거나 여행자금에 여유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저택 대문부터 건물 외벽은 모두 낙서로 가득했다. 한국어 낙서도 좀 있긴 하지만...어디 가서 한국인만 낙서한다 하지 마라 기자들아. 정말 여기서 전세계의 모든 문자를 다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충 스치듯 본 것만 해도 로마 알파벳, 키릴문자, 아랍어, 한문, 히라가나, 한글 등등...그러나 언어가 다를지언정 내용은 한결같았으니, 보통 A♥B였다. 거기에 추가로 짧은 문장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내용이야 뻔하다. 오래오래 사랑하자 같은 게 많다. 일주일 연애하다 자살한 소녀에게 빌어봤자 별 효험은 없을 것 같다만. 혹시 줄리엣의 염장 지르는 건가.

이렇듯 줄리엣의 집은 운칠기삼이라는 오래된 격언을 상기시키는 곳이며, 다른 관광지도 까보면 싱싱한 건물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살짝 들게한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성이나 교회 같은 경우는 실제로 오래된 건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줄리엣의 집주인보다 훨씬 골치아픈 문제를 떠안고 있다. 특히 각종 율법에 따라야하는 교회가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 한 번 써 보자. 유럽의 교회들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당연히 촛불로 어둠을 밝혔을 것이다. 방법이 그거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촛불만 수백 년 쓰다가 갑자기 전구가 등장했을 때는 조금 당혹스러웠을 거다. 가정집에서야 감당만 되면 당연히 전구로 넘어가겠지만, 교회는 그럴 수 없다. 날이 어두워지면 불을 밝히는 행위까지 제의의 일부가 되어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계속 촛불을 쓰자니 썩 경제적이지도 않고 괜히 발품만 팔게 되어 번거롭다 그만 하자. 그러자 다른 수도사가 반기를 든다. 아니다 번거롭고 수고로운 것도 수도생활의 일부다! 이렇게 예송논쟁이 시작된다....실제로 내가 가본 성당 대부분은 전구를 쓰고 있었지만, 간혹 촛불을 쓰는 곳도 있긴 했고, 어처구니 없게도 촛불 모양의 전구를 쓰는 곳도 두 곳 봤다. 다행히 전구 모양의 촛불은 아직 못 봤다.

비단 율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영혼 없다고 욕먹는 공무원들이라도 괴롭긴 마찬가지일 거다. 특히 성을 관리하는 공무원이라면 더욱이. 아마 상관으로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위엄을 유지하되 시민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민족의 얼을 강조하되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고전적이면서도 새롭게 만들 것.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강조해야 할까, 혹은 무엇을 추가해야 할까? 내가 들러본 곳 중 부다페스트의 부다 궁전이 저 어처구니 없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었다. 강 건너에서 바라봐도 아름답고 위엄 있으며, 성 내부 마당으로 들어가도 여전히 18세기의 성 안에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야밤에 그 어떤 성보다도 아낌없이 조명을 틀었던 게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라고 본다. 자정을 넘은 시각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중세의 성곽은 기실 20세기의 산물이다. 19세기 사람이라면 헝가리의 황제였어도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시간이 지나면 옛것이 사라진다고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절묘하게 진화하는 것도 있다. 22세기의 부다 궁전 야경은 또 지금과 사뭇 다를지도 모르겠다. 못 보는 게 아쉽다.

그러나 이런 보완책이 언제나 성공적인 건 아니었다. 류블랴나 성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구시가지에서 올려다본 성곽은 여느 유럽의 성 못지 않게 훌륭했다. 그러나 성문 안부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성의 마당 정중앙에 서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면 여기가 성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단 유리가 너무 많았다. 레스토랑만 두 개가 있었는데 아예 외벽이 전부 유리로 되어있었으며, 그 레스토랑들도 내장부터 메뉴까지 중세의 성하고는 영 보조가 맞지 않았다. 성 안에는 미술관도 있었으나, 내부를 둘러보면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와 별 차이도 없었다. 성 안의 작은 공연장도 마찬가지였다. 디테일이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바닥재도 강원도 어디 펜션의 발코니에서나 쓸 법한 그런 것이었고...그놈의 유리벽 좀! 실내에서야 이해하겠지만 성벽 따라 걷는 길에 설치한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안전장치라고 생각한 건지.

아주 사연이 없진 않았다. 원래 류블랴나 성은 그을리고 무너져 황폐한 상태였고, 복원이라기보단 거의 새로 짓는 것에 가까운 형편이었다. 복원과정에서 싼 값에 후려치고 싶었는지 아니면 현대미를 살린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지...전자라면 안타깝고 후자라면 실패했다. 외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은 죽은 지 오래라지만, 도시의 얼굴로써 비싸고 맛없고 뻔한 레스토랑보다는 괜찮은 발상이 분명 있었을 거다. 내부 채플이 제 기능을 하게 유지해도 됐을 거고. 분명 성이 처음 만들었을 때의 대세였던 건축양식이 있을 터인데 왜 이런 선택을 했는 지는 모를 일이다. 근사한 도시의 옥의 티였다.


2014/12/16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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