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이야기에서 요리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기본적으로는 실제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와 같은 많은 기념일들이 초콜렛이나 사탕처럼 상징적인 음식이 있기 마련이고, 직접 만들어서 주는 걸 더 귀하게 여긴다. 굳이 기념일까지 따져보지 않아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늦은 밤 귀가하는 아들을 위해 차려놓은 어머니의 밥상이나, 연인과 소풍 나가는 날 새벽부터 일어나 설렌 마음으로 만든 5첩 도시락처럼. 반드시 만드는 일뿐만이 아니다. 생선가시를 대신 발라준다든가, 밥숟갈에 반찬을 얹어준다든가 하는 식탁 앞의 사소한 행동들까지 음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요리일까?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 중에서 요리만큼 정성과 창의력, 때로는 협동심(같이 만들든, 같이 먹든)을 동시에 요구하면서 일이 드물다. 청소나 빨래 같은 일은 고된 노동일 수는 있지만 그리 창의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랜 습관이나 매뉴얼에서 멀어지려고 하면 괜히 더 번거롭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요리도 매일 먹는 반찬이나 된장과 같은 기본재료를 만드는 것이라면, 늘 하던대로 굽고 볶고 무치고 삶아 만들겠지만, 타인에게 정성을 들여 해주는 것이라면 아무리 무심하고 덤덤한 사람이라도 재료의 선택부터 그릇에 담는 모양까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카스기가의 도시락>은 요리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다카스기 하루미는 지리학을 공부하는 30대 초반의 대학 연구생이다. 성실하게 공부만 해서 박사까지 땄지만 취업길은 세계경제의 미래만큼 캄캄해서, 만화를 보는 이들에게 대졸자 취업난은 여기나 거기나 거기서 거기라는 교훈을 준다. 그럭저럭 살고 있던 그에게 어릴 적 친했던 고모가 죽었다는 비보가 들어온다. 고모는 그에게 한 번도 본 적 없고 존재만 알고 있던 중학교 1학년의 어린 딸 쿠루리를 맡긴다. 그러나 하루미는 숫기가 없고, 쿠루미는 말이 없으니, 둘의 동거는 험난하기만 하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만 계속 지속되다가, 둘은 나름 공존과 공감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쿠루리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하루미가 남은 재료로 다음날 쿠루리가 학교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초딩이었던 쿠루리와 학문 외 다른 잡다한 일에는 관심이 없는 하루미가 같은 화젯거리를 가지고 비슷한 눈높이에서 이야기가 통할 리 없으니, 이렇게 서로를 먹여주는 일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비록 언어로 인한 대화가 어렵기 때문에 대체할 방법을 찾은 것이지만 효과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실제로 대화로 의사소통을 할 때도 언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채 절반이 못 된다고 하지 않는가. 사랑한다는 말보다 정성이 깊게 와닿는 건 애정이 깃든 행동이다. 둘은 그런 식으로 점점 가족의 모양새를 갖춰간다.


  만화에서는 둘이 집에 같이 있을 때가 아닌, 하루미의 대학 연구실과 쿠루리의 학교 생활도 보여준다. 국민공통교육과정만큼이나 전형적인 순정만화 캐릭터와 닳고 닳은 소재를 울궈먹는 쿠루리의 중학교보다는 하루미의 연구실이 아무래도 더 흥미롭다. 하루미의 연구실도 흔한 캐릭터들로 넘치지만 최소한 연구실에 가면 저런 사람 한둘은 있을 법 하다고 납득은 간다. 물론 이쪽도 극단적인 상황은 없고 연출도 잔잔한 건 마찬가지다. 지리학이라는 학문이 그렇다. 연구실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료를 수집하는 필드워크도 느리고 반복적인 작업이니 박진감 있게 그릴 수는 없다. <마스터 키튼>에서 고고학자 히라가 키튼의 이야기가 박진감이 있었다면, 그건 순전히 키튼이 고고학자이면서 동시에 예리한 직관의 보험조사원이자 뛰어난 전투력의 퇴역 특수부대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하루미의 이야기의 어디가 인상깊냐고 묻는다면, 그가 학자로서의 자세를 다져가는 모습 그 자체로 그러하다. 답사를 할 때마다 그는 같은 교훈을 배우고 온다.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가는 길이야 여러가지라도 결국 대상에 대한 애정과 정성을 내내 함께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머리로는, 그리고 익숙한 일에는 어느정도 잘 지키는 진리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그리고 새로운 일에는 태도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해야한다.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작중에서 하루미가 동료들에게, "이제 쿠루리가 내 연구과제"라고 말하는 것도, 단순히 쿠루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겠다는 것을 넘어, 최대한 마음을 쏟겠다는 그만의 표현이다. 이 마음이 생판 모르던 사람도 가족으로 묶어주는 질긴 끈인 셈이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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