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언제라고 안녕한 적이 있을랴만은 어쨌거나 「마스터 키튼」의 무대가 되는 90년대 초의 유럽도 그렇게 평안하지 않았다. (유럽은 아니지만) 미국은 늘 그래왔듯이 참 꾸준하게 전쟁을 하고 있었으니 그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오랜 대립끝에 뜬금없이 독일의 벽이 하나 무너지더니 소련도 참 무책임하게 무너졌다. 사람들은 윗대가리들이 말하던 사회주의가 거짓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동유럽에는 내전이 일어났다. 자본주의도 들어왔는데 덕분에 자금난에 시달린 키예프 동물원에서 펭귄이 쫓겨났다. 동시에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아주 거짓없이 잔인한 현실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철저하지 못한 어설픈 기회주의자들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술과 약에 찌들거나 철저하게 사람을 팼다. 과격단체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연대를 시작했다. 그들은 때때로 폭탄을 설치했고, 강한 나라들은 이따금 미사일을 날렸고, 사람들은 자주 죽었다.

  「마스터 키튼」의 무대가 유럽이 된 것은 아마 일본인들이 유럽에 가지고 있는 환상 같은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진만 찍으면 그림이 될 것 같은 동네인가 싶어서이다. 뉴요커라고 해봤자 스타벅스밖에 떠올리지 못하는(그런데 스타벅스도 사실은 시애틀이 원조라고 한다.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도 사진과 영화로만 본 유럽의 거리는 쉽게 떠올릴수 있다. 이것은 일본인만이 그런것은 아니다. 우리도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을 찍었다. 그림이 되잖아. 사실 동아시아만 그런것도 아니란다. 돈 좀 쓴 헐리우드 영화들은 하나같이 유럽을 현지 올로케로 돈다. 그것도 국지적으로 도는 것도 아니고 패키지 여행처럼 세트로 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듯이 2시간동안 파리, 프라하, 런던, 마드리드를 찍는 것이다. 그래서 제이슨 본은 그렇게 죽도록 뛰어다녔나 보다. 사실 교외에서 이민자들이 난동을 부리든가 말든가 보통 멀리 떨어져 TV로만 본 사람에게 파리는 샹젤리제 거리만 걷고 있으면 다같이 파리지엥이 될 수 있는 동네이다. 아름다워라.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는 상당히 오랜 기간을 유럽에서 체류했다고 한다. 그도 돈 많은 일본인이고, 또한 그 역시 그가 가진 판타지에서 자유로울수 없었다. 지역 맥주 브랜드까지 공들여 조사하여 유럽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다지만, 간간히 나오는 오류투성이의 영문 문장은 결국 이 만화가 어디 만화인지 알게 해준다. 일본 최고의 만화가라는 사람이 유럽을 동경하지만 결국 대개 그렇듯이 어색한 흉내만 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마스터 키튼의 등장인물들.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은 일본인과 영국인의 혼혈인 30대 후반의 보험조사원 히라가 키튼이다. 대학에서는 고고학을 전공했고, 사실 보험 조사는 부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발굴을 하고 강의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는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지만 그의 입을 빌리자면 군대는 너무 '현실적인 곳'이어서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파트너가 필요한 보험조사원 다니엘 오코넬과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고 보험조사원으로 일하게 되고, '현실'이 만만치 않아 10년이나 하게 된다.

  키튼의 일은 돈과 관련된 사항을 다루는 일이다보니 그는 온갖 치부를 다 보게 된다. 워낙 재주가 좋다보니 별 의뢰를 다 받는다. 잡도둑하고 얽히는 것은 하루이틀의 일도 아니고, 전직 특수요원'들'이나 마피아'들'의 일에도 얽히고 섥히게 된다. 이쯤 되면 사건에 얽히는 것도 또다른 재주가 아닐까 싶다. 김전일이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키튼이 유럽에 사는 것은 일본인들의 소망에 따른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키튼의 삶이 낭만적일뿐 유럽은 영 낭만적이지 못하다. 만약 '더러운 현실'이라는 표현의 현실이라는 단어처럼, 현실이 지저분하고 비열하고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것에 대한 단어라면 키튼의 유럽은 우리의 낭만을 넘어 참 90년대스럽게 현실적이다.

  키튼의 현실 정의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차이가 있다. 그에게 현실의 반댓말은 낭만이다. 키튼에게 현실은 시체를 찾아가고 치부를 들어내며 밥을 벌어야 하는 것이고, 낭만은 고고한 고고학의 세계이다. 누가 봐도 대단한 낭만주의자인 키튼은 그래서 늘 고고학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인간들이 하는 지저분한 일을 파헤치는 것이 키튼의 일이다. 그런데도 이 만화는 결코 하류인생스럽지 않고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수 있는지에 대한 만화가 아니다. 오히려 키튼의 일은 가끔 낭만스럽기 그지없다. 유럽도 사람사는 곳이니 그렇게 판타지에 젖을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현실은 보험 조사원이라면서 뻔뻔스럽게 고고학처럼 낭만적이라니, 어떻게?

  키튼과 오코넬이 10년전 처음 만난 일을 그린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발굴 현장이었고, 오코넬은 자살 사건을 조사하러 왔다. 그 와중 키튼이 팔찌를 발견했고 오코넬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키튼은 이것은 켈트족 부부의 낭만이 담겨져 있다고, 아내가 만들어 남편은 전투에 나가서도 그것을 차고 가족을 그렸다는 말을 한다. 키튼이 낭만적인 생각하는 고고학은 피상적인 형상을 넘어 사람의 냄새가 난다.

  그는 보험 조사원을 하지만 사람 냄새를 계속 찾으려고 한다. 보석의 순수한 아름다움보다는 거기에 깃든 사연에 주목하고, 기쁨의 벽이라는 곳은 단순한 문화재적 가치를 넘어 외톨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남을 용서할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이 된다. 요컨데 브라운관이 비쳐주는 유럽의 아름다움이란 것은 실은 연출된 것이고 현실은 뒷골목에 스킨헤드 마약판매자들이 넘칠지라도, 여전히 휴머니티가 있어 낭만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인 보험조사원의 이야기가 낭만적일수 있는 이유이다.

  마지막에 그는 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보험조사 핑계를 대고 홀로 발굴을 할 기회를 찾는다. 학문을 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일본의 대학에서 저열한 현실을 목격하고 이제 낭만적인 고고학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데···아뿔싸 루마니아 촌구석에서 돈이 최고라고 외치는 정치인의 떨거지를 만나고 만 것이다. 아 낭만 찾아 이국땅에 왔더니 이것 참 현실적이어라, 그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잡는다.

  놀랍게도 그가 내린 최후의 결론은 그동안 열심히 구분한 현실과 낭만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었다. 폭발에서 살아남고 그가 지킨 마을이 바로 그가 찾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현실과 낭만의 괴리를 논하는 대신, 낭만은 현실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한다. 동시에 현실은 낭만의 과정이다. 현실의 무심한 비참함에서, 예를 들면 전쟁 같은 데서 휴머니티가 피어나기도 하니까 현실은 낭만적일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현실과 낭만의 줄타기나 타협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에 앞의 자신들은 인정하기에 낭만적인 고고학을 하는 자신도 지금 현실에 괴리되어 있는게 아니라고 간주해 마음 놓고 삽을 뜰수 있다. 지난 몇 번 그는 현실이 피로하다고 고고학에서 멀어졌다만 그는 더이상 같은 이유로 학문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사는 부산하고 어지러운 세계는 우리의 환상 밖에서도 여전히 놀랍도록 화사하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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