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포로원정대

펠리페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박하 (2015)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짤을 보고 흥미가 생겨 책까지 읽게 됐다. 책소개만 읽어도 훌륭한 책이란 게 뻔했다. 2차대전 기간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인 포로 셋이 포로수용소를 탈출해서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케냐산 정상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수용소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훌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짤도 그렇고 번역된 타이틀명인 '미친 포로원정대'도 그렇고, 세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얼마나 황당한 인간들인지에 중점을 두는데, 당연하지만 이들이 단순히 미친 사람들은 아니었다. 특히 그 모험심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포로생활이 준 자유에 대한 갈망에서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였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해서 험난한 산 정상에 오른 후에 하필 수용소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들의 여정이 유독 똘끼넘치는 이탈리아인들이 마실이라도 갔다온 것처럼 묘사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자유에 대한 갈망이 넘치는 인간들이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한 모험을 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이들이라고 완전한 자유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도저히 모르겠고(실제로 케냐산 등반 이후에도 4년 정도 포로생활을 더 하였다), 남의 대륙에서 포로로 억류된 이방인이 영국군의 추격을  완벽히 뿌리치고 탈출할 자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즉 타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지배한다는 그 단순한 감각을 잠시나마 느끼기 위한 그들의 현실적인 한계가 포로수용소 창살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던 케냐산 정상이었던 것이다. 케냐산 정상을 한계점으로 삼은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충분히 미친 짓이었던 것이고. 요컨대 '미친 포로원정대'는 일탈을 즐기는 괴짜들이 아니라, 자유를 맛보기 위해 한계에 도전하는 위대한 모험가들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어보니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솜씨에 감탄했다. 계획을 짜고 등반과정에서도 선봉에 섰던 펠리체 베누치가 책을 썼다. 종종 문학을 인용하는 것만 봐도 독서량도 상당하고 글을 많이 써본 사람 같다. 문장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다가 갑자기 짧게 끊는다든가, 단순히 시간순으로 사건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종종 서순을 바꿔 더 흥미롭게 구성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쫀득하게 써낼 줄 안다. 위대한 작가들의 필수소양인 뛰어난 유머감각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건 삶의 고통을 대하는 그의 태도이다. 이 기막힌 모험담은 이 책의 대부분이면서, 동시에 6년의 포로수용소 생활이라는 나락과 공허의 일부분일 뿐이다. 반대로, 수용소에서 보낸 나머지 고통스러운 시간은 이 책의 일부이지만, 포로수용소 생활의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펠리체는 정면으로 응시하고 어떻게든 이 위대한 모험담과 엮어내어 삶의 한 부분으로,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어쨌든 인간 펠리체를 발전하게 만든 요소로서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정말이지 곧고 강인한 인간의 모습이다.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