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독일 드레스덴. 12월 중순이었는데, 일정을 딱 절반정도 소화했을 무렵이었다. 호스텔에 유독 일본인이 많았는데, 사실 이 때 빼고는 길가다 마주친 몇몇 빼고는 일본인을 단 한 명도 보지도 못했다. 세계적으로 일본인 배낭여행객이 그렇게 많다고 들었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같은 방에도 일본 여자 둘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 중인데 방학을 맞아 놀러왔단다. 통성명을 하자마자 작고 활달한 쪽에서 내게 물었다. 이름 보니까 한국인인 거 같은데, 맞죠? 네, 그래요. 그러자 두 여자는 호들갑을 떨어대며 말했다. 한국 완전 좋아요! 저 2월에 귀국하면 바로 한국 놀러갈 거예요! 내가 물었다. 서울로요? 서울 오면 뭐 해요? 서울 완전 좋아요. 쇼핑하기도 좋고 한국 음식도 맛있어요. 그리고 마사지! 이 대목에서 둘이 같이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고, 벙찐 내가 물어봤다. 서울이 마사지가 유명해요? 엄청 유명해요. 싸고 좋아요. 몰랐네요. 한국에서만 25년을 살았구만...

한국 마사지가 싸다니 처음에는 황당했는데, 일본인의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 대화 직전에 다른 일본인하고 했던 대화가 더 충격적이었다. 주방에 내려갔다가 만난 또래의 일본 여자였다. 세 달째 여행중인데 요즘 지쳐서 1월 초에 일본에 들어가서 보름 정도 쉴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리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이어서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대체 무슨 돈으로 그런 여행을 하냐, 재벌 3세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왜 그렇게 여행을 많이 하냐고 재미없는 질문은 던졌는데, 잘못 알아듣고 내가 원하던 답을 주었다. 질문을 잘못한 게 아니라 잘못 알아들은 게 맞겠지? ㅋㅋㅋㅋㅋ 어쨌든 대답은, 간호사인데 보수도 괜찮고 직장 새로 잡기도 쉽다고 하였다. 내가 여행 다니면서 직장 구하기 쉽다고 말한 사람을 딱 두 명 봤는데 그 중 한 명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보험일을 한다. 그 외 다들 취업난을 한탄하고, 독문과 나왔다고 하면 유독 한국인들만 어련히 내 걱정을 해준다. 안 해줘도 되는데.

다시 본론으로. 룸메이트 일본인과 대화를 계속해보고, 또 그간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해보니 대충 관광객들이 서울에서 뭘 하는 지 감이 잡혔다. 싸게 놀다 가는 거였다. 우리가 태국 같은 데서 그러는 것처럼.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없고 그냥 그렇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긴 중국인들이 자금성을 두고 굳이 경복궁의 위엄을 느끼겠다고 하진 않을 것 같다. 문득 궁금해서 외국인들의 서울 패키지 여행 코스를 찾아봤으나...뜻대로 검색에 걸리진 않는다. 미용 관련 투어가 많다는 것과, DMZ가 종종 코스에 껴있다는 건 알겠다. 다들 버스에서 우르르 내려서 피부 케어 받고, 다시 우르르 타고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뻔히 아는 사실을 한 번 확인하러 떠나는 것이다. 아마 여행사를 통해 오지 않는 사람 대부분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만 해도 외국에 자유여행이라고 나가도, 막상 보고 오는 곳은 패키지 여행으로 가는 곳과 큰 차이는 없다. 특히 인터넷 덕에 여행 계획 짜기가 더욱 쉬워진 요즘 세상에는 더욱 더 그렇다.

유럽의 도시는 대개 구성이 비슷하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하는 짓도 비슷하다. 그러면 당연히 그 도시의 광장에 갈 것이다. 또 광장이 높은 확률로 교회를 끼고 있으니 교회에 들리고, 성이 있다면 성에도 가볼 것이고, 박물관도 가고, 마지막으로 도시를 조감할 수 있는 탑이나 언덕이 있다면 당연히 간다. 여기까지야 어차피 도시의 얼굴인 셈이니 그렇다고 치자. 당장 현지인에게 이 도시에서 뭘 보면 되냐고 물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식당도 다 같은 곳으로 가서 주위 테이블을 둘러보며 저쪽도 한국인인가보다 소곤소곤 떠든다. 비난하는 건 아니다. 외국어 메뉴도 낯설고, 관광객이 굳이 유명하지 않은 음식점을 검증할 의무도 없다. 유람선마저 같은 배를 타지만 뭐 어떠랴, 많이 가다보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생기고 좋은 일이다. 일종의 소셜 커머스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빵 터졌던 적이 한 번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유랑에서 야경 원정대를 구했다. 일행 중 한 분이 인터넷에서 봤다며,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곳은 아니고, 그냥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이란다. 그래서 따라갔는데...그곳에 이미 한국인 십여명이 우르르 모여있었다. 다들 따로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가 한국인임은 의식하지만 말은 걸지 않는 기묘한 분위기에서 다들 셔터만 눌러댔다. 아마 대부분은 그 추천글을 봤을 것 같다. 한국인만 그러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일본인에겐 일본인 사진 포인트가, 중국인에겐 중국인 사진 포인트가 있으리라 믿는다. 서구인들은 잘 모르겠다...영어권 사람들은 정보량이 많아서 여러 포인트에 퍼져있을 것도 같고, 아무래도 유럽 여행 오는 게 우리처럼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그래도 여전히 웃기긴 하다. 말이야 자유여행이라지만...집에 있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여행을 하든 자유롭다는 게 쉽지가 않다.

파리에서 거의 매일 에펠탑에 놀러갔는데 막상 올라간 건 떠나기 전날 뿐이었다. 에펠탑은 1층, 2층, 꼭대기층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아쉽게도 꼭대기층은 점검 중이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이왕 온 김에 2층까지라도 올라가려고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그냥 걸어올라가기로 했다. 에펠탑 걸어올라가지 말라는 말 많이 들었는데 꼭대기까지 가는 게 아니라서 별로 힘들진 않았다. 야경은 봐줄만 했다. 역시 에너지 절약 같은 걸 생각하지 말고 불을 팡팡 켜야 야경이 볼만해진다는 내 이론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올라와서 할 게 사진찍기밖에 없으니,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날도 춥고, 꼭대기층도 안 열었는데 이 정도면 성수기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어올라올까.

문득 프라하에서의 일이 기억났다. 샘 누나와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나가는데 목조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계단 타고 3m 정도 올라가면 작은 난간이 있는데,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냥 조금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게 전부다. 샘 누나가 말했다. 내 친구가 저거 보고 바보 같다고 말했어. 뭐하는 짓이냐고. 하지만 그 바보 같은 구조물에도 사람들이 출근시간 지하철처럼 바글바글 몰려있었다. 프라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이후에 가본 거의 모든 크리스마스 마켓에 유사한 구조물이 있었다. 붐비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우린 높은 곳을 좋아한다. 그냥 그렇게 되어있다.


2015/1/30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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