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센에서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 신년을 같이 맞았던 사람들을 우연히 만났다. 그 중 한 분이 마침 빈에서 유학을 하던 유학생이었는데...무슨 맥락에서 갑자기 내가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이 웃고 떠들 때 별 맥락이 없는 법이니. 어쨌거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빈에는 아름다운 궁전도 있고, 멋진 예술품도 많아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의 빈이 그렇게 예술을 사랑하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도 경복궁이 쇤브룬이나 벨베데레 궁전만큼 돈을 벌어다주면 열렬히 사랑할 걸요? 조선왕조를 부활시킬 지도 몰라요. 우리는 국교가 자본주의니까요. 비꼬는 거 아니에요. IS보단 낫잖아요.

보통 여행 코스로 함께 묶이는 부다페스트에서도 프라하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도시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모습을 유지하는데 열정적이다. 하지만 이 유물들과 관광수입이라는 연결고리가 끊겨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올록볼록한 돌길을 걷어내지 않을지, 도시를 순회하는 마차가 다닐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 미술품을 복원할까? 사랑은 시험받을 때에만 확인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파리는 달랐다. 파리는 굳이 시험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파리는 예술을 사랑하는 게 맞다. 본인들이 가진 것에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며, 문화적인 성취를 나누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다. 비록 패스트푸드 매장 화장실조차 돈을 쳐받을망정.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느꼈다. 먼저 세느강이 내려다보이는 가가막힌 위치부터. 오르세 미술관은 그렇게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1986년에 개장했다고 하니 아직 30년도 못 채웠다. 이 자리에는 1900년대 건물을 짓기로 한 것이다. 원래는 부지에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었는데, 프랑스 문화부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 자리에는 루브르와 국립현대미술관 사이를 채우는 박물관을 지어서 박물관 벨트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렇게 실현됐다.

입장료도 대담했다. EU 거주민은 무료, 외국인 학생은 8.5유로...내가 가 본 유럽의 다른 유명한 박물관에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가격이다. 수요공급을 고려한 가격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파리까지 관광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저 두 배 정도 가격까지는 무리해서 쓸 용의가 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흐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빈에서 클림트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게다가 굳이 급을 따지자면 오르세가 저들에게 밀릴 것도 없다. 지구 상에 이 정도의 컬렉션을 갖춘 박물관이 몇 개나 되겠는가? 표값과 상품값으로는 박물관 유지가 안 될 것 같가. 아무리 사람이 많이 온다 하여도 EU 지역을 제외하면 수입이 확 줄긴 할텐데, 이 정도 규모의 박물관에 이 비싼 미술품들을 유지하려면 국고보조가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정확한 지는 모르겠으나 루브르도 비슷한 가격이라고 들었다.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랑스인도 외국인도 바글거렸다. 조각상이 가득한 로비를 걷는데 낯이 익었다.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음에도 기시감이 드는 것 보면 오르세 미술관 내부 사진을 한 번도 안 보고 살 수는 없나보다. 아무리 피하려해도 비틀즈의 음악을 피하고 살 수는 없는 것처럼. 바로 후기인상주의 관으로 들어갔다. 고흐 박물관에 없던 고흐의 그림들이 목적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고흐의 작품을 겨우 스무점 정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고흐는 수퍼스타라서, 오르세 박물관에서 파는 각종 상품에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이 붙어 있다. 하지만 고흐의 작품세계를 대하는 관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은 당연히 유명한 그림이긴 한데, 두 점이 있다. 1년의 간격을 두고 다른 곳을 그린 것이다. 론 강의 밤하늘을 그린 먼저것을 오르세가 소장하고 있고,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뒤의 것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여러 장 그렸고 유명한 침실 그림도 다른 크기로 두 번 그렸지만, 유독 <별이 빛나는 밤>의 두 버전은 차이가 심하다. 뒤에 그려진 그림이 별빛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일그러져있는 그림이다. 우리가 고흐하면 흔히 생각하는 화풍이다.

재밌는 것은 여기에 대한 오르세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정신질환의 악화로 인해' 화풍에 왜곡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반 고흐 미술관 쪽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는 고흐가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불굴의 정신력으로 걸작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학계에서는 일단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만...반 고흐 미술관이 그의 조카가 설립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만약 고흐가 정신병자라는 게 대세라 할지라도, 반 고흐 미술관에서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정황만 놓고 보면 반 고흐 미술관이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반 고흐 미술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고흐는 새 스타일을 찾기 위해 새로운 풍경을 찾아 다닌 완벽주의자이다. 게다가 그 스타일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천천히 변하는 과정이 분명히 남아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그림을 디테일하게 설명한 후, 이 그림이 '추상'을 시도한 것인데 실패했다고도 적어두었다. 이러한 세세함이 정신병의 결과라곤 그리 믿기진 않는다. 사실 좀 삐딱한 생각도 든다. 오르세 박물관이 이 그림이 아니라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디오가이드에서 되려 스타일의 발전이라고 언급하지 않았을까.

미술의 역사적 흐름도 잘 모르고, 그림을 봐야 할 때 뭘 봐야할 지도 잘 모르고, 결정적으로 관심도 없다만...누구는 목숨 걸고 지켰고 누구는 보고 눈물 흘리는 걸작들이 지척에 두고, 모른다 관심 없다, 이런 식으로 오기를 부리며 지나치는 것도 멍청한 짓 같았다. 눈이 있고 뇌가 있으니 보다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계속 보다보니 나름 미봉책이나마 있었다. 그나마 조금은 아는 음악, 문학 혹은 영화에 비유해 보는 법 하나. 미술관 안의 그림들끼리 비교해보고 대조해보는 방법 둘. 오디오 가이드와 설명 몇 줄 가지고 작가의 상황과 생각을 추측해보기 셋.

예를 들자면...기독교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시대를 토대로 한 미술은 당대의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쉽고 뻔한 모티브를 장엄하게 풀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런 그림이 그려지던 시기에 저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스 로마 역사는 몰라도 최소한 성경은 익숙할 것이다. 개중에서도 독실한 신자라면 그림이 어느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대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간결하다. 생각해보면 이제 성경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곳은 헐리우드밖에 없긴 하다.

인간을 다루는 신고전주의 그림들도 별 차이가 없다. 비록 낭만주의의 가벼움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유파라곤 하니만, 물량으로 압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아무리 감수성이 떨어지는 인간이라도 한 눈에 쉽게 차이를 알아챌 수 있도록. 마치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선 위엄 서린 동상처럼.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크다는 이유만으론 역사에 명작으로 남기 힘들 것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판을 크게 벌일수록 퇴보하듯이.

사실 오래되고 거대한 그림들은 그리 재미가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그림의 요소를 짚어주면서 그림의 요소요소가 어떤 상징이 있는지 짚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린다면 나라도 그렇게 할 거 같다. 그리고 그 메세지들도 대개 훈계두는 말들 뿐이다. 방종한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등등...뻔한 말들. 계속 보다보니 회화라는 장르의 감정 전달 범위에도 의심이 든다. 회화에서 열등감 같은 감정을 묘사할 수 있을까?

계속 보다보니 당연히 그림끼리 비교를 하게 되는데, 무얼 보는 건 필연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고 나쁨은 상대적인 가치 아니겠는가? 싫은 것보다 낫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좋은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낮이 있기에 밤이 있고, 밤이 있기에 낮이 있듯이. 밀레의 그림을 봤을 때 느꼈다. <만종>과 같은 그림이 있었다. 고흐가 갓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밀레를 진정한 농부들의 화가라며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의 고흐도 스스로가 농부의 화가가 되기를 바라며 밀레가 그랬듯이 농민의 삶을 화폭에 담았다. 하지만 적어도 농부의 화가라는 범주에서 둘을 비교한다면 밀레의 그림이 압도적이었다. 둘 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묘사했다만, 인물을 후광처럼 비추는 밀레의 빛은 고흐가 결코 가지지 못한 것이다.

박물관에서 새로 알게 된 화가들 중에는 쿠르베가 제일 좋았다. 그림에 담긴 전복적인 사고가 좋았고, 사회주의자냐는 색깔론적 질문에 리얼리스트라고 답하는 패기도 멋지다. 하지만 그가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불만이 좀 많을 것 같다. 벽 한 쪽을 다 채우는 사실적인 그림만 몇 점을 그렸는데, 도록의 작은 그림으로 보면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 죽는다. 모니터 액정으로 보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것으로도 시대마다 작품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수도 있겠다.


2015/1/29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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