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을 다시 만난 것은 이날 오후 세 시였다. 파리에서 댄에게 연락을 취했다. 댄이 살고 있는 캔터배리에 찾아가겠다고. 하지만 댄은 내가 도착하는 주말에 아마 런던에 있을 것이라며, 그때 보자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더 편했다. 뭔 일이냐고 물었더니 데이트란다. 허 참...

3시에 테이트 모던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두 시쯤 테이트 모던에 도착해서 대충 둘러보면서 밍기적대다가, 세 시 딱 맞춰서 문으로 갔다. 정문으로 오라고 했는데 뭐가 정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탬즈 강변에 있는 출구로 갔는데, 다행히 한 번에 맞췄다. 댄이 롱코트를 걸치고 여행 같이 다닐 적 모습 그대로 서있었는데, 그 옆에 서 있는 흑발의 훤칠한 미녀가 아마 데이트 상대인 것 같다.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댄 바로 앞에 섰다. 오랜만이네요. 댄이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했다. 아, 옷이 바뀌었네. 그 오렌지 색 패딩 입고 올 줄 알았는데. 내가 대답했다. 추워서 더 못 입어요. 프라하에서 새로 산 거예요.

여자는 불가리아에서 온 유학생이라든가, 직장이라든가...까먹었다. 어차피 곧 일이 있어서 돌아가야 한단다. 댄이 내게 물어봤다. 바래다주려고 하는데 따라올래? 어차피 떨어져봤자 할 일도 없고 연락할 수단도 없어서 그러기로 하였다. 레스터 스퀘어 역에서 열차를 탄다는데 좀 거리가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가는 길에 댄이 물어봤다.
런던 어때?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주 좋아요. 파리랑 비교하면? 여기가 훨씬 낫죠. 물론 파리가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그래도 세상에 크리스 스테인 사진전 같은 거 하는 곳은 런던밖에 없을 거예요. 크리스 스테인이 누구지? 블론디 기타리스트요.

여자가 물었다. 런던에서 뭐 하셨어요? 내가 구구절절 사연을 풀었다. 어제는 그냥 잤어요. 오기 전날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한 잔 했는데 숙취가 너무 심해서. 많이 마시지는 않았거든요. 별로 취하지도 않았고. 한국인을 만나서 와인 각 일 병씩 했고, 그 사람들은 취했는데 전 그 사람들 방까지 올라가는 거 지켜보고 잤어요. 그런데 다음날 일어났는데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화장실 가서 토했는데...전날 먹은 와인이 하나도 소화가 안 되고 위장에 그대로 있더라구요. 8시간동안 술 마신 거랑 같은 거죠. 여튼 그 다음에 유로스타 타려고 출국검사장 갔는데 거기 아줌마가 여권검사하다말고 저한테 물어봤어요. 괜찮아요? 안 괜찮은데 괜찮아질 거 같다고 대답하고...그대로 숙소에 오자마자 뻗어서 잤죠. 오늘은...일어나서 씻고 일찍 나와서 이곳저곳 둘러봤어요. 국회의사당도 가보고, 웨스터민스터 사원도 가보고, 버킹검 궁전도 갔고, 하이드 파크도 갔고...하이드 파크는 물 다 뺐던데. 여자가 물었다. 버킹검 갔다 왔다구요? 거기 좋죠? 내가 고개를 저었다. 말똥 밟았어요. 둘이 웃었다. 댄이 물어봤다. 새 똥? 헌 똥?

댄과 여자는 서양식으로 양볼에 입을 번갈아가며 맞추며 작별인사를 했고, 나와 여자는 뻘쭘한 분위기 속에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여행 즐겁게 하세요. 네, 고마워요. 그녀가 플랫폼으로 내려가자 댄이 내게 물었다. 어때? 내가 대답했다. 만난 지 20분 됐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굳이 사귀게 되지 않더라도...좋은 사람 만나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니까. 내가 동의했다. 맞아요.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이제 축구 보러 가요.

FA컵 32강전 브라이튼 대 아스날. 아스날이야 말할 것도 없는 나의 팀이고, 브라이튼은 댄이 영국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팀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브라이튼에서 일할 때 응원하기 시작했단다. 내가 말했다. 데이트 잘 했으니까 대패해도 참아요. 솔직히 브라이튼 대 아스날인데 뭘 기대해요? 댄이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소호에서 경기를 틀어주는 술집을 찾았다. 댄이 물었다. 중계는 스카이스포츠에서 해주지? 내가 대답했다. BT스포츠인데...대답을 들은 댄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좀 어려울 수도 있어. BT는 안 해주는 데도 종종 있어서...

댄의 말이 맞았다. 삼십분을 걸어다녔는데 한 곳도 없었다. 내가 불평을 터트렸다. 독일에서도 벨기에에서도 경기보는 데 아무 문제 없었는데 영국에서 경기보는 게 어떻게 더 힘들 수가 있어요? 댄이 거들었다. 심지어 런던 팀 경기인데 말야. 한참 돌던 우리는 어쨌거나 결국 경기를 틀어주는 술집을 찾아냈다. 이미 전반이 10분이나 지나있었고, 한 골이 터졌는데 당연히 아스날의 선제골이었다. 댄이 고개를 저었다. 곧 추가골이 터졌고, 댄은 머리를 싸맸다. 술집 안은 다들 아스날 팬들 뿐인지 축제 분위기였다. 내가 댄을 위로했다. 데이트 잘 했잖아요.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아스날 대 브라이튼인데 뭘 기대해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무기력할지는 몰랐지.

결과적으로 브라이튼은 후반전에 생각보다 분전했다. 최종 스코어 3:2. 솔직히 상대가 약체라 좀 대충해서 그렇지 제대로 했으면 점수차가 더 났을 것 같다만, 이러나저러나 승리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댄이 들릴 가게가 있다 하여 일단 따라갔다. 가보니 DVD나 음반 따위를 싸게 파는 곳이었다. 정말 싸긴 쌌다. 대부분 5파운드 정도였다. 나도 혹해서 몇 장 질렀다.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차이나타운에 갔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웨이터가 메뉴판을 갔다주먼서 중국어로 발을 걸었다. 나도 중국어로 한 마디 하였고, 웨이터는 그때부터 영어로 말했다. 웨이터가 떠난 후 댄이 물었다. 뭐라고 한 거야? 중국어 못한다고요. 중국어로? 네.

식사를 마치곤 빅토리아 역으로 향했다. 댄이 이미 기차를 예약해두었다고 한다. GPS로 방향을 잡고 거침없이 이동했는데,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다. 이 동네에 이런 골목도 있었나. 댄이 혼잣말로 말했다. 어쨌든 계속 길을 갔는데, 막다른 골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길이 막힌 건 아니었다. 다만 굳게 닫힌 문 앞에 총을 든 경찰이 지키고 있었을 뿐. 한숨을 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경찰이 우리를 불러세워서 건물 사이에 작은 골목길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영국에서 경찰이 총을 들고 있는 게 흔한 일은 아니야. 댄이 턱으로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준 경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프랑스도 경찰하고 군인 쫙 깔렸어요. 웃긴 건 그래서 소매치기가 적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내가 말했다. 실제로 파리 곳곳에서는 두 명 세 명 조를 이룬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고국의 소식이 있었다. 내가 댄이 알리도 없는 걸 물었다. 지금 한국에서 톱뉴스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댄이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에드 시런 아니야? 대세더만. 내가 웃었다. 에드 시런이 한국투어도 온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고...고등학생이 IS에 가담했어요. 트위터에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적어놓고요. 댄이 얼굴을 찡그렸다. 끔찍하네. 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할까. 모를 일이다. 그 학생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겠고, 저 거친 황야까지 가기로 한 원동력이 뭔지도 모르겠고, 인터넷으로 습득한 지식으로 만든 좁은 세계관 때문에 용렬한 짓을 했다고 한 줄로 논평하려 해도, 하필 IS에 들어갔다는 것이 머릿속에서 도저히 연결이 안 된다. 대체 누구랑 싸우려고? 이해가 안 가는 일 투성이다.

프랑스에 있을 때 제일 먼저 들렸던 장소가 그랑모스크였다. 테러 이후 파리에 사는 무슬림들의 분위기가 궁금했다. 뭐 거기 간다고 단박에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평소 분위기를 알아야 제대로 비교가 되겠지만...막상 가보니 별 일 없었다. 경찰인지 군인인지 순찰을 돌고 있었지만, 다른 관광명소보다 특별히 삼엄한 것도 아니고, 그랑모스크에 딸린 중동식 카페에도 시민들이 잘만 들락날락거렸다. 기도실도 터키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기도실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문 안쪽만 흘겨보는 나 같은 관광객도 종종 있었다. 좀 어슬렁거리다가 정원이 예뻐서 사진 몇 장 찍고 나왔다. 무장경찰만 제외하곤 아마 일상적인 풍경일 것이다.

거대한 비극에는 종종 최소한의 희망을 보여주는 작은 미담들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당장 이번에도 슈퍼마켓으로 테러리스트가 쳐들어오자 무슬림계 직원이 유대계 손님을 창고에 숨겨준 일화가 있다. 감동적인 일이고 그 용기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이게 종교 간의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본다. 파리에서 무슬림 슈퍼마켓 직원을 맞딱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그만큼 파리에서 아랍계 인구가 많았다. 파리 인구 이백만 중 아랍계를 포함한 이민자 수만 사십만이고, 부모 중 일방이 이민자인 20세 이하의 이민 2세를 포함하면 육십만이 된단다. 이미 오래 전에 프랑스로 건너온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사건 이후 한국의 이민정책을 되짚어보자는 말이 나오는데, 당장 프랑스와 비교하기에는 현실상황이 너무 다른 것 같다.

다시 테러만 놓고 이야기를 해보면...교황이 말했던 "표현의 자유에도 제한이 필요하다"라는 발언이 그나마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발언만 놓고 보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말도 충분히 위험하긴 하나, 말의 속뜻은 어떤 제도작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종교를 공격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것이었다.

테러가 일어나기 몇 년 전 그 만평을 처음 봤을 때 무슬림도 아니고, 종교에 상당히 부정적인 내가 봐도 불쾌했다. 무함마드에게 무기를 쥐어준다니, 밑도 끝도 없는 조롱이었다. 대체 누구를 표적으로 삼은 것일까. 2011년의 일이다. 탈레반 정권이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노렸을까? 많은 악행을 저지른 독재정권이긴 하지만 박살난 지 수 년이 지났다. 아니면 물밑에서 꿈틀대던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 집단? 그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로 조직원을 모으고 집단을 결속시키기는 하겠지만...그래도 대체 무함마드에게 무기를 쥐어준다는 게 무슨 건설적인 비판이고 효용이 있나 싶다. 파리에는 모스크 안 다닌지 오래된 나일롱 무슬림도 있을 것이고, 분노로 끓어넘치는 원리주의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이슬람에 뿌리를 두고있는 한 강도는 달라도 다들 적개심을 느낄 것이다. 이 적개심이야 말로 극단주의자들이 바라지 마지않던 것이다.

파리에 있던 5일 간은 아주 안전했다. 파리에 있는 소매치기들의 신기에 가까운 수법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물론이고 파리에 머무르던 다른 사람들도 별반 위험한 일을 못 겪었다는 것이다. 테러 이후 경찰과 군인이 거리에 쫙 깔린 탓인 것 같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2015/2/9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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