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코 투르노보에 도착한 건 오후 세 시. 비스트(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맞다!)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한 방 찍고, 버스에 내려 숙소로 들어갔다. 에어비엔비에서 찾은 아파트였다. 난방도 잘 되고, 온수도 잘 나오고, 쓰진 않았지만 주방도 깔끔했고...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인터넷이 수리중이라 하였다. 그러면 미리 말을 해주든가!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냥 나중에 와이파이 터지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다음 숙소를 잡든가 하고....일단 밥을 먹고.....피곤하니까 잠을 자야지. 내일 아침까지 자자.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제일 유명한 건 불가리아 제국 시절의 요새라는데, 요새는 분명 산 정상에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내일 많이 걸어야 할 것이고, 많이 걸으려면 체력이 필요하니까...밤에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잠이나 자고 말지. 이때가 오후 5시 반.
그리고 밤 10시 반에 깼다. 자고 일어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해야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거리로 나갔다. 벨리코 투르노바는 산간 도시라 길이 좁다. 구시가지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모든 밤문화가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멜론 라이브 클럽도 마찬가지였다. 맥주 한 잔 하고 밴드 공연 하나 보지, 뭐. 그리고 돌아가서 자면 돼, 하여 내려갔는데 빈 자리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바에도 빈 자리 하나 없었으니. 술은 무슨 술이람 3일 전이 꼴아노고선, 하고 올라가려는 순간 누군가 날 붙잡았다. 키가 크고 안경 쓴 청년이었는데, 옆엔 아시아 여자 둘이 있었다. 그 친구가 물었다. 아시아에서 왔어요? 그런데요. 이 친구들은 중국에서 왔는데, 같이 놀아요. 혹시 모르잖아요 아시아인 여자친구 생길지 껄껄껄껄. 중국 여자애들도 대강 보아하니 초행길인가 보다. 외국이라 낯설어선지 아니면 이런 곳이 낯선 건지. 내가 물었다. 껴도 돼요? 청년은 흔쾌히 동의했다. 따라가니 앉으니, 일종의 유학생 모임인 거 같다. 네덜란드, 터키, 벨기에 등 다국적 군단이었다. 며칠이면 까먹을 이름을 교환하고 자리에 앉았다. 라이브는 없냐고 물어보니,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가 곧 라이브가 시작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중국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가장 쉬웠다. 이름은 웨이웨이와 메이링. 나는 일단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중화민족이 없었으면 소피아에서 아사했을 거예요. 둘은 깔깔 웃었다. 중식 좋아해요? 다들 좋아하잖아요. 일단 불가리아 음식보다는 좋아해요. 하지만 그 중식당을 불가리아 사람이 하고 있다는 말에는 심각한 거부감을 표시하였다. 아니 그래도 일단 요리는 중국인이 하는데요. 웨이웨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중국인이 해야만 진짜에요. 여기 벨리코 투르노보에는 세 곳 정도 있거든요. 꼭 들려보세요.
단정하고 예의바른 친구들이었다. 영어를 아주 정확하게 구사하려고 했고. 여행객은 아니었다. 유학생이었고, 불가리아에 온 지 20일 정도 됐단다. 뭐 배우러 온 건데요? 머쓱한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불가리아에서 영어를 배워요? 대체 왜?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그런 걸요. 불가리아에서 영어공부하는 거나, 불가리아인이 중식당 하는 거나....
오늘은 저 마틴이란 친구가 자기 친구들 노는 데 같이 데려온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친절하고 유쾌했다. 그 중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네덜란드 사람 핌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비스트의 나라에서 와서...는 아니고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다온 적이 있단다. 한양대였어요. 왕십리역. 내가 지하철 노선도로 왕십리를 보여주니 무척 좋아해했다. 맞아요,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쭉....(그리고는 강남의 유명한 클럽 이름들을 대더니)....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는데. 아 정말 다시 가고 싶다, 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나보곤 기념으로 같이 사진을 찍자더니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려버렸다.
솔직히 라이브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기타, 키보드, 드럼, 여성보컬. 매력터지는 보컬이 노래도 잘 불렀지만...여튼 노라 존스스러운 음악이 나와 맞진 않는다. 그래도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춤추고 난리가 났다. 웨이웨이의 반응이 재밌었다. 이런 데 정말 와보고 싶었어요. 꿈 같아요. 내가 물었다. 중국에는 없어요? 있긴 있는데, 부모님이 반대해서요. 그냥 뭐랄까,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셔요. 마침 마틴이 메이링의 목도리를 잡아당기면서 장난을 치길래, 내가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요? 웨이웨이가 웃었다. 한국에도 이런 공연장이 있나요? 이 질문에는 자신있게 답해줄 수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널렸죠.
끝나고 클럽에 가자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동의했으나, 맥주 겨우 한 잔 마시고 신물이 올라오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나는 원래 한 번 숙취에 시달리면 며칠은 밥 먹기가 힘든 사람이니, 더 무리하면 안 된다. 핌은 간단하게 굿바이 코리안 가이, 라며 나를 보냈지만 일행 중 한 명은 정말 호들갑을 떨면서 나를 보냈다. 3개월에 달하는 여행 일정이 정말 부럽고, 행운이 따르길 바라며, 건강하게 지내고 등등...호의가 고마웠다.
다음 날은 일기 예보와 다르게 비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충 보아하니 이 동네에서는 요새 하나만 보면 되는 것 같으니...등산을 시작합시다! 하여 단단히 준비하고 나갔으나, 길만 길 뿐,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었다. 입구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는데, 다른 아시아인이 하나 보였다. 직감적으로 한국인이구나 싶었다. 예상대로였다. 요새를 돌다가 중간에 마주쳤다. 난 아주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하여 하이, 라고 하였으나, 즉시 아주 굉장히 무척 직관적인 질문이 돌아왔다. 한국인이세요? 네...왠지 그럴 거 같았아요.
리투아니아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어요. 리투아니아....가 어디 붙어있죠? 폴란드 위에요. 그 발트 3국 중 하나인데...아아 그래요. 아직 학기 중인데 주말을 맞아 여행을 왔다고 했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사람은 처음 봤다...생각해보니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에서 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비아, 소말리아, 아제르바이얀...아무대나 대봐라. 내가 보지 못한 게 이렇게나 많다. 어쨌거나 그녀는 구시가지 쪽 호스텔에서 머무르고 있단다. 하루 같이 다니기로 했다. 나로썬 여행 중에 만난 사람하고 같이 다닌 거 자체가 살면서 처음이었는데, 일단 이유의 팔할은 내가 진성 집돌이라서 그렇고, 나머지 이할은 붙임성이 없어서 그런 거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프라하가 최악이었어요. 딱히 도시 자체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도시에서 못 볼 꼴을 좀 당했다고 한다. 최고는 부다페스트였다고 한다. 워낙 좋아서 매일밤 위치를 바꿔가며 야경을 보러다녔다고. 여태 부다페스트 가본 사람들 중에 밤이 별로라고 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본 거 같긴 하다...어쨌거나 그녀는 학기가 끝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에 놀러갈 거란다. 스페인이 그 계절에도 좋대요. 내가 주워들은 대로 말했다.
점심에는 다시 불가리아 전통 음식을 먹었다. 사체...라는 이름인 거 같은데, 기본적으로 전통 그릇에 구워나오는 그릴 요리의 총칭으로 추정된다. 사체로 유명한 집이라고 불가리아 여행 블로거가 포스팅 했으나, 막상 가보니 사치 메뉴는 닭요리 두 개 빼고 다 없앴단다. 맛은 뭐...닭 구이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나쁘진 않았다. 머릿속에서 어제 웨이웨이가 말한 중식당이 스치는 건 어쩔 수가 없었지만. 위치라도 알아올 걸.
돌아가면 4학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걱정이 많겠네요. 걱정이 없을 리가 있나. 누가 여기서 자유로울까? 이 걱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부럽기보단 되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나는 돌아가면 3학년이라는 게 조금 위안이 됐다. 조금 더 남긴 했구나. 금방일 것이 뻔하지만. 생각해보면 시간이 2년 단위로 훅훅 흐르는 것 같다. 대학교 입학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어안이 벙벙했던 2년, 내가 버티는 게 아니라 시간이 홀로 흘렀던 울릉도에서의 2년, 그 이후 학교에 돌아가기 전까지의 2년....이것도 곧 끝날 것이고, 그러면 학교에서의 마지막 2년만 남으니. 뭘 어쩌나 어쩌겠나.
오후 5시쯤 헤어졌다. 서로 행운을 빌었다. 아파트 주방에서 홀로 마트에서 산 걸 먹었다. 스위트콘과 귤 대여섯 개. 스위트콘은 한국 것보다 덜 달았고, 귤은 귤피가 유독 두꺼웠으며 몇 개는 씨도 있었다. 여섯시 반에 버스를 타고 산기슭 기차역으로 올라갔다. 열차는 열 시 반이 온다니 네 시간을 버텨야 했다. 조그맣고 쉰내나는 대합실에는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맨 할머니와, 누더기를 기워입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머니는 자꾸 말을 걸었지만 불가리아어를 알아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손짓 발짓 덕에 몇 개는 알아들었다. 담배를 피고 싶으면 쓰레기통에 있는 걸 주워다 피면 돼. 홀로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종종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대화했다. 알아들을 순 없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설명하는 것 같았다.
열차는 연착 됐다. 밤은 어둡고 조용하고 차가웠다. 외롭고 짜증나고 모든 게 싫었다. 답답한 마음에 철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그러다 마주친 성깔있는 개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짖었다. 다른 개들도 따라 짖는건지 아니면 각자 표적이 있는 건지, 개짖는 소리가 온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다시 역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개는 좀처럼 짖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넌 누구냐. 여기서 뭐하냐. 이제 뭘 할 거냐.
201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