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신데렐라 성의 모델이자, 아마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명성에 비하면 그렇게 오래된 곳은 아니다. 1868년 착공하여 1892년 완공되었으니, 사실상 근대건축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성이 동화속 성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나, 한편으론 건축주의 의도가 완벽히 실현됐다고 볼 수도 있다.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는 순전히 중세의 기사도 정신, 게르만 신화 등을 위엄있게 표현하기 위하여 이 성을 지은 것이다. 때는 19세기, 성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 전에 실효성을 잃은 때이다. 순전히 중세시대를 좋아한 왕의 개인적 만족을 위해 지은 것이다. 결과물도 훌륭했다. 이 건물은 어떤 중세 건물보다 중세 건물처럼 보인다. 물론 관광객들이 봤을 때 말이다. 이제 성 하면 사람들은 노이슈반슈타인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절반은 월트 디즈니의 공이겠다만.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접근성이 그리 좋진 않았다. 성은 퓌센 지방에 있는데, 관광지 아니랄까봐 숙박이 비싸다. 그래서 뮌헨에 머무르면서 당일로 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굳이 뮌헨에 더 머무르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계속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다시 뮌헨으로 돌아오기는 마땅찮았다. 지도와 열차시간표를 펴놓고 이곳저곳 비교해본 결과 아우쿠스부르크가 제일 무난해보였다. 하지만 아우쿠스부르크에는 호스텔이 없었다. 결국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프리트베르크라는 촌동네에 방 하나를 구했다. 이번에도 에어비엔비였다.

오후 두 시쯤 도착하였다. 집주인은 훤칠하고 잘생긴 독일 청년이었다. 공공근로자인데, 지금은 주로 학교에서 정서문제 혹은 지적지체가 있는 학생 몇몇을 전담하여 보살핀다고 한다. 회사에 들어가기 싫었어요. 공장의 부품처럼 소모되기는 싫었거든요. 이 일은 반면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하지만 내라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물어봤다. 학교에 가는데 학생 한 멍만 맡는다고요? 그럴다고 한다. 교사 혼자서 한 반을 전담하는 것도 벅차고 부족할 수 있어서 몇몇 학생에게 도와줄 사람을 추가로 붙이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도입된 지 몇 년 안 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취미로는 음악을 한단다. 프로 수준까지 올라가진 못했지만, 세션 일은 자주 한다고 했다. 나도 음악 좋아한다니까 그러냐면서 자기가 만든 음악을 하나 들려주었다. 노이즈와 불협화음이이 심한 앰비언트 곡이었다. LSD를 했을 때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이죠. LSD 해봤어요? 내가 대답했다. 아뇨.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 곡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내가 아시아에서 왔다니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게 좀 짜증나긴 했다. 아니...많이 짜증났다. 국적확인 후 첫번째 질문이 이거였다. 아니메 좋아해요? 질문을 못 알아들어서 다시 반복해달라고 하였다.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 말이에요. 아니 뭐 별로 그냥저냥. 그는 아쉽다고 하였다. 애니메이션은 자신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단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그러려니... 그 다음에는 나한테 차를 마시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홍차는 없고 녹차만 있다고 하였다. 녹차도 있는 곳은 봤어도, 녹차만 있는 곳은 유럽에서 처음 봤다. 이때 참...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친구구나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는 건 더 기가 찼다. 손잡이가 달린 보통 머그컵인데도 마치 절에서 마시듯이 양손으로 공손히 붙들고 마셨다. 그가 말했다. 아시아로부터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대단하네요. 막상 아시아에서 언 나도 그냥 손잡이로 마시는데. 그가 답했다. 신체 자세는 정신에 많은 영향을 끼치죠. 그런데 종교 있어요? 내가 말했다. 없어요. 우리 엄마는 저를 엄마따라 불교신자라고 생각하기는 해요. 그가 말했다. 저는 불교신자에요. 불교에 대해 잘 아는지는 모르겠네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요.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에게 하듯 예배를 올리는 게 아니에요. 명상을 통해 눈으로 보는 세계 이상을 보는 것이 바로 불교이지요.

저도 어렸을 때, 특히 학교 다닐 때는 맨날 앉아서 딴 생각이나 하고 지냈어요. 10대 후반은 정말 방랑의 시기였죠. 그때 LSD를 정말 많이 했어요. LSD를 하면 좋아요. 사람들이 단순히 쾌락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과 달라요. LSD를 하는 진짜 목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 그 이상을 보여주거든요. 기본적으로는 명상하고 같죠. 차이점이 있다면 LSD는 수동적인 방식이고 명상이 좀 더 능동적인 방식이라는 거예요....와 같이 법정스님이 들으면 죽비로 정수리를 후려칠 소리를 수십분 했다.

주로 지 할말만 하는 인간이었는데, 나한테 물어본 건 딱 두 가지였다. 한국에서는 뭘 했어요? 스포츠 방송에 있었다고 하니 자기는 스포츠도 방송도 싫어한단다. 이야기 뚝. 그 다음에 물어본 건, 나이가 몇 살이에요? 스물 넷이라고 하니 그렇구나 한다. 끝까지 자기 나이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나보다 어린 걸로 추정된다. 빨래 좀 하겠다고 하니, 세탁기도 없고 세제도 없어서 손으로 물빨래 해야할 거란다. 상관없다고 하니까 등을 툭툭 치면서 Good boy라고 할 땐 이놈이 손님을 호구로 보나 싶어서 순간 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이라도 치우라고 할 걸 그랬다. 사실 다른 것보다도 방이 춥고 후진 게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이틀 연속 자기 방에 친구들을 데려온 것도 싫었고.

어쨌든 다음날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퓌센으로 가는 첫 차를 탔다. 새벽 다섯 시 반에 나가서 퓌센에 도착한 게 9시. 퓌센에서 호엔방가우 마을에 가는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막상 마을에 도착한 것은 열 시가 다 되어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줄을 섰는데, 그래도 이십여분은 기다려야 했다. 하니만 나는 그나마 운이 줗은 편이었다. 한 5분 서있으니 티켓 오피스 밖까지 사람들이 늘어섰다.

내 바로 앞에는 한국인 남자 둘이 서있었다. 군대 동기인데 보름째 여행중이라고 하였다. 같이 다니자고 하니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셋 다 박물관과 호엔방가우 성은 지나치고, 노이슈반슈타인만 보고 가기로 하였다. 표를 사고도 노이슈반규타인 까지는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유럽 관광지 아니랄까봐 마차가 운행하고 있었다. 다른 교통수단은 전혀 없었다. 두 친구 중 한 명이 마차를 타보고 싶어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걸어갔다. 30분 내내 오르막이었다. 말똥이 도처에 널려있어서 피하는 게 성가셨다. 마침내 성이 빼꼼 얼굴을 내보였다. 그렇게 맞딱트린 슈반스타인 성의 첫인상은...

6년 전 일본 여행 때, 오사카의 유명한 성인 천수각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와 사진하고 똑같네...였다면, 노이슈반슈타인은 사진보다도 못했다. 날씨 탓은 아니었다. 요 며칠 간 내린 눈 때문에 온데가 다 눈밭이었지만 햇빛은 쨍쨍했다. 그 햇빛이 눈에 반사되는 바람에 어디서 사진을 찍으려 해도 카메라가 역광으로 인식하는 게 유일한 문제였다.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려서 그럴까. 아니면 기대치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기대치야 거의 겨울왕국이었으니. 비싼 표를 사고 들어간 실내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하긴 했다. 하지만 가이드 투어만이 가능한 곳이라서 찬찬히 감상할 수도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곳은 출구 근처의 기념품 매장밖이 없었다. 사람들이 롤러코스터에 타듯이 떼로 들어가서 떼로 나오기를 반복했다.

궁금한 게 딱 하나 있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의 전경 사진을 찍은 위치를 알고 싶었으나...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반대편 산에 올라가서 찍은 건지, 나 같은 관광객들에게 접근이 허가된 곳에선 어떻게 해봐도 전경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멀쩡한 사진하나 건지지 못했다. 내가 일행에게 말했다. 제가 평소에는 오늘처럼 성 하나 보겠다고 기차타고 오는 일이 절대 없거든요. 괜히 이거 보겠다고 나대다가 숙소도 이상한 데 걸리고 ...성도 영 실망스럽네요.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해요.

퓌센 역으로 돌아오니 1시 반이었다. 뉘른베르크 행 기차는 세 시에 있었다. 동행 둘은 2시에 뮌헨으로 간다고 한다. 나도 같은 기차를 타고 중간에 갈아타기로 하였다. 굳이 이 곳에서 한 시간이나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곧 열차가 왔다. 살면서 처음 타보는 2층 기차였다. 열차를 타고 가다보니 어디서 우리 말고 한국어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별 신경 안 썼는데, 그쪽에서 나를 불렀다. 알고보니 뮌헨에서 새해를 같이 맞았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말했다. 독일도 좁네요. 무슨 기차 같은 칸에... 둘 중 한 명은 네 달의 여행을 마치고 곧 출국한다고 하였으니 아마 지금쯤엔 한국에 돌아갔을 것이고, 나머지 한 명도 교환학생 마치는 김에 여행을 온 것이라고 하였다. 역시 이달 안으로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였다. 다들 귀국하기 싫다는 마음만은 같았다.

아우쿠스부르크 역에 도착해서는 맥도날드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굳이 후진 숙소에 애써 일찍 기어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했다. 아우쿠스부르크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있던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갔다. 요즘은 분데스리가 휴식기라서 경기도 없는데 말이다. 나 같은 여행객들도 많았다. 어머니와 어린 아들만 온 경우도 많았는데, 대개 아들 혼자 먹고 어머니는 지켜보면서 말을 한다. 그러면 아들이 건성건성 대답을 한다.

막상 숙소에 들어가니 집주인은 없었다. 주방을 보고 기가 찼다. 아마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 준비하는 것 같은데. 무려 쌀밥과 두부였다. 쌀이 자포니카가 아닌게 옥의 티였지만, 대단한 놈이긴 했다. 감탄하고 누워있는데 곧 집주인이 돌아왔다. 친구를 데리고 왔다. 같이 명상하는 친구란다. 몇 마디 나누다가 둘은 명상을 한다고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괴상한 명상 음악을 자장가로 삼아 잠들었다. 다음 날도 일찍 일어났다. 집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2014/1/9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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