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미술관이 다녀온 날 저녁에 잔세 스칸스라는 풍차마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기차 타고 10분이면 간단다. 예쁜 마을은 지겹도록 가봤지만 풍차가 있는 예쁜 마을은 아직 가보지 못했으니 여기나 가자고 결정했다.

다음날 열 시 쯤 기차역에 도착했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거셌지만 빗방울도 간간히 떨어졌다. 역에서 내려 걸어서 십 분 정도면 잔세 스칸스 마을로 넘어가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만 건너면 동화 속 내덜란드다. 해안선을 따라 줄 서 있는 풍차가 멀리서도 잘보였다. 거센 바람 덕에 날개는 쉴새없이 돌아갔다. 풍차 주변은 온통 겨울 같은 쓸쓸한 갈대밭이었다. 드문드문 인가가 있었다. 헛간이나 작은 창고에도 기와를 올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을에는 실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큰 걸음 한 번이면 건널만한 폭이 좁은데도 예쁜 아치형 다리를 설치하였다. 다리를 건너면 아담한 프랑스식 정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마을 전체에서 초콜렛 향이 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농촌 마을이라서 누린내나 소똥 냄새 같은 정겨운 냄새가 날 줄 알았는다. 잔세 스칸스는 초콜렛과 치즈로도 유명하다는데, 정말 초콜렛은 어지간히 많이 만드나보다. 잔세 스칸스 내에도 초콜렛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 있는데, 내가 가던 날에는 문을 닫았다. 치즈 공장도 있었는데, 이건 마을하고 약간 거리가 있어서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갈대밭을 따라 걸었다. 궂은 날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꽤 있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보았다. 종종 마을 주민들이 러닝을 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갈대밭을 따라 핫초콜렛 파는 집도 몇 군데 있었지만 들어가보진 않았다. 특산품 노점이 꽉꽉 늘어선 드른관광지와는 다르게 사람 사는 곳 같아 보였다. 갈대밭 반대편에는 거대한 농경지였다. 추수는 한참 전에 다 끝난 듯,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땅을 묵혀두는 것 같았다. 왜가리 한 마리가 내가 사진찍으러 다가가자 날개를 퍼득이며 도망쳤다.

우박이 내리기 전까진 모든 게 괜찮았다. 처음에는 빗방울이 굵어지는 줄 알았는데, 빗방울 좀 맞는다고 손등이 따가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장갑을 끼고 후드를 푹 눌러써도 얼굴에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박이 눈처럼 바닥에 쌓였다. 단체 관광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깔깔 웃으면서 처마 밑으로 숨었으나, 러닝을 하던 주민은 별일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나도 하릴없이 아무 건물이나 들어갔는데 마침 기념품 가게였다. 가게 주인 할머니가 인자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특이하게도 거대한 미피 인형이 진열대에 올라가 있었다. 뭔 이런 시골 마을 가게에 일본 캐릭터 인형이 있나 싶었다. 뭐 어차피 공장에서 찍어내는 거니 별 일 아니긴 하다만...

이렇게 생각했는데, 완전 잘못된 생각이었다. 다음 도시에서 알게 되었다. 위트레흐르트라는 오래된 도시였다. 하루만 머무르고 떠날 생각이였다. 호스텔 리셉셔니스트에게 조언을 구했다. 뭘 하면 좋을까요? 그녀가 지도를 꺼내더니 코스를 그려주었다. 일단 운하를 쭉 따라가세요. 그러면 여기 끝부분에 중앙박물관이 있어요. 그리고 반대편에 미피 박물관이 있...미피 박물관이라고요? 내가 말을 끊었다. 토끼 미피? 맞아요. 미피 캐릭터를 만든 사람이 여기 위트레흐트에 살거든요. 중앙박물관 입장권을 끊으면 미피 박물관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애초에 일본 캐릭터도 아니었던 셈이다. 네덜란드의 자랑이었다.

어쨌든 다시 잔세 스칸스로. 우박 때문에 관광을 포기하고 역으로 가는 길에 초콜렛 가게가 있길래 종류별로 잔뜩 사서 맛을 봤으나 기대에는 못 미쳤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겠다....생각했는데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잘은 기억 안 나는데 가격 차이가 좀 심한 거 같다. 물론 네덜란드가 훨씬 싸다. 어쨌든 미련 없이 암스테르담으로 복귀!

돌아오니 날씨가 완전히 갰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나가기도 귀찮고 다음날 일정도 짜놓지 않은 지라, 그냥 호스텔 바에 죽치고 앉아 다음 도시 숙박을 알아봤다. 그때 뒤에서 한국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국인 남자 셋이었다. 내 맥주잔을 덜컥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좀 껴도 되냐고 뻔뻔하게 물어보면 일단 거절은 안 당한다 ㅋㅋㅋㅋ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오늘이 여행 첫째날이라고 하였다. 입국한 지 몇 시간도 채 안 됐고, 당장 내일 밤에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야간열차를 타는 지라 빡세게 다녀야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내게 물어봤다. 혼자 다니면 안 심심해? 내가 말했다. 뭐 중간중간 일행이 있을 때도 있고...근데 이젠 혼자가 더 편해. 같이 다니라고 하면 못 다닐 거 같아. 그냥 말도 하기 귀찮을 때도 있고. 난 오히려 서넛 같이 다니는 거 보면 더 신기하다니까. 그러자 그들이 같이 다니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셋 다 동네친구인데, 원래는 그 중 둘이 같이 다니고 한 명이 따로 다닐 예정이었단다. 둘은 보름 정도, 하나는 한 달 정도 계획을 잡았다고 했다. 하나가 말했다. 그런데 얘들이 영어를 못 하니까, 두지를 못 하겠더라고. 난 조금 되거든. 그래서 내가 같이 다니기로 했지. 얘들 먼저 돌아가면 그때부터 자유롭게 여행하려고. 외국인들하고도 어울려보고. 참 쓸데 없는 걱정 한다...고 생각만 하고 말로는 안한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잘했어 민기야.

그리고 다음날 위트레흐트로 떠난 것이다. 여기도 예쁜 중세 마을인데(아 지겹다)...중세도 많이 봤고 운하고 암스테르담에서 많이 본지라 신선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박물관은 재밌었다. 지금까지 가본 지역박물관 중 가장 봐줄만 했다. 가장 지역박물관 답기도 했고. 그 안에서도 1층의 미술관이 제일 좋았다. 위트레흐트를 거점으로 활동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중세시대부터 현대까지 모아놓았다. 오디오 가이드도 충실했고, 바닥에는 딕 브루너라는 화가의 일러스트로 시대상황을 설명해놨다. 기억에 남는 그림이 몇 점 있었다. 먼저 위트레흐트의 카라바조 추종자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카라바조의 그림들처럼 음영대비가 두드러졌는데, 그림의 내용은 성경 혹은 신화를 즐겨 차용했던 카라바조와 차이가 있었다. 술집의 풍경이나 중매를 서는 여인 같이 세속적인 소재를 사용하였다. 음영대비를 강조하는 화풍 덕에 촛불로 불을 밝힌 실내 풍경을 그린 그림들은 정말 근사하다.

나머지 하나는 현대 미술 전시관에 있던 것이었다. 작품의 이름은 <탱크 맨>, 언뜻 만화 캐릭터 같은 이름이지만...사실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베이징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탱크 앞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진로를 막은 정체불명의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진기자 제프 와이드너가 뒷모습만 살짝 포착한 이 남자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누군지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다만. 위트레흐트의 <탱크 맨>이 바로 그 사진...은 아니고, 사진 속 남자를 등신대 밀랍인형으로 재현한 것이다. 뒷모습만 사진으로 남아있으니 당연히 앞모습은 상상이다.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쳐든 것도 작가의 상상. 작가가 왜 눈을 감겼는지 궁금했다. 나는 눈을 뜨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덜덜 떨리는 턱을 치켜들고 눈을 부릅뜨며 무언으로 말했을 것만 같은데. 똑똑히 보라.

박물관을 나왔다. 분명 바로 앞에 미피 박물관이 있다고 했는데 보이지를 않았다. 무슨 건물이 있는데 미피 박물관은 아니었다. 두리번 거리다가 설마 해서 그 건물을 다시 보니 딕 브루너 박물관이란다. 그렇다. 아까 중앙박물관 바닥에 그려진 일러스트를 그린 이였다. 그가 바로 미피의 창조주였던 것이다.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미피와 듣보잡들이 보였다. 다 딕 브루너가 만든 캐릭터였다. 내가 볼만한 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미피의 제작과정 정도. 오돌토돌한 외곽선을 만들기 위해 매우 신경쓰고...색상은 4개가 안 넘어가도록 하고...초기부터 지금까지 같은 작업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이것저것 기타등등. 오히려 박물관에 놀러온 애들을 관찰하는 게 더 재밌었다. 애들이 미피를 아직도 좋아한다는 게 신기했다. 시대를 초월하는 게 있긴 한가보다.

호스텔에 돌아와서는 할 게 없어서 심심하던 차에, 마침 바에서 기타를 발견했다. 다행히 사람도 몇 없었다. 한산한 바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기타줄을 살살 퉁겼다. 오랜만이라 손이 너무 아팠다.


2015/1/19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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