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3년 전이었다. 나는 공군 병장이었고, 리모콘을 잡고 휘두를 수 있는 소소한 권력이 있었으며, 맨날 <걸어서 세계속으로>만 보는 꼽창이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정녕 수신료의 가치를 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EBS나 다른 케이블에도 여러 여행프로가 있었지만 그중 걸어서 세계속으로보다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땐 이미 유럽여행을 한 번 가자고 확고하게 마음을 굳힌 터라, 유럽의 도시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도시에 흥미가 더 가기 마련이다. 물론 이름을 아는 도시라고 딱히 아는 건 없었지만. 에스토니아의 탈린, 불가리아의 소피아, 라트비아의 리가 등등...그 중에서도 비주얼부터 발군이었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가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요새...새빨간 지붕들...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여행을 가면 저런 데는 한 번 가봐야지. 그때만 해도 크로아티아 관광이 요즘처럼 뜨진 않았으니 희소성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뭐 사실 꼭 가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만....

그리고 한 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가, 여행 준비를 하면서 크로아티아 자료를 뒤지다가 다시 생각이 났다. 그런데 막상 처음 계획 짤 때는 뺐다! 대충 알아보니 접근성이 영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기차가 안 갔고, 보스니아 영토를 통과해야 하고, 버스 타고 한참 가야 하는데 버스 타기는 영 싫고...뭐 안 가지. 그거 안 본다고 내 삶에 별 일이 있겠나. 그 사이에 한국에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도 한 몫 했다. 애초에 가고 싶던 이유가 별로 안 유명해서이니. 하지만 이후 크로아티아에 간다는 내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두브로브니크는 가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고, 내 귀는 팔랑귀이기 때문이 다시 솔깃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말 결정을 내린 건 헝가리에서였다. 비행기가 왕복 15만원이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가격인성 싶어서 표를 끊었다.

막상 가보니 실체는 기대보다 못했다. 일단 날씨 탓이 컸다. 첫날부터 비가 내렸다. 그럼 그렇지, 내가 비를 피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원래 숙소는 에어비엔비로 구한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내가 도착한 직후에 이 사람이 예약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이때가 오후 세 시 반. 그냥 저녁에 아무 호스텔이나 들어가고 지금은 놀지, 편하게 생각했으나 두브로브니크는 다섯시면 해가 완전히 지고, 가장 유명한 성벽투어도 오후 세 시에 문을 닫아버리니 시간을 떼울 방법도 없었다. 그제서야 허겁지겁 와이파이를 찾아 숙소를 뒤지고 일정을 점검해봤다. 그리고 두브로브니크의 물가가 만만찮다는 걸 그제서야 발견했다.

모든 게 비쌌다. 밥을 먹으려 해도 비쌌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비쌌다. 남이섬이나 울릉도 같은 데를 떠올리게 하는 물가였다. 먹물로 만든 파스타나 리조또. 요리가 유명하다 하여 먹었는데 차라리 서울에서 더 싸게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성벽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구시가지는 너무나도 작아보였고,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숙소를 옮긴 다음 날도 그리 좋은 날은 아니었다. 그나마 첫날은 비만 내렸지만, 둘째날은 강풍까지 부는 것이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계단을 손으로 짚어가며 겨우 올라갔다. 아마 멀리서 봤으면 기어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의 탑에서 바라본 풍경이 절경이긴 했지만, 강풍에 부러질 듯 부나끼는 깃대를 보니 역시 이 계절에 배낭여행자가 올 만한 동네는 아니었다.

저녁에 온 재용이 형 일행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이게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생각하면서 젖은 몸뚱아리를 끌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호스트인 안톤이 아직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 한 잔 하지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안톤이 나를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는 그의 아들 안토니오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안톤이 와인과 치즈를 준비하는 사이 대화를 나눴다. 나이는 열일곱살이란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고, 당장 내일도 다른 동네 클럽이랑 시합이 있다고 했다. 아직 대학에 갈 지는 모르겠고, 만약 간다면 자그레브로 가야한다는 것 같은데 썩 탐탁찮은 눈치다.

안톤이 돌아왔다. 대화를 하다보니 간단한 이력이 나왔다. 거의 평생을 여기서 지낸 토박이고,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군대에서 1년 의무복무를 했다. 아내와는 사별했고 홀로 힘으로 남매를 키웠다. 딸은 몇 년 전에 결혼해서 집을 나갔으나 여전히 근처에 살고 있고, 그 이후로는 아들과 쭉 지냈다는 것이다. 안톤 부자는 매우 친해 보였다. 주로 안토니오가 안톤이리 이거 보라고, 저거 보라고, 그거 아냐고 물어보면 안톤이 대꾸를 하는 식이었다. 내가 안 그러는 편이라서 그런지 낯설었다.

크로아티아와 두브로브니크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지니 안톤 부자가 같이 낄낄댔다. 그런 질문은 왜 해요? 답이 뻔하잖아요. 당연히 좋죠. 오히려 내가 놀랐다. 당연히 좋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다. 예를 들어 나한테 경기도 수원시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한국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대답하겠지만 좋아한다고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내겐 그냥 익숙한 곳이다. 익숙하긴 하나 다음에 뭘 해야할지 한 치도 모르겠는 곳이다. 여행을 다니는 매일매일 같은 질문을 한다. 돌아가면 뭐가 있지? 이건 한동안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고...따로 궁금한 게 생겼다. 왜 자기가 사는 곳을 당연히 좋다고 할까? 어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까...고민해볼 문제다.

안톤은 요 몇 년간 근처 호스텔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본인의 집에 따로 숙박을 마련하여 용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정말 많은 여행자를 만나봤고, 당장 올 한해 한국에서 온 사람만 따져도 족히 다섯은 이 집에 머무른 것 같았다. 여행자들 만나는 게 재밌단다. 거실 벽에는 두브로브니크 전경이 그려져있는데, 그것도 여행자가 그려준 것이라고 했다. 내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여행은 많이 가보셨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여행 잘 안 가요. 경제사정이 안 좋아요. 다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걸요. 그래도 미래엔 나아질 거예요...내가 말했다. 긍정적이시네요. 안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새벽 안톤이 끓여준 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길에 나섰다. 3일 만에 처음으로 날씨가 멀쩡했다. 그래봤자다. 나는 당장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까지 가야 했다. 공항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류블랴나도 축축하단다.


2014/12/08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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