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세탁을 맡기고, 이것저것 신변정리를 하다 보니 벌써 세 시 반이었다. 공업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유명한 건 BMW와 벤츠 박물관인데, 지금 가자니 너무 늦었고, 다음날 가자니 월요일이라서 열지를 않는다. 뮌헨의 호스트였던 존이 가보라고 했던 공장투어는 연초라 쉰다. 2박이나 머무르기로 한 게 벌써부터 후회됐다. 점심은 중국집에서 먹었다. 여행 오기 직전에 들은 조언이 생각났다. 한국 음식이 그리우먄 증국집에 가라고. 그나마 익슥한 맛이니까. 그래서 불가리아부터 가끔 중국집에 들렸는데, 이번 중국집은 생각지도 못한 식으로 익숙했다. 정통중화요리를 표방하면서 우동 같은 잡다한 요리를 파는 것도 그러하지만...무엇보다 사이드 디쉬에 김치를 파는 것이 가장 이채로웠다. 3유로 50센트. 비싼 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주문하였다. 중국계 웨이트리스가 물어봤다. 야채요리인데 괜찮으신가요? 내가 한국인으로 보이지는 않나보다. 결과적으로 양도 많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유럽도시의 기본, 광장-대로-교회-탑-동상-성을 대충 둘러보니 하늘에 노을이 꼈다.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아이패드를 만지작 거리며 멍하니 누워있는데, 곧 있다가 사람이 하나 들어왔다. 모로코 출신의 이스마일이었다. 독일 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소도시 자브뤼켄에서 공학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방학을 맞아 짧게 독일여행 중인데 내일이면 돌아가야 한단다. 얘기를 들어보니 세계 각지를 돌면서 공부와 인턴을 했다. 학사는 프랑스, 석사 시작은 브라질, 이어서 독일. 내가 물어봤다. 박사도 할 거예요? 좋은 질문이에요...안 할 거예요. 일반적으로 이쪽 전공자들이 박사를 하긴 하지만, 전 이제 24살이거든요. 더 이상 공부하면서 20대를 보내고 싶진 않아요. 이제 돈을 벌고 삶을 즐길 때가 왔죠. 들으면서 부러웠다. 나도 만으로 24살인데 학사 졸업도 한참 남은 암담한 미래가 기다린다곤 말 못했다. 돈을 번다는 것과 삶을 즐긴다는 것이 내 생애에서 양립이 가능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둘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될 지도 모르겠다. 속에서 욱했다. 한국에 대한 짜증이 치솟았다. 군대를 안 갔으면 나이라도 어렸지. 문득 2년 전 대학에 복학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이유도 다시 한 번 상기됐다. 당시 나는 칼졸업 안 하냐고 묻는 모든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 대학이 별로 제게 주는 것도 없는 거 같아서요.

어디서 직장을 구할 것인가요? 독일? 그가 고개를 저었다. 독일도 좋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독일인처럼 일하기 위해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다. 학부를 보냈던 프랑스에서 취직을 하고 싶단다. 독일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고, 프랑스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죠. 프랑스인들 태도가 저하고도 더 잘 맞고, 또 모로코와 프랑스는 같은 지중해 국가잖아요. 지중해 국가를 관통하는 정서 같은 게 있어요. 다만 걱정되는 건 요즘 프랑스가 경제사정이 영 좋지 않아서 일자리가 많이 없어요. 반대로 독일은 괜찮은 편이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중해에 발가락 몇 개 담근 프랑스를 지중해 국가로 분류하는 건 이스마일의 독단인지, 아니면 유럽의 상식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내가 쓰게 말했다. 독일인들보고 일하기 위해 산다고 말하면...한국 한 번 와보셔야겠네요. 우린 죽기 위해 일해요.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사람이 하나 더 들어왔다. 아시아 인 청년이었는데 참 국적 헷갈리게 생겼다. 보통은 한 번 보면 한중일 기가 막히게 알아맞히는데 이 친구는 내 예상을 빗나같다. 싱가폴 같은 곳을 생각했는데 홍콩 출신이었다. 대충 중국계라는 것은 맞춘 셈이긴 하나...어쨌거나 이름은 클레이튼 램, 나이는 스물 둘, 현재는 스웨덴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고 역시 방학을 맞아 독일여행을 왔다고 하였다. 홍콩 출신이라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밥 먹고 오는 길에 넌지시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강력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는 반공소년 이승복처럼 단호한 어조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 공산당은 뭐든지 통제하려고 하는 집단인데 지금은 중국 본토에 이어서 홍콩마저 똑같이 만들려고 시도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중국대륙에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또 다른 룸메이트였던 멕시코 출신의 후안호세가 눈치 없게 거기서 거기 아니냐 하니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나보고 홍콩사람과 중국사람의 차이점 좀 저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란다. 내가 그걸 왜 해주나...싶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내가 지금까지 본 대로 말해주었다. 홍콩 사람들이 옷을 더 잘 입어요. 재밌는 건 그가 깨알같이 덧붙인 주석이었다. 어떻게 보면 홍콩 사람이 중국인보다 중국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단다. 중국 내의 한족은 이민족과 많이 섞였으니 그 전에 피난 온 홍콩 사람을이야말로 순수한족혈통에 가깝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가 이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아니면 재미삼아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클레이튼은 금방 벤츠 박물관에 들렸다 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서로 그간의 여행썰을 풀다가 재밌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뮌헨이나 프라하에서 봤던 백조와 오리가 원래 스웨덴에 산단다. 겨울에만 추위를 피해 남하하는 철새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뮌헨의 님펜부르크 성에서 봤던 호수를 수놓은 백조떼는 오직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인 셈인데...막상 지금 스웨덴이 뮌헨과 비교해서 그렇게 춥지는 않다고 클레이튼이 말했다. 내가 물었다. 그럼 대체 왜 이동하는 건데요? 이스마일이 대신 답했다. 여행 다니다보죠. 우리가 각종 호스텔 리뷰 남기듯이 얘들도 연못마다 리뷰도 하고...

셋이서 밥을 먹기로 결의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한 명이 방에 더 들어왔다. 멕시코 출신의 후안호세였다. 스페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여행을 왔는데, 그도 어제부터 이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다. 막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인데, 우리가 나간다고 하니 따라나가겠단다. 심지어 음식점도 추천해줬다. 본인의 슈투트가르트 출신 독일 친구가 추천해준 맛집이라고 하였다. 나는 거기서 토속음식이라는 마울타셰(Maultasche)를 먹었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밀가루 반죽에 고기와 야채를 쥐똥만큼 넣어 찐 음식이었는데 밍밍했다. 서비스도 그리 좋진 않았다. 웨이터의 짜증 섞인 태도에 클레이튼과 이스마일이 불만을 표했다. 나는 팁을 주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대로 들어가서 자기는 아쉬워서 호스텔 바로 갔다. 거기엔 브라질인 네 명과, 각각 남아공과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프리카인 둘이 있었다. 이렇게 독일 수투트가르트 호스텔 1층에 인간 10명이 모였으나, 아메리카인 5명, 아프리카인 3명, 아시아인 2명에 정작 유럽인이라곤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있는 호스텔 리셉셔니스트밖에 없었다. 문득 코트부스에서 만난 시우마와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중 남아공 출신 그렉은 2월부터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한다고 하였다. 대전으로 간단다. 어떤 동네인지 잘 모르겠고, 안전한지도 모르겠단다. 내가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해주니 안심하였다. 물론 난 대전에 가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들은 정작 북한에 대한 걸 열심히 물어봤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킹슬리가 물었다. 북한도 뭔가 팔아먹고 살 거 아니요? 대체 외국에다가 뭘 파나요? 물어봤자 내가 알리가 있나. 위키피디아를 참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안타깝게도 호스텔 인터넷이 먹통이어서 알아볼 방도가 없었다. 사실 이들만 북한 관련 질문을 하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 많이들 물어봤다. 저런 사실확인 질문은 답하는 게 어렵지 않다. 이거다, 저거다, 모른다 정도면 끝이니. 정말 어려운 건 국민감정에 관한 것이다. 얼마나 싫어하냐, 혹은 왜 싫어하냐와 같은 질문이 제일 어렵다. 물론 대충 북한 지도층이 싫은 거다, 평소엔 싫어도 일본하고 축구하면 서로 응원한다, 이런 식으로 대충 떼우고 넘어가면 되고 사실 이들도 복잡한 고찰을 거쳐 나오는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저리 대답하면 내 기분이 찜찜하다. 뭐 이 날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클레이튼이 다 해결해주었다. 홍콩 사람들도 중국 싫어하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북한 더 싫어하겠죠.

브라질 사람들이 먼저 방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엔 킹슬리가 자러 갔다. 그렉이 카드나 치자면서 각자 할 수 있는 게임이 뭐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난 블랙잭밖에 모르고, 클레이튼은 포커, 이스마일은 이름을 모르는 무언가, 그렉도 포커와 다른 무언가였는데...이렇게 흐지부지 되나 싶었는데 정말 그렉은 무언가 하고 놀고 싶었는지 우노를 하자고 하였다. 내가 모른다고 하였으나 쉽게 가르쳐줄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수학여행 때마다 열심히 하던 원카드와 비슷하였다. 일단 '우노'가 스페인어로 숫자 1을 의미한다. 짜잘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한 장이 남았을 때 '원 카드'가 아니라, 당연하게도 '우노!'라고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한 와이파이를 부여잡고 여자친구와 심각하게 채팅을 하던 후안호세를 제외하고, 우리 넷은 한참을 카드를 치고 있었는게...갑자기 리셉셔니스트가 켜둔 스포츠 채널에서 포르노가 나오기 시작했다. 채널을 돌린 것도 아니고, 스크린 좌상단에 스포츠채널 워터마크가 선명히 박혀있었다. 다들 숨막히게 웃었다. 이스마일이 역시 독일이라며 박수를 쳤다. 리셉셔니스트가 민망했는지 괜한 해명을 하면서 티비를 껐다. 원래는 새벽 서너시는 되어야 이러는데 오늘은 왜 이리 일찍 트는지 모르겠네요. 그렉이 농담으로 내게 물었다. 방송일 했다면서요. 한국 스포츠 방송도 저렇게 훌륭해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갈길이 머네요. 오직 후안호세만이 뚫어져라 핸드폰 액정을 쳐다볼 뿐이었다.

마지막 몇 판은 마침내 여자친구와의 문제를 해결한 후안호세와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새벽 두 시가 되어서 방에 올라갔다. 다들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면서, 나보고 언제 일어날 거냐고 물어보았다. 난 내일도 슈트트가르트에 있기 때문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고 하였다. 아마도 열 시 쯤....그러자 이스마일은 자기들은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잠을 설칠 거라며 낄낄댔다. 다들 우노, 를 외치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9시 반,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2015/1/10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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