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독일문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다. 발표를 하면 가산점을 주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법대 선배가 만든 조에 어영부영 끼어서 환경을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제목이 아직도 선명하다.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PPT도 내가 만들고 발표도 내가 했던 걸로 기억한다 ㅋㅋㅋ 점수도 잘 받았다. 아마 우리조가 제일 잘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내 학점은 B+였을까...발표에서는 독일의 전반적인 환경정책, 독일 최대의 환경단체인 BUND, 환경정당인 녹색당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체르노빌 사태 이후 반핵 분위기와 그 이후 환경도시로 탈바꿈한 프라이부르크, 그 안에서도 대표적인 환경 지역인 '보봉 지구'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입대 직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접한 후 어렴풋 생각이 났다. 또 잊고 살다가 독일 여행 중에 누군가한테 듣고 기억이 났다. 괜히 반가워서 만하임으로 가려고 했던 원래 계획을 틀어 프라이부르크로 갔다.

프라이부르크는 녹지 비율도 높고, 분리수거도 철저하고, 자전거 이용률이 높아 대기오염도 심하지 않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진정한 환경도시로 만든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에너지 자립이다. 애초에 80년대 원전건설 반대 운동 후에 환경운동이 시작된 곳이니. 프라이부르크의 여러가지 대체에너지를 이용한다. 특히 보봉 지구는 거의 모든 건물에 태양열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일반 주택뿐만이 아니라 상가 건물도 마찬가지다. 몇몇 건물은 에너지 사용량보다 생산량이 더 높다. 보봉지구의 상징 같은 건물인 헬리오트롭은 아예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따라 돌면서 전력을 생산한다. 그런데 수많은 방법 중 왜 하필 에너지 자립일까?

에너지 보존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기에는 환경은 너무 방대한 주제이자 거대한 존재다. 이용할 수는 있으나 재생하거나 복제하긴 어렵다. 잘 알지는 못하나 몇 개만 나열해보자면...일단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수자원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상의 많은 이들이 아직도 깨끗한 물이 부족하여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또한 전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하는 기후변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한국의 여름과 겨울을 더 끔찍하게 바꾸는 것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지도를 바꿔놓기도 하니. 그외에도 이런저런 화젯거리도 많다. 어디서 스치듯이 들은 것만 해도 토양오염, 해양오염(프라이부르크는 관련 없겠다만), 생물다양성, 녹지확보, 쓰레기문제...적고보니 모르는 주제 까부는 것도 같고, 저렇게 쪼개는지 확신도 안 서서 여기까지 하련다.

게다가 이러한 목표들이 언제나 상호보완적인 것도 아니다. 때론 상충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 생태계에 전혀 손을 대지 않으면 코끼리떼가 산림훼손을 하고, 그러자니 코끼리떼를 사냥하거나 제어하자니 그것도 생태계 파괴다. 신에너지, 재생에너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농작물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바이오에너지 같은 경우 도리어 산림을 훼손하고 토지를 오염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풍력발전소 같은 경우 종종 산림을 훼손한다는 문제가 있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하게 환경마을로 기획됐을 보봉지구도 예외는 아니다. 보봉지구에는 풍력발전소가 있는데, 바람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 근처에 박쥐 서식지가 있는데, 풍차를 빨리 돌리면 지나가던 박쥐들이 치여 죽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보봉지구 주민들끼리 치열한 갑론을박을 벌였다는데, 일단 박쥐를 보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나보다.

물론 이런 문제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처럼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이론은 아니다. 동시에 여러가지를 진행하다가 상충하는 게 있으면 예의 박쥐 건처럼 토론과 합의를 거치면 된다. 심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궁금한 건 왜 하필 에너지 자립이 저 중 모든 것을 제치고 핵심과제냐는 것이다. 일단 에너지 자립이 환경보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에너지를 자립한다면 물론 에너지 공급자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환경파괴의 나라 미국도 에너지 자립이 목표다. 중동의 큰손들로부터 휘둘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2020년까지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다고........엑손모빌 최고경영자가 말했다. 그는 미국 내 천연가스와 유전의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고, 특히 원유 생산량은 사우디 아라비아를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셰일가스의 개발을 통한 추가 에너지 생산도 기대할만 하단다. 이처럼 국가차원에서 본다면 화석연료를 대량 생산하는 것도 에너지 자립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선 언급 안 됐지만 원자력 발전소 설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화석연료 사용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니, 프라이부르크에서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다.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는 왜 안 되는 것일까? 단순히 녹지, 상수원, 대기의 보호가 목적이라면 원자력으로도 괜찮지 않나? 프라이부르크의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는 80년대에 산성비로 크게 훼손된 적이 있어서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프라이부르크가 환경노선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인데, 산성비의 가장 큰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인데, 원전은 그런 문제가 없다. 원자력만큼 간단하게 대기보호와 에너지자립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사실 프라이부르크의 에너지 자립 프로젝트가 환경보다는 반핵과 같은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프라이부르크와 독일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긴 하다. 독일은 원전에 의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체르노빌 사고 때 낙진이 독일까지 날라왔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만 놓고 보자면, 반핵이야말로 프라이부르크의 정신이다. 80년대에 원전을 지으려고 한 적이 있다. 이때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무산되었다. 독일의 에너지 회사들이 국가 소유가 아니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부패와 안전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셀라필드에서 발생한 첫번째 원전 사고 이후로 60년만에 INES 7급을 받은 초대형 사건이 두 건(체르노빌, 후쿠시마)이나 있었고 짜잘한 사고는 몇 년에 한 번은 반드시 발생하니 걱정할만 하다. 설령 원자력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여도,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로서는 아주 깊숙히 묻는 것이 최선이고, 제거할 방법은 딱히 없는 걸로 안다. 오죽하면 우주로 쏘아버리자고 하지 않겠는가. 핵폐기물은 토양을 오염시킬 수도 있어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그 보다 더 안 좋은 건 테러리스트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먼 시간이 지난 후 각종 이유로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전쟁이 핵폐기물 매립지 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미래세대가 모르고 건드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딴 얘기인데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가 여기에 대해 재미있는 해법을 내놓은 적이 있다. 위험한 폐기물 위에 점점 덜 위험한 폐기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리자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세대가 땅을 파다가 점점 위험해지는 폐기물을 보고 눈치챌 것이라고. 듣고나서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그리고 학문이 다양해야 하는 이유구나...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는 공학의 영역이지만, 이 대답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기호학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라 생각한다. 물론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그게 어려운 이유가 있다며 반박을 할 수도 있겠지만...뭐 그러라고 인간이 협동하는 거 아닌가. 딴 얘기 끝...

즉 환경보호와 직접 연관이 있기보다는 안전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환경정책 공부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기후변화 억제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단다. 애초에 예측불가능한 위협을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를 막는 것인데, 그 자리에 더 위험한 원자력을 갖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듣고보니 그러하였다. 혹시 이 논리에 의문이 있는 사람은 나한테 따지지 말고 댓글란에서 내 친구하고 피터지게 싸우길 바란다.

프라이부르크가 원전을 사용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를 고집하는 건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립을 하려고 하는가? 뮤지션이 대형레이블로부터 자립하려고 한다면 그 이유를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대형 레이블에 있으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대로 못한다...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일반 가정과 에너지 회사의 입장이 예술가와 기획사의 입장과 같진 않다. 기본적으로 우리 대부분은 에너지 소비자이다. 물론 다른 상품과는 다르게 에너지 소비자는 여러 회사의 제품을 비교할 수 없다. 이것만으로 거대한 대체 에너지 기업의 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안 되나? 왜 굳이 보봉지구에서는 집마다 태양열판을 깔아야 했을까?

먼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 당장 그렇게 강짜를 놓을 수 있는 대규모의 에너지 기업 혹은 발전소가 프라이부르크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태양열 발전소와 풍력 발전소로는 필요한 전력을 전부 공급할 수 없다고 한다. 보봉지구처럼 에너지 효율이 아주 좋은 건물에 가계마다 자력발전을 해야 완전한 자립이 가능한 셈이다. 당연히 시 전체의 수요를 대체 에너지만으로 충당하긴 턱없이 부족하다. 프라이부크르도 아직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원자력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언젠가 효율이 좋아져 대체 에너지로 충당이 되는 날이 온다 해도 보봉지구처럼 모든 건물에 태양열 판이 쫙 깔리는 건 아닐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공급한 전기를 사용할 것이다. 분명 그때는 비싼 에너지 요금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경제적 이득도 있다. 물론 태양열판을 깐 주택을 소유한 가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일단 전기세가 안 나가는 것도 있고, 남는 전기를 발전소에 되팔아서 짭짤하게 남길 수도 있다. 집 없으면 서러운 건 어딜 가든 똑같긴 하다. 없으면 걍 아껴써야겠지 ㅜㅜ

또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사용하는 마을주민들이 자율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활발한 시정 참여도 기대할 수 있다. 주민들의 뜻대로 마을의 모습을 설계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을 주변의 변화에 대해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예의 박쥐와 풍차 문제만 봐도 그러하다. 박쥐를 보호해야한다는 법의 명령에 따른 게 아니라, 전력생산을 줄여서라도 박쥐를 살리고 싶은 주민들의 의향이 반영된 것이다. 이 경우는 전력생산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최소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는 정확히 알 수 된다. 이후에 도저히 안되겠다고 싶어서 결정을 번복할 때도, 혹은 더 좋은 방법을 고안해낸다면 포럼에 건의하여 신속하게 회의를 소집한 후 적용시킬 수도 있다.

이재 뻔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대한민국을 말한다. 현 상황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서울을 프라이부르크처럼 바꿀 수는 없다. 인구 천 만 대 인구 이십 만...당연히 안 된다. 지방 도시들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전주와 창원의 공무원들이 보봉지구로 연수를 갔다는 기사가 있긴 하다. 실천하고 있다는 기사는 못 찾았다만...어쨌거나 독일에 있는 잘은 마을의 디테일을 똑같이 복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한국이 독일처럼 할 수는 있을까? 독일은 2020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2050년까지 모든 에너지를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전력난이 우려된다. 과연 독일이 전력난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냐에 따라,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이 모델을 따라갈지 말지 결정할 것이다. 일단 독일은 자신만만하다.

현시점에서 재생에너지가 원자력보다 효율이 안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을 거듭하여 효율이 좋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전만큼의 효율이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원전의 비율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없애는 게 목표가 아니라, 차차 줄여나가는 게 목표 아닌가. 언젠가 신재생에너지가 정말로 원전을 대체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재생에너지 같은 경우 지역에 따라 효율편차가 커서 다들 따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독일도 효율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일단 태양력, 독일에서 가장 화창하고 따뜻하다는 프라이부르크의 연간 일조시간은 서울시보다 적다. 풍력은 한국이 확실히 효율이 좋지 않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전부터 탈원전을 주창했고 독일의 환경수도라고 자부하는 프라이부르크가 수입 원자력 전기와 화력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재생에너지의 효율이 아직까지 많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고, 최대치를 끌어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효율이 원전만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독일 정부도 그걸 알고 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재생에너지 100% 시대로 가느냐...생산을 개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그렇다. 아껴 써야한다. 슬프다 좀 ㅜㅜ 실제로 독일은 에너지 절약을 앞장서서 하고 있다. 밤에는 전등을 희미하게 켜서 최소한의 빛으로만 길을 밝히고, 방도 뜨겁게 데우거나 차갑게 식히지 않는다. 가정과 기업 모두 절전에 힘쓰고 있다. 이건 굳이 에너지가 아닌 대부분의 자원도 마찬가지다. 화석연료도, 각종 금속도 언젠가 바닥날 것을 대비하여 아껴써야 한다.

에너지 절약을 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당연하지만 안 쓰면 절약이 되긴 한다. 하지만 갑자기 에너지를 아껴쓰라고 하면 삶의 질을 낮추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에서는 전기요금을 올림으로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데, 당연하게도 반발이 심하다. 하지만 반발을 해도 어쨌거나 에어컨 끄고 절약하고 살지 않는가...게다가 반발이 심했던 건 단순히 에너지 요금을 올렸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업의 전기사용료가 민간에 비해서 턱없이 낮다는 형평성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안 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방법이 하나 있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상승시키는 방법이다. 인공적인 조절 없이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한 건물. 서울시 기준으로 건물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라고 한다. 그러니 저 비율을 줄일 수만 있어도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셈이다. 현재 독일 정부가 신축 일반건축물에 요구하는 에너지 효율 조건은 제곱미터 당 75키로와트 이하, 프라이부르크에서는 65키로와트, 서울시는 300키로와트다. 이건 단순히 건축 기술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도시 전체가 꼼꼼하게 기획하고 검토해야 한다. 단순하게 일조량만 봐도 건물 하나에 관련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봉지구 같은 경우 건물을 에너지효율적으로 지은 것은 물론이고 물론 지역을 녹지화 시킴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켰다.

짦게 생각하면 우리도 아주 나쁜 조건인 것 같지는 않다. 서울만큼 빠른 속도로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건물이 세계에 얼마나 있겠는가. 신축건물에 기준을 적용하면 그 어떤 도시보다 변화 속도가 빠를 수 있다. 에너지 소비량 기준은 실정에 맞춰서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희생과 규제 이전에 필요한 것은 확실한 목표다. 프라이부르크 주민에게 에너지 자립, 독일 국민에게 2020년까지 원전철폐,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가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그들도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절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일반 가정에 기업보다 더한 희생을 요구했으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같은 곳을 보고 달려야 한다.

여행 얘기를 너무 안 했다. 첫째날 밤에는 프라이부르크 고성에 올라갔다. 도시 전체가 에너지 절약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대는 안 했다.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를 비교해본 바, 도시의 야경은 빛을 조명공해 수준으로 틀어대야 아름다운 인공산물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올라가보니 최소한의 빛으로 밝힌 도시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 조잡한 사진 실력으로 찍어도 의외로 괜찮았는데, 애초에 빛이 적은 탓에 셔터가 오래 열려있던 탓인 것 같다. 하늘에서 별이 반짝였다.

다음날 아침에 보봉지구에 들렸다. 보봉지구의 상징적인 건물인 헬리오트롭에 갔다. 원래 일반 주택으로 알고 있는었고, 실제로 초인종에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문이 열려있어서 관광객에게 개방을 해놓았나보다...하고 별 갱각 없이 들어갔는데 인기척에 놀라 도주했다. 내벽은 전부 목재로 되어있었고, 의외로 공간이 넓었다. 이불이 개어지지 않고 널부러져 있는 걸로 보아 사람이 사는 곳이 확실하다.

이런 도시를 보고 간다는 게 행복했고 자극이 많이 됐다. 지역주민에게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다음날 오후에 카메라 렌즈가 박살나기 전까지는 정말 모든 게 괜찮았다.


2015/1/11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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