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실종>은 <펭귄의 우울>의 후속작이다. 3년 전에 읽었던 전작은 내게 민들레 홑씨 날리듯이 내용이 들어오지 않고, 책 전체를 지배하는 우울한 이미지만 남아있다. <펭귄의 우울> 감상문을 다시 읽어보니,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문제인지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적어두었다.

  3년이 지나 읽은 후속작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여전히 글이 눈에 박히듯 들어오진 않았고, 사건은 얽히고 섥혀 많았다. 인물들의 대사는 여전히 모호한 구석이 없이 굉장히 구체적이었는데, 자신의 사고나 철학에 대해 썰을 풀기 보다는 그 예시만 굉장히 쉬운 말로 설명한다.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소설을 그로테스크하게 만드는데, 사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없기 때문일거다. 따지고보면 다 은유법 아닌가.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비유가 전부였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민주화 혁명인 오렌지 혁명은 2004년에 일어났고, 이 책은 2002년에 써졌다. 작가 쿠르코프는 그전까지 늘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어로 쓴 소설인데,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떨까? 굿바이 레닌, 드라스트부이쩨 푸틴. 지금 그들은 썩어 문드러져가는 꿈조차 없다.

  전작에서 주인공 빅토르는 우울증에 걸린 펭귄 미샤를 잃었다. 그는 신문지면에 유명인사의 부고, 일명 '십자가'를 죽기 전에 미리 쓰는 일을 하였고, 그 사람이 갑작스레 죽으면 미샤를 끌고 장례식에 참가했다. 사실 갑작스레라고 할 것도 있나, 다 모종의 음모였을 뿐이다. 장례식의 상징처럼 되버린 펭귄 미샤는 그들이 끌고갔고, 절망한 빅토르는 미샤를 남극으로 보내려는 비행기에 대신 탑승한다. 여기서 <펭귄의 우울>이 끝났다.

  <펭귄의 실종>은 바로 그  남극에서 시작한다. 빅토르는 펭귄을 잃었고, 소냐와 니나에게 별 말도 없이 남극으로 떠나왔다. 남극에서의 삶은 펭귄도, 가족도 없는데 별 부담이 없고 편안하다. 다만 여기에 전직 러시아 은행가가 피신해오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죽어가면서 빅토르에게 자기 대신 육지로 갈 것을 부탁한다. 빅토르는 펭귄도 찾을 겸 그에 따랐고, 이제 그는 다시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야 한다. 키예프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다시 도박을 하고, 매춘을 했다. 사랑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는데 사랑을 돈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되냐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펭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참가한 장례식에서 국회의원 후보의 보좌관이 된다. 그리고 아주 현실적인 정치의 세계에 몸을 담게 되는 것이다. 기괴한 면모가 있었던 '십자가'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인 일이었다. 보수도 괜찮았다. 그가 모시는 정치인 세르게이는 '달팽이의 법칙'을 주창하며 자신의 보호 안에 있는 한 빅토르는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문제는 이 정치인들의 품격이었다. 세르게이는 자선가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고, 확실히 성공했다. 선거 기간 중 시골의 고아들을 불러 모아 사진을 한 방 박고 맥도날드에 데리고 가 햄버거를 먹였다. 고아원 선생님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여기까지야 한국에서도 할 만한 일인데, 그 다음은 더 기가 차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동네인 만큼 몸의 한 부위가 적은 사람이 많은 동네였고, 빅토르는 세르게이한테 그들에게 의족을 공급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자 세르게이는 대수롭지 않게 의족을 공급하는데, 그 상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르완다의 어린이 용 구호 물자.'사람은 충직스럽지만 교양과 머리는 전혀 없는 세르게이의 다른 수행원을 살펴보면, 과연 세르게이가 이전에 무엇을 했을지 대충 짐작은 간다. 다만 그럼에도 당선된지 며칠만에 창녀와 자다 복상사한 상대 후보보다는 덜 악랄하다는 것이 이 나라의 비극이다. 세르게이가 상대의 술책에 말려들어 후보를 포기하자, 그는 불쌍한 펭귄을 위해, 그리고 딸 같은 소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미샤를 찾으러 떠난다.

  펭귄은 원래 남극과 그 주변에 산다. 그 주변에서 크릴을 잡고 수영을 하며 사는 동물이다. 따라서 전작에서도 키예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보다도 펭귄 미샤에게는 고향과 동떨어진 곳이었다. 심장이 약한 미샤는 결국 가장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 있었다. 분리독립을 주창하는 러시아의 체첸이었다. 동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였고, 구소련 몰락 이후 동유럽 민족의 긴장 관계를 가장 급박하게 보여주는 곳 중 하나였다. 빅토르는 결국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체첸은 러시아 안에 있지만 슬라브인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체첸에는 이슬람을 믿고, 체첸어를 쓰는 체첸인들이 산다. 체첸어는 지금은 로마자로 표기한다지만, 원래는 아랍문자를 변형해서 표기하던 언어였다. 로마자로 쓰는 것도, 스탈린이 강제로 키릴 문자로 바꾼 것을 다시 바꾼 것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슬라브족 전통하고는 별 관련이 없다. 그런데 이들은 러시아 땅 안에 있고, 그래서 러시아인들과 싸운다. 사실 미샤와 빅토르가 살고 있는 동유럽 땅이 다 그랬다. 그들 모두가 믿었던 프롤레탈리아 독재는 실은 아무 것도 아니었고, 소련이 몰락하자 그 나라들은 수조각으로 쪼개졌되, 그게 민족의 요구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으로 급박하게 나뉘었다. 코소보 사태도 이런 이유로 일어났다.

  동유럽의 국가들은 아직도 분리 중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헤어졌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떨어져나간 다음에,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만 남았는데, 그것마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나뉘어졌다. 아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다시 나뉠지 모른다. 물론 체코와 슬로바키아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지도에 편의상 가로세로로 선을 그어 나라를 구분했는데, 언젠가 이들도 지금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며 국경선을 다시 정해야할까? 이런 혼잡한 세상에서 펭귄은 물론 인간도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작중에서 소냐의 보모인 니나가 남자를 사귀어도 하필 걸린 게 마약거래범이다.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듯이, 남자를 사귀어도 마약거래범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체첸에 들어가서 빅토르가 일한 곳은 실체를 알 수 없는 화장터였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는 변사체들. 그들의 현대사에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그럴 것이다.

  많은 역경 끝에 미샤를 돌려받겠다는 약속을 받고, 빅토르는 다시 키예프로 돌아온다. 얼마 후 마침내 미샤를 돌려받고, 소냐는 행복해한다. 그는 다리를 잃고 절망하고 있는 친구를 위해 마침내 국회의원이 된 세르게이를 설득해 암레슬링 프로팀을 만들어 그를 주장으로 삼는다. 모든 것이 다 돌아가고, 이제 펭귄만 고향으로 보내주는 동화책 같은 결말을 맞으려는 찰나, 과거의 유령이 돌아온다. 바로 '십자가'를 지시했던 편집장이다. 빅토르는 그가 죽은 줄 알았지만,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세르게이가 그의 하수인이었던 순간, 그는 미련없이 미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남반구의 어느 섬에서 기어이 펭귄의 고향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빅토르는 평안을 느끼며 소설은 끝난다.

  그 섬은 별세계처럼 아름다운 펭귄의 고향이었다.그러나 한 마리 펭귄에게도 있는 고향이 빅토르에게는 없는 것일까. 키예프가 고향이라면, 그곳은 상흔 속에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빅토르가 키예프로 돌아간다면 편집장 밑에서 '십자가'와 정치가 공존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 푸틴은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고, 소련이 돌아오길 바라는 자는 머리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과거의 유령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남극까지 와서도 암살될까봐 불안해하던 그 은행가처럼 빅토르는 사람이 있는 한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고, 사람보다 펭귄이 많은 곳에서 평온을 얻을 것이다. 아름다운 땅은 정녕 별세계에만 있는가.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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