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펭귄의 우울/★★★☆☆

 제목부터 끌리지 않는가? 정말로, 간만에, 책 내용도 잘 모른 채 제목만 보고 산 소설이다. 유럽에서의 서평은 정말 대단하더라, 한겨레에서 껴주는 18˚에서는 그리 좋지는 않았고. 어쨌거나 19세기 러시아 문학적 맥락의 뒤를 잇는 책이라고 하더라. 책은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같이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특히 마지막의 반전은 볼만했다. 아니 반전보다도, 마지막 주인공 빅토르의 대사!

 소설은 공산주의 체제가 막 무너진 어지러운 키예프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주인공 빅토르는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혼도 못 한 채 근근히 살아가는 소설가고, 미샤라는 펭귄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어느날 우연히, 신문사에서 현재 살아있는 저명인사, 그 중에 죄가 있는 사람들의 조문을 미리 작성하는 일을 맡았다. 이 시점에서부터 미행이 따라다니고, 이유는 모르는데 무언가를 하라고 신문사에서 지시를 내리고, 주위 사람이 죽는 위험한 일의 투성이가 되었다. 흥미진진한 플롯이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원작이 원래 그런지 번역이 이상한건지 서술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는 것이, 논리적 이유는 있었으나 계속 빠져들게 할만한 힘이 없었다. 왜, 왜, 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몸을 피하는 게 당연한지. 원인은 분명 있는데, '왜 저래?'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즉 빅토르가 위기에 빠졌다는 자각이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감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데 사람을 죽이는 조문인 '십자가'가 빅토르의 일상이 되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하지만 글의 흐름이 자꾸 끊기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펭귄'이 없었으면 끝까지 못 읽을뻔 했다. 서평 그대로, 펭귄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등장시킨 것은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주인공이 펭귄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 펭귄으로 시작되는 인간 관계, 펭귄을 기르기 때문에 나올수 있는 반전,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모두 펭귄이 나왔다.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후속작이 '펭귄의 실종'이라는데, 그 때 가서는 내 평가가 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