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표원이 나를 1등석으로 불러냈다. 내가 계속 귀찮기 굴었기 때문이다. 분명 침대칸을 예매했는데 왜 이 열차에는 침대칸이 없냐, 침대칸으로 안내해라...라고 나는 영어로 떠들었다. 얼굴살이 축축 늘어진 검표원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가리아 어로 아마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종국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텅 빈 1등석으로 나를 안내했다. 따지기 잘했다...하지만 검표원은 1등석에 날 앉히더니 5유로를 요구했다. 왜냐, 난 예약을 했는데. 이미 10유로를 냈다. 검표원이 영어로 말했다. 예약은 예약일 뿐! 직감적으로 이게 정식비용이 아니라 일종의 뇌물 같은 거라는 걸 눈치챘지만, 그때 시간이 새벽 한 시...너무 피곤해서 그냥 돈 주고 끝내고 싶었다. 먹고 떨어져라, 이런 심정으로. 하지만 지갑을 꺼내보니 유로라곤 20유로 지폐밖에 없었다. 이거 떼먹는 거 아닌가 싶어서 먼저 잔돈을 요구했다. 15유로 주면 줄게요. 그러자 은근슬쩍 말을 바꿨다. 10유로 달란다. 뻔하지 뭐, 뇌물이다. 내가 안 내놓고 있으니 한 마디 더 했다. 불가리아 돈도 오케이. 듣는 순간 부글부글 끓던 속이 터졌다. 먼저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고함을 쳤다. 대체 내가 돈을 왜 내야 하는데? 난 예약했는데오. 검표원이 당황했나보다. 예약은 예약일 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난 돈 안 낼 거다. 멋대로 하쇼. 경찰 부르든가. 누가 옳은지 따져봅시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누웠고 객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잠깐 더 버티던 검표원은 한숨을 푹 쉬더니 짐은 선반에 올려두라고 하였다. 1등석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고...정말 이걸로 끝인가 진짜 경찰 부르는 건 아닌가 싶어 잠깐 더 깨있었지만, 이내 누워서 잠들고 말았다. 자는 도중에 검표원이 의자에 신발 올리지 말라고 심통을 한 번 부렸다. 이번에는 순순히 따랐다.

부쿠레슈티에서는 내내 비가 왔다. 야경을 찍기 위해 나간 어느 밤에는 바람이 너무 거칠어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루마니아가 제2세계 국가 중에서도 유독 지독한 독재를 겪은 곳인데다가, 헤르타 뮐러 소설에서 묘사된 모습도 있고, 또 불가리아 사람들이 루마니아에 간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 하던 것도 있고....해서 좀 무서웠으나 막상 도착하니 별 거 없었다. 적어도 남자 혼자는 유럽 여행 다니면서 목숨 걸 필요는 없는 듯 하다. 루마니아에서 만난 어떤 사람도 사람들이 루마니아를 공산주의 시절로만 기억하는 게 불만이란다. 그게 언제쩍 일인데. 자그마치 25년전 일이고, 반 세기도 안 되는 짧은 공산주의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유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란다. 사실 이름도 Rome에서 따온 거 아닌가. 사람들은 정말 스스로를 로마의 후예로 여기는 지, 도시 곳곳에 로물루스 전설에 나오는 암늑대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공산주의는 또 얼마나 강렬했는지. 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은 인민 궁전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사당 건물이다. 세계에서 단면적으로 자그마치 두 번째로 넓은 건물이며, 높이도 85m로 결코 낮지 않다. 공산주의의 위엄이라기 보단,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소비에트 키치'의 모든 것이 집약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건물이 왜 이리 큰가...하면 독재자 챠우세스크가 큰 걸 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 건물의 디자인은 시민 공모로 결정했다. 챠우세스크의 측근의 측근의 아는 사람이 아니라...다만 심사를 건축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챠우세스크가 했을 뿐. 집시들을 인도적 명목으로 나라에 잔뜩 들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아마 챠우세스쿠는 소총에 난사당해 걸래짝이 되어 죽기 직전까지 본인이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재자들은 자신을 차갑게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시선 같은 기 없다. 사실 독재자만 그런 건 아니고, 이런 사람은 많지만 독재자의 권력이 없을 뿐....에서 다시 건물 얘기로 넘어가자. 심사 기준도 간단했다. 제일 큰 거.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고...조경을 가꾼답시고 근처의 역사적 건물들을 죄다 박살냈고, 주택가에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로 내쫓았다. 하지만 80년대 시작된 공사는 89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완료되지 않았다.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일단 완성은 시켜야겠으니 공사를 진행했으나 손볼 데가 너무 많아서 해도 해도 끝나지가 않았다. 그리고는 25년이 지난 지금은 공정률이 99.98%라고 한다. 아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내가 다시 루마니아에 찾아갈 어느 날까지 99.98%일지도 모른다.

내가 머물던 내내 인민궁전은 내부 개방을 하지 않아서 밖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도 가까이서 보면 그 사이즈가 제법 압도적이라 기가 죽긴 한다. 하지만...이 건물의 진가는 밤에 알 수 있었다. 그저깨 밤이 인민 궁전 옆을 지나가는데, 정말 불 하나 안 커두고 깜깜하다. 건물이 넓어서 전력공급이 충분치 않은 탓이라고 들었다. 마침 자욱하게 낀 안개가 인민궁전 옥상을 짚고 내려와 벽을 타고 기어내려오는대....드라큘라가 저런데 살지 않을까 싶다.

도시 전체적으로 아파트가 많다. 내가 지금까지 들린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많다. 물론 아파트 제국 대한민국에 비교할 건 안 되지만. 게다가 대부분의 아파트가 낡았다. 죄다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다가, 다들 하나같이 외장에는 무심한 모양새다. 그 가난했던 조지아의 바투미도 외벽은 알록달록 잘 칠해놨는데. 아파트 단지 내엔 주차장만 있고 놀이터나 상가 같은 건 찾기가 힘들었다. 루마니아에 대한 편견 때문일까,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회벽에는 어떠한 온기도 느끼기 힘들었다. 한국인이 아파트에 가지고 있는 어떤 기대감...그러니까 십수년 아니면 수십년을 모아 얻은 자기 집...집에 돌아오면 온가족이 TV가 있는 거실에 모여 식사를 하고, 그 거실에는 넓직한 베란다가 딸려있고, 그 베란다 창에는 거실의 아늑한 불빛과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희미하게 반사되는...뭐 그런 모습. 그런 기대감, 투자 심리, 여타 욕망이 기기괴괴하게 섥혀 아파트의 나라를 만든 거 아닌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도 아파트가 이런 기대감을 줄까? 루마니아 사람들의 평온한 삶은 뭘까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까.

아침에 부쿠레슈티를 떠나는 열차를 탔다. 우연히 호스텔에서 스친 이탈리아 여행객을 다시 만났다. 심지어 같은 칸이었다. 원래 뭘 하던 분이냐고 여쭤보니...직업이 여행자란다. 20년째 여행을 하면서 살고 있단다. 질문 하나를 속으로 삼켰다. 왜 계속 여행하나요? 정말 묻고 싶다. 물어봤어야 했는데...


2014/11/20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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