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고민했다. 28일에 태흠이 형과 라이프치히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면 2박을 보낼 곳이 필요하다. 후보군은 다음과 같았다. 함부르크, 하노버, 예나. 함부르크는 독일인들이 세계로의 출구라고 부르는 거대한 항구도시다.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에 있는 모든 다리 수를 합쳐봤자 함부르크만큼 안 된단다. 한국인들에게는 손흥민이 과거에 뛰던 팀의 연고지로 알려져 있다. 하노버는 우리로 치면 2000년대부터 엑스포 붐을 타고 빠르게 성장한 신도시였다. 어떤 면에서는 베를린을 닮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나는 오래된 대학 도시이고(그래서 독일어 교재의 단골 도시이다. A: 너는 어디에서 공부하고 있니? B: 나는 예나의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어. 사실 이게 내가 예나를 알고 있는 이유였다. ) 중세의 풍경이 잘 보전된 유서 깊은 작은 마을인데...내가 광장, 교회, 탑이 학을 뗀지 어연 한 달이 넘었다. 따라서 저 중에는 예나가 가장 매력이 없었고, 또한 크리스마스 휴일이 껴있어(독일은 크리스마스가 25일, 26일 연휴다) 더욱 심심할 것이 뻔했다.

결국 예나로 갔다. 음? 사실 별 이유는 없었고, 저 셋 중에선 라이프치히와 가장 가깝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볼 것도 할 것도 없으니까 짱박혀 쉬면 되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여전히 함부르크에 못 가본 것은 아쉬웠다. 하노버는 아직도 일정을 틀면 갈 수 있는데, 함부르크는 이제 힘들 것 같다.

예나는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각오하고 왔으니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얼마나 한가했냐면, 호스텔에 도착하니 리셉션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부재 시 전화하라는 포스트잇으 하나 붙여져있을 뿐이었다. 심카드를 구매하지 않은 나는 직원이 올 때까지 로비 소파에서 눈 좀 붙이기로 결정했다. 40분 정도 지나 도착한 가족손님이 나를 깨우고 체크인 좀 해달란다. 나도 손님이라고 말하자 미안해하며 리셉션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이윽고 직원이 왔다. 난 원래 6인실을 예약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3인실을 주며 린넨 값도 받지 않았다.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기서 머리를 잘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날에 머리를 잘랐으니, 대략 55일만의 일이었다. 엄청 긴 건 아닌데 뒷머리가 지저분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에 한인 미용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긴 싫었다. 발품을 팔아 미용실을 뒤졌다. 하지만 어디서든 18유로 이하로 잘라주는 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냥 프라하 같이 물가 싼 곳에서 자르고 올 걸 후회가 막심했다. 베토벤 같은 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지키고 있는 미용실이었다. 재성이 형에게도 들었고, 또 인터넷에서 보아하니 유럽 미용사들은 아시아인의 숱 많은 머리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보아서 걱정이 많았다.

당연하지만 한국과는 달랐다. 일단 끝나고 감겨주는 게 아니라 자르기 전에 감겨주는 게 처음에 발견한 차이였다. 우리처럼 머리 자르는 곳과 감는 곳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일체형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순간...머리를 어떻게 자를 것이냐고 물어보는데...아주 직관적인 질문이었다. 옆머리는 기계로 자를래요, 가위로 자를래요? 가위로 해주세요. 뒷머리는 기계로, 아님 가위로? 가위로 해주세요. 이것으로 모든 질문이 끝났다.

숱을 쳐주지 않는 게 좀 안타깝긴 했지만 이 정도면 그리 나쁘진 않구나 안심하고 있었다. 거울로 내 뒷머리를 보여주면서 괜찮냐고 물어볼 때도 괜찮았다. 그래 지저분해 보이지는 않네. 다음은 옆머리를 보여주면서 좀 더 짧게 자를 것인지 물어보았다. 잠깐 고민했는데...살짝 긴 것도 같았다. 이왕 자르는 거 좀 더 치지...하여 잘라달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지체 없이 바리깡으로 한 번에 밀어버렸다. 직각으로. 내 생애 독일어 공부 열심히 안 한 걸 가장 후회한 날이었다. 아주머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와중에 모든 작업이 끝났다. 아주머니가 물었다. 어때요? 내 독일어로는 항의도 못 한다. 매우 좋아요...라고 말한 후 눈물 젖은 18유로를 내고 나왔다. 십팔 유로를......나중에 친구한테 카톡으로 보여주니 레고 같다고 하였다.

첫날 밤에는 방을 혼자 썼는데, 둘째 밤에는 사람이 들어왔다. 수학을 공부한다는 독일인이었다. 예나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놀러왔다고 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친구를 따라다니며 동네 구경을 했단다. '예나7경'(Seven Wonders of Jena) 중 네 개나 봤다고 한다. 내가 물었다. 그런 게 있었어요? 그가 물었다. 여기서 대체 뭐 했어요? 내용을 들어보니 역시나 교회, 탑, 산 같은 거였다. 딱 하나 신기했던 게 프라하의 천문시계 비슷한 자동인형 시계가 여기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 중 공을 던지고 다시 받으려고 하지만 언제나 실패하는 인형이 하나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 인형이 재주 부리는 데 성공하는 날 세계가 끝난다. 내가 말했다. 인간들이 영원히 해먹겠네요. 그가 동의했다. 그는 하노버에서 살고 있다며, 하노버의 유명한 프랑스식 정원에서 딴 약초를 넣어 만든 초콜렛을 선물로 주었다. 내가 물었다. 하노버는 뭐가 유명해요? 그가 대답했다. 하노버 식 폭탄주가 유명해요. 맥주랑 다른 술잔을 동시에 입 안에 들이붓는 거예요.

다음날 아침에 라이프치히로 떠났다. 독문과의 탑 태흠이 형과 아파트를 빌렸다. 성적이 탑이 아니라 빅뱅의 탑이다. 어쨌든 내가 먼저 가서 키를 받아놓고 태흠이 형이 3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형에게 카톡이 왔다. 연착 됐단다. 독일인데 별 일 있겠나 싶었다. 알고보니 아예 취소가 됐단다. 드레스덴 역에서 전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사태가 심상치 않아서 걱정이 됐지만, 결국 형은 다음 열차를 타고 왔단다. 불가리아나 루마니아에서도 보지 못한 열차 취소를 독일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도이체반이 그리 신뢰도가 높은 회사는 아닌 것 같다. 연착은 기본이고, 과감하게 취소도 하고,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싼가. 독일에서만 열차를 타고 다녀도 유레일 패스 본전을 충분히 뽑을 만했다.

라면을 끓여먹고 숙소에서 나왔을 때 이미 세 시를 넘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았다. 어차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미련은 없었겠지만. 형이 물어봤다. 독일어 좀 쓰냐? 내가 말했다. 영어만 써요. 사실 영어만 쓰는 건 아니고,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도 어줍잖은 독일어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형은 길 물어보는 것도 독일어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독 비밀경찰 박물관까지 찾아갔다. 무료였기 때문이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바흐 박물관이다. 역시 무료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광장, 그 다음엔 교회...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음식점이 유일하게 흥미로웠다. 식당 이름은 아우어바크르 켈러, 500여년 된 가게이고 괴테의 단골집인 걸 넘어 무려 파우스트 작중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형이 내게 물었다. 너 파우스트 읽었냐? 내가 말했다. 아뇨. 형이 말했다. 지루하더라.

갔더니 자리가 부족한데, 다른 테이블에 동석하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넓은 테이블이라면서. 알겠다고 하고 따라갔는데 그냥 좁은 4인용 테이블이었다. 이미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있었다. 과연 좁은 테이블은 어떤 걸 말하는지 궁금해졌다. 어쨌거나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괜히 독일어로 했다가 사이드디쉬 고르라는 걸 못 알아들어서 고생했다. 가격은 좀 쎘다. 형은 양고기 요리를 시켰고 나는 슈바인스필레슈트라이펜을 시켰다. 적어놓으니 거창한데 그냥 돼지고기 크림찜 같은 거다. 사실 돼지고기 요리인 것 빼고는 뭔지도 모르고 주문했다. 먼저 맥주가 나왔다. 건배구호는 독일어로 했다. Prost! 그러자 옆에 앉은 남자도 같이 외쳐주었다. 맥주는 아주 훌륭했다. 형은 한국맥주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음식이 나왔다. 막상 받으니 양이 적어 실망스러워서 나는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형이 언제 여기와서 이런 거 먹어보겠냐고 감사히 먹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형하고 신촌도 아니고 라이프치히에서 이러고 있다는 게 웃겨요.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밤늦게까지 마셨다. 형이 제일 싸서 고른 건데, 역시 싼 게 비지떡인지...맛이 카스와 매우 유사했다. 독일맥주 마시면서 고향의 맛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두 시 넘어서 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하얬다. 간밤에 눈이 내렸나보다.

다음날 아침을 해먹고, 오전 10시에 약속대로 집주인이 나타났다. 형이 잠깐 정리할 게 남아서 바쁜 사이, 짤막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 쪽도 베를린에서 만난 웨니스처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여행을 아주 좋아한단다. 올해만 벌써 대여섯 개 나라를 갔다왔다고 하였다. 학생이라고 하지 전공이 뭔지 물어보는데...정말 독일인이 내 전공 물어볼 때가 제일 싫다. 기차를 타고 떠난다고 하니, 눈이 와서 연착될 것 같다고 걱정해줬다. 독일은 약속의 나라 아니냐고 물어보니 도이체반은 아니란다.

나가보니 눈이 그냥 온 게 아니라 폭설이 온 거였다. 게다가 아직 그치지도 않았다. 정면으로 쏟아졌다.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어른들은 아이를 나무 썰매 위에 태우고 끌고다녔다. 중앙역까지 가는 S반은 연착이었다. 중앙역에 도착하니 다음 도시로 가는 기차도 연착이었다. 형은 그 사이 페트병 모은 걸 마트에 팔았다. 돈은 나보고 가지라고 주었다. 내가 말했다. 저 이런 거 절대 거절 안 해요.

형은 먼저 베를린으로 떠났다. 나도 20분 정도 지나 뉘른베르크 행 기차를 탔다. 가는 길이 온통 하얬다. 독일이 전부 눈에 파묻혔나보다. 가는 길에 눈에 덮힌 하얀 지평선을 보았다. 살면서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2014/1/4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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