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 리셉셔니서트가 물었다.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어요? 내 대답은 뻔하다. 베를린이요. 그가 대답했다. 베를린 멋지죠. 맥주 질도 좋아요. 아무리 마셔도 숙취도 없고...그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은 더 좋을 거예요. 암스테르담에 온 걸 환영합니다.

방은 좁고 길었다. 네덜란드의 집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짐을 풀자마자 작은 배낭 하나만 매고 다시 나갔다. 반 고흐 미술관으로 향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나올 때만 해도 비가 억세게 내렸는데, 도착하니 해가 슬며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사람은 많았다. 가방과 재킷을 맡기는 줄만 해도 한참 길었다. 내 뒤에서 줄서있던 여자가 아이폰을 떨어트렸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아이폰을 주웠는데 별 탈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으로는 부족했던지, 5분 정도 지나 한 번 더 떨어트렸다. 이번에는 액정이 논바닥처럼 확실하게 쩍쩍 갈라졌다. 여자가 울상을 지었다.

미술관은 고흐의 습작부터 걸작까지 많은 작품들, 고흐와 관련 있던 당대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 고흐와 테오의 편지와 개인물품까지 전시해놨다. 규모가 아주 큰 곳은 아니었지만, 관람하는 것이 즐거웠다. 오디오 가이드도 잘 돼있다. 고흐의 생애와 생각은 물론이고,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어떤 면에서 독특한지, 관람객의 절대 다수일 나 같은 미술문외한에게도 이해시키려고 하는 박물관의 노력이 보였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같은 경우 습작을 같이 전시하여 고흐의 구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고, 당대의 유행이 그에게 끼친 영향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시대 작가들의 그림을 같이 전시하고, 거친 붓놀림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보여주기 위해 고흐의 습작에다 현미경을 설치했다. 이렇게 치밀하게 구성되어 관람객에게 쉴새없이 말을 거는 박물관도 하나의 작품 같았다. 이 작품에도 메시지가 있다면, 아마 오디오 가이드에서 말하듯이 "고흐가 정신병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정신병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일 게다. 박물관은 고흐가 수많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치열한 인간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어했다.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든 작품을 다 봤지만, 아무래도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들이 더 인상깊긴 했다. <해바라기>가 그렇게 큰 그림인 지 몰랐다. 의도적으로 진득하니 뭉쳐둔 물감 덕에 양감이 느껴졌다. 고흐의 의도 그대로였다. 천장 조명에서 뿌린 빛이 노란 물감 덩어리들이 만든 골짜기에 고였다. 물감이 황금처럼 반짝였다. 원래 <해바라기>는 고갱과 같이 사용할 작업실에 걸어둘 용도로 그린 그림인데, 원래 용도대로 창밖에서 쬐는 자외선 아래라면 어떨지 새삼 궁금해졌다. 햇빛이 물감 절벽을 타고 폭포처럼 뚝뚝 떨어지면 정말 태양처럼 빛나려나. 60억 인류 중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초상화도 많았다. 고흐는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어서 자기 얼굴을 그리거나, 아니면 농부나 군인, 어린이, 창녀와 같은 모델을 찾아 그리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한 사람도 허투루 그리지는 않았는데, 아마 초상화는 대상의 영혼을 드러내야 한다는 그의 굳은 믿음 탓일 것이다. 이제는 본질을 형이상학적 형태와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본질이란 게 과연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좀 촌스러운 시대라서 그런지...정말 고흐가 대상의 영혼을 제대로 포착했는지 확신은 안 선다. 오히려 고흐처럼 파토스가 넘쳤던 사람에게는 본질을 보겠다는 시도가 동전던지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누구도 보지 못한 부분까지 꿰뚫어보거나, 완전히 헛다리 짚어서 소설을 쓴다든가.

타인의 초상화보다는 자화상이 인상 깊었다. 파리에 채류하던 시절에 그렸던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은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다음 그림을 보겠다고 게걸음으로 이동하면서도 시선은 고흐의 인중에 고정되어 있었다. 작은 액자 안에서 고흐의 눈이 번득였다. 오디오 가이드는 고흐가 이 그림에서 그림 보는 이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사방팔방 찍어놓은 점들 덕이란다. 타인을 그린 것중에는 <고갱의 의자>였다. 제목 그대로 그림 안에 고갱은 없고 고갱의 의자만 있는데, 그럼에도 다들 이 그림을 초상화로 받아들인다. 이 그림의 짝이 되는 <고흐의 의자> 탓이다. <고갱의 의자>는 안락하고, <고흐의 의자>는 조촐하다. 미술관에는 <고갱의 의자>만 전시되어 있고 고흐의 의자는 옆에 작게 인쇄하여 붙여놨는데, 오히려 <고갱의 의자>이서 고흐의 심정이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제목과 사연을 모르고 보면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그림이다. 고갱에 대한 어떤 적의도 느껴지지는 않는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고갱에 대해 부럽기는 하지만 차마 악의는 못 품는, 그럼에도 자기 그림에 대한 자부심은 있는 고흐의 초라한 모습이 보인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고흐의 마지막 그림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란다. 이후에도 10여점을 더 그렸고, 개중에는 밝은 그림도 있다고 하였다. 그림이 자아내는 울적하고 스산한 분위기, 그리고 밀밭에서 권총자살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맞물려 만들어낸 도시전설이라고 하였다. 별개로 그림은 속에서 무언가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었다. 밀이 강풍에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 같다. 괜히 고흐의 실제 시야가 궁금해서 프레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직원이 주의를 주었다.

도록으로만, 혹은 JPG 파일로만 보는 그림들이 눈앞에서 쏟아지니 황홀했다. 그 중에서 몇 점 뽑으라고하면 꽤 용을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점만 고르라고 하면 오히려 쉽다. <마르멜로, 레몬, 배, 포도가 있는 정물화>를 고르겠다. 거의 노란 색으로만 그린 그림이다. 심지어 그림자도 노란 계통의 색으로 칠해진 것이다. 한 눈에는 무슨 그림인지 파악하기 쉽지 없다. 시간을 두고 계속 봐야 사물의 윤곽이 나타나고, 좀 더 보고 있으면 고흐의 그림답게 사물에서 따뜻한 향이 난다. 물론 대표작인 <해바라기>만큼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안에 숨어 있는 예술가로서의 야심과 담대함이었다. 고흐는 심성이 모질지 못하고 소심했다고 하지만, 캔버스 앞에서 집요하고 담대한 완벽주의자였다. 노란색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이런 그림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정물화의 과일들은 뚜렷한 형태가 있는 반면, 배경은 테이블 같은 구체적 배경이 아니라,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처럼 소용돌이 치며 일그러진 형상이다. 현대 미술에게도 고흐에게도 독창적인 발상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덕에 뚜렷한 형상을 지닌 과일들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것 같다. 고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길 바란 사람이었다. 기존 질서와 다르다고 겁먹지 말고 철저하게 해보라고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폐관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박물관에서 나왔다. 오는 길은 걸어서 왔다. 유명한 담 광장에 서서 잠깐 생각했다. 고흐는 마을마다 빛과 색이 다르다고 하였는데...그러면 나도 앞으로 좀 더 열심히 관찰해 볼까...하여 이곳은 지금까지 들려본 광장들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봤는데...모르겠다. 그냥 호스텔로 돌아갔다.


2015/1/18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