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11년이 왔다. 2010년 연말결산 포스팅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2011년은 먼저 왔다. 아직 끝내지 못한 연말결산의 이름을 무어라 붙여야할지 모르겠다. 작년(벌써 작년이라고 부르기 참 어색하다) 31일 자정에 나는 종각에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오세훈이 종을 쳤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몇 명 더 친 것도 같다. 2011년 대한민국은 서울시장 오세훈이 종을 치는 나라다. 그 오세훈은 '복지 포퓰리즘'을 부르짖고, 서울시의 돈을 들여 신문 광고에 벌거벗은 아이의 사진을 올린다. 그날 옆에 있던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오세훈은 적당히 잘 생겼다고 한다. 너무 잘 생기면 되려 부담스러우니까. 어쨌거나 우리는 전반적으로 잘생기고 부드러운 정치인을 원한다. <제 5공화국>이 아닌 정치 드라마의 주인공은 장동건과 고소영이다. 물론 오세훈의 생각이 외모만큼 세련되지는 못하다. 그의 생각은 2010년의 대한민국에서 유행했던 복고풍 단어들 같다. 오랜 기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

  비록 2011년은 밝은 해가 뜰 것이라고 전혀 장담은 못 하겠지만, 90년대에 내가 기대하던 2011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2011년은 애매한 숫자라서 5로 떨어지는 숫자를 더 선호하긴 했다. 2010년, 2015년 같이. 초등학생 때는 과학그리기 대회가 있었다. 과학의 날에 맞춰하던 행사였던 것 같다. 과학그리기 대회는 제목은 저래도, 신제품이나 신기술 스케치를 하는 대회가 아니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좋은 사회를 그리는 것이다. 과학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바꿔놓을 것인지, 즉 유토피아를 그려야 한다. 디스토피아를 그리지는 않는다. 물산은 풍부하고, 이웃의 정은 깊고, 강산은 푸르고 푸르거나 아예 푸른 바다속에 있는 도시를 그려야 한다.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는가? 바다 속에 도시를 만들지는 못해도(생각해보면 물고기들에게 민폐다.) 버튼을 누르면 물건이 생기는 시대에는 도달했을지 모르겠다. 인터넷 쇼핑이 생겼으니까. 다만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초대형 벌집에 살 줄 알았다는 친구의 소망은 래미안과 e편한세상이 달성해줄지 모른다. 다만 그녀가 찾던 사람들 사이의 정은 아파트에서 민들레꽃을 찾기까지 발견할 수 있을까? TED의 강의를 보다보면 종종 입이 쫙 벌어지는 발상이 넘실거린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가 비참한 것은 아이폰4와 인터넷 쇼핑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010년이 이렇게 비참한 한 해였으니, 내가 과학그리기 대회에서 그린 2010년은 틀린 셈이다. 내가 올해 입대하게 된다면 2013년에 전역하게 될 것이다. 2013년의 나는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사실 주로 궁금해하기만 했고, 그에 답을 하지는 못했다. 2013년의 나는 여전히 가난할까, 같은 생존에 관한 질문부터 시작하여서, 마지막 질문은 2013년의 나는 여전히 외로울까? 였다. 내 2020년에 던지는 질문도, 2030년에 던지는 질문도 별 다를 것 없이 같을 것이다. 내 주위가 어떨지에 던지는 질문도 비슷하다. 여전히 우리는 겁에 질려있을까? 바뀐 것은 없을까? 2013년에 아이폰이 쿼드코어에 램 4기가로 출시되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를 바꾼다면 꽤 놀랄 것이다.

  그날 만난 다른 친구 하나는 곧 고시를 준비한다고 하였다. 내 주변의 많은 이가 고시를 하러 갈 것이다. 나보다 군대를 먼저 갔다 온 사람과 같이 졸업을 할지도 모르겠다. 90년대에도 사람들이 노량진에 모여 고시 공부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내가 처음 과학그리기를 했던 때나 지금이나 노량진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청춘들이 외로움과 뭉클함과 씁쓸함으로 밝히는 노량진의 밤풍경. 모든 고시가 폐지되지 않는 한 2015년에도 여전할 밤이다. 오세훈의 타종을 보고 해가 넘어가자 술집으로 발을 돌린 나와 내 친구가 대화를 나눴다.

  "과학그리기 대회에 2015년 노량진이라고 써놓고, 독서실 책상 하나 그려놓고 스탠드 켜놓고 공부하는 모습 그려놓으면 어땠을까?"

  "디스토피아 그리기야?"

  "괜찮지 않어?"

  "야 그러면 정신병원 끌려간다. 끌려가는 건 아니라도 최소한 상담은 받는다."

  "아 뭐야, 리얼리즘을 선택한 죄로 끌려가야 해?"

  "아니 뭐, 2015년 같은 것도 좀 넣어주자고."

  "책상에 아이폰도 그려주고 PMP도 그려주면 되려나."

  "괜찮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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