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틀러스가 2009년에 발표한 앨범 Hospice는 줄거리가 있는 컨셉앨범이에요.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호스피스가 화자인데, 그가 여자 골수암환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자가 결국 죽는 그런 내용이에요. 첫 트랙이 Prologue고 10번째 트랙이자 마지막 트랙이 바로 이 Epilogue인데...처음에 환자는 오랜 투병으로 지치고 날카로워져 남자의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물건도 집어던지고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다 배신했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결국 어찌어찌 사랑에 빠져요. 어차피 죽을 몸이니 집에 가서 남은 생이라도 즐겁게 보내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여전히 몸이 너무 아프고...반짝이는 순간이 따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범 내내 주인공은 괴로워만 하거든요. 결국 8번 트랙 Wake에서 여자가 죽고, 9번 트랙에서 그때문에 또 괴로워하고, 마지막 트랙인 Epilogue에서는 시간이 그럭저럭 지났음에도 주인공은 여전히 연인의 꿈을 꾸죠. 꿈 속에서 여자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고, 화를 내고, 주인공을 할퀴고, 그러다 웃고, 울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죠.

이게 실화냐 아니냐 가지고 앤틀러스의 프론트맨인 피터 실버맨에게 많이들 물어본다고 하더라구요. 원래 예술가가 세계를 분석하려고 하면, 세계는 예술가를 정신분석하려 드니까요. 실버맨은 예전에 병원에서 오래 머문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 실화는 아닐 거 같고...그냥 뭐 거기서 보고 들은 게 있는 거겠죠?

곡 자체가 코드 몇 개와 어쿠스틱 스트러밍으로 이루어진 극히 단순한 곡인데, 곡 자체가 깔끔하진 않고 기타에 잡음 나는 거까지 굳이 숨기지 않고 들려줘요. 산뜻함보다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 같은데...뭐 일단 저는 좋아하구요. 앨범 전체로 보면 두번째 트랙인 Kettering같은 곡이 정말 신기하고 더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지만 Epilogue는 개인적으로 좀 특별한 노래에요. 군대 가기 전에도 좋아하긴 했는데, 군대 가서 기타로 거의 처음 친 곡 중 하나였어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그래서 즐겁게 놀기 위해서 기타를 쳤다기보다는 저 자신이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려고 쳤거든요. 굳이 이 곡이었던 이유는, 별 것 없고 스트러밍이 그냥 다운다운다운다운업이라서 쉬웠어요. 노래도 가성 부분만 빼면 쉽고...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치기 시작했는데 이젠 영원히 못 잊을 곡이 되어버렸네요.


2013.3.4.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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