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이란 말은 상처뿐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랍어로 '가족'이라고 말해도 알아듣고 엉엉 울 꼬맹이들이 열 명은 될 것이다. 꼬맹이는 돌아오지 않는 가족과 다시 오지 말았으면 하는 가족 때문에 엉엉 울 것이고, 나이가 먹으면 그저 침묵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존경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쉬운 일이 하나 있는데, 분노를 사는 것이다. 아이에게 하는 일에 목적을 담을 때(좋은 의도든 아니든 크게 상관없다.)마다 아이는 눈빛에 증오를 담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증오는 어느 순간 누그러진다. 그렇다고 뜬금 없이 존경의 눈빛을 보내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때부터 부모를 가여워 한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는 부모와 자신을 겹쳐 보게될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소설, 만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대안가족을 찾아 나섰다. 그렇지 않은 매체라곤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막장드라마만 남았다. 이제와서 대가족은 증강현실보다 거짓 같은 일이다. 지금의 가족은 상처로 가득해 비참하다. 그래서 다른 형태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찾는다고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상처를 한가득 안고 살아야 한다. 그 상처 때문에 치르는 대가는 때로 너무 크다. 그 관계 때문에 때로는 꿈마저 접어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 톰이 그렇다. 그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고, 그도 음악 속에서 자랐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가 어릴때 죽었고, 결국 악덕 부동산업자인 아버지의 일을 돕게 된다.

  악랄해질 마음만 먹는다면 돈을 버는 것은 일도 아니다. 톨레랑스만 믿고 들어온 프랑스어를 제대로 못하는 이민자들의 집에 쥐를 풀어넣고, 창문을 깨부수고 쫓아내 그 집을 다시 팔면 된다. 일이 끝나면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아버지에게 보고를 하러가면 된다. 놀 때는 클럽이나 술집에 찾아가 질펀 술을 마시거나 약을 하고 여자를 희롱하면 된다. 종종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한다. 즐거운가? 돈도 있고, 술도 있고, 약도 있고, 여자도 있고, 최소한 아버지는 살아있는데. 하지만 이런 삶에 무슨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톰을 이렇게 길렀기 때문이다. 밤에는 즐겁다가 해가 뜨면 허무할 날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가, 우연이 일어난다. 예전 어머니의 매니저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 매니저도 톰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성한 톰의 모습에 놀란 매니저가 제안했다. 얼마 후 피아노 주자를 뽑는데 오디션을 보는 것이 어떻겠니? 톰에게 드디어 목표가 생겼다. 무려 예술이고, 무려 음악이다.

  음악이란 것은 정말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어라곤 중국인 피아니스트 먀오 린에게 피아노를 배우는데, 그녀가 프랑스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함에도 둘은 피아노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뜻대로 곡이 쳐지지 않으면 톰은 신경질을 부리지만, 먀오는 이내 그를 다스리고 진정시켜 올바르게 치는 법을 가르쳐준다. 톰은 프랑스어를 말할 때도 남을 상처주고 갈라서게 하는 말 밖에 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정말 이럴때는 침묵이 금이다. 톰은 피아노와 함께 불합리한 뒷세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낮에는 창문을 부수고, 밤에는 다친 손으로 건반을 두들긴다.

  그러나 세계가 멸망해도 괜찮을 것 같은 새벽에도 어김없이 해는 뜨고, 기뻐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날도 언젠간 지나가서 희미해진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뒤통수를 망치로 쿵 때리는 듯한 충격을 주고, 무언가 극적으로 바뀔 것만 같지만 실제로 삶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것처럼 그런 일은 아주 소수에게나 종종 있는 일일 뿐이다. 예술로 극적으로 달라지는 삶은 대안가족만큼 찾기 어렵다. 그리고 톰은 그 소수가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피아노를 잡은 것을 이해 못하는 동료들과,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동료의 여자친구와, 점점 더 투정만 늘어나는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제일 문제였다. 아버지는 점점 아이가 되가고 있었다. 하는 일이 나쁜 짓인 만큼 귀엽지는 않았다. 투정이 늘고, 톰이 꿈을 쫓아가는 것을 관대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웃었다. 자신을 위해 자꾸 나쁜 일을 계속 하기를 원했다. 심지어 톰이 결국 일을 하게 하도록 한 대 맞고 오기도 하고. 여자친구를 새로 사귀고. 톰은 혐오감을 느끼고 분노하면서도 아버지의 일을 결국은 도와준다. 업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톰이 오디션을 보는 날 새벽 일을 해야한다며 동료들이 그를 끌고 가고, 잠을 설친 톰은 오디션을 장렬하게 망친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헤드셋을 끼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어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음악을 다시 시작한 탓은 아니지만, 음악을 다시 시작한 후에 생긴 일인 것은 맞다. 톰의 피아노 치는 몇 주는 예술의 무력함을 증명하는 몇 주였다.

  다만 음악은 그에게 소중히 할 것을 주었다. 음악으로도 언어 없이 소통을 할 수 있게된 그는 먀오의 매니저가 된다. 음악은 그에게 선택을 할 여지를 주었다. 원래 바닥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고민을 할 수 있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는 아버지의 원수 민스코프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손을 씼고 먀오의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간다. 아이가 다 되어 떼를 쓰다 죽은 아버지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다만 그 괴로움은 이제 선택할 권리가 있는 자의 괴로움이다.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