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정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고, 그 여러가지의 마디마디까지 다들 일리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탄압의 역사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민중 항쟁의 역사였으며, 동시에 민주화의 역사였으며, 독재자의 역사 혹은 좌절의 역사였다 말하더라도 지지해줄 근거가 충분히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에게 역사는 망각의 연속이었다. 이불에 지도 그린 기억 따위를 오래 가지고 있어서 좋을 것은 없고, 혹자는 망각은 인간의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사속에서 자주 망각의 호수에서 낚시하다 우연히 낚시바늘에 걸린 변사체같은 것을 낚아올리기도 했다. 아, 찜찜해라. 변사체가 대충 뭔지 짐작도 가는게 더욱 문제다. 아, 더 찜찜해라. 변사체의 사망 시점이 짐작이 가서 그 시기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줄도 안다. 아, 완벽히 찜찜해라. 이쯤 되면 변사체도 아니다. 사실 이 찜찜함은 실연을 잊는 망각 같은 것이 아니라, 많은 영도자들께서 권장하신 망각에서 건져 올렸기 때문에 온다. 그러니까, (물론 아주 최근의 사건들도 포함해서) 우리 현대사에서 잊혀진 것을 뒤지다보면 어느새 입에서 쓴맛이 난다. 중국에서 망각 끝에 건져올린 국민 영웅들의 이야기, 예를 들면 「집결호」나 「엽문」같은 맛은 없다.

  속을 박박 긋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공권력의 어설픈 행태와 이기심에 눈먼 개인의 행태는 「괴물」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감독 스스로가 공언한 바에 의하면 「마더」는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다. 봉준호가 어머니와 섹스의 특이한 조합에 대해 말하고, 영화가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 전문 국민 배우' 김혜자에게 광기를 요구하며, 특정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스탭롤에 '마더'라는 보편적인 두 글자만 올려놓은채 어머니의 모성에 반기를 던진다. 김혜자의 '마더'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일게다. 그리고 이 보편적인 어머니는 제일 마지막에 어떤 행동을 취하던가? 모자가 모두 살인자가 되었다. 혼자서만 살떨리게 슬프고 고독한 버스 안에서, 자신의 허벅지의 '망각점'에 침을 꽂고 보편적인 춤을 춘다.

  영화의 발단이 되는 도준이는 그 '망각'의 전문가다. 그는 꾸준하게 잊는다. 누가 자동차 백미러를 부수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해 덤태기를 쓴다. 결정적으로, 그는 살인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살인이 '바보'라 억제된 성적 욕구와 범마을적 병신취급의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그는 명백한 살인을 기억하지 못한다. 경찰들은 너무 오래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나머지, 진태도 아는 조사 우선 순위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오래전 '마더'가 도진과 같이 죽으려 했던 것도 둘 모두 망각하고 있었다. 이 완벽하게 망각으로 시작되어 망각으로 끝나는 구조는 우리의 역사를 닮아 있다. 사건이 터지고, 망각으로 덮으려고 한 다음에, 누군가는 분개하고, 어느 순간 다시 망각의 바다의 변사체가 되어버리는 그런 구조 말이다. 돈도 아닌 쌀을 받고 성매매를 한 소녀는 결국 잊혀질 것이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야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잊지 않은 몇몇은 바로 가해자다. 그러나 가해자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의 침묵은 모두의 망각이다. 성매매의 가해자였던 소년들이 입을 여는 것은 (사실 통쾌하긴 하지만) 폭력 아래서 뿐이다. 이제 또다른 가해자가 되버린 김혜자는 두가지나 침묵해야 한다. 쓰레기를 모아 팔던 할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숨겨야 하고, 도진 대신 범인으로 몰린 또다른 바보 종팔이를 변호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집이 잿더미 아래 사라졌듯이, 종팔이는 감옥 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사회는 어디로 거세되었는가? 괴물의 마지막에서 박강두를 석방하라며 한강변에서 시위를 벌였던 용감한 시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고급 승용차, '마더', 리어카가 동시에 서 있는 기묘한 구도에서, 우산을 반 값만 받던 마음씨 좋아보이던 리어카의 할아버지는 사실 또 다른 가해자였다. 의리 있어 보이던 도준의 양아치 친구 진태는 결국 '마더' 앞에 성적 우위를 보이며 군림하고 돈까지 뜯어내지 않던가? 겉보기에는 아주 작은 순간만은 정의롭게 보일지 몰라도, 이들은 모두 망각의 이름 안에 자신의 죄를 뭍는다. 

  다시 마지막 시퀀스 이야기를 하자. 마지막 장면 이후의 이야기까지 상상해보자. 그리고 처음 상황과 비교해보자. '마더'는 모든 것을 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더'는 여전히 작두로 약재를 썰고, 도준이는 여전히 바보이고, '마더'가 밥술을 떠먹여 줄것이다. 그들 가계의 빚은 여전할 것이다. 되려 늘어났을수도 있다. 진태는 맨하탄 마담의 딸과 계속 섹스를 할 것이다. '마더'의 돈으로 새로 마련한 때깔나는 차 안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과 모든 것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마더'의, 도준의, 진태의, 소년들의, 할머니의, 마을 주민들의, 경찰들의 개인적인 망각과, 그 모든 것이 합쳐진 총체적인 마음가짐은 모두의 마음에 죄책감 한 숫갈을 덜었을지 몰라도 돌이켜보면 여전히 비참하다. 마치 은막 밖의 우리들이 호숫가로 끌어올려진 시체를 보는 찝찝함처럼.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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