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과연 나쁜 놈이 오래 사는가? 욕 많이 먹을 수록 오래산다는 말도 있고, 그 실례들도 수없이 존재한다. 전두환은 오래 살았다. 이명박은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이 악의보다는 선의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착한 행실을 장려하고, 악한 행동은 처벌받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말들도 있다. 사필귀정. 일은 반드시 옳게 돌아간다. 인과응보. 저지른 만큼 업을 받는다. 사극을 보자. 악행을 저지르면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들은 기본적으로 초현실적인 힘에 기대고 있다. 즉 나쁜 놈들의 모토인 자급자족과는 크게 상반된다. 그렇다면 역시 삶을 위해서라면 날치기와 퍽치기를 일삼는 편이 좋을까? 그러나 나쁜 놈들의 자급자족이 얼마나 성공하는지, 또 그 중에서 몇 명이나 벼락을 맞아 죽는 지는 알 길이 없다. 사실 진짜 모두의 지탄을 받는 악당이 되는 거라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히스 레저의 조커에 감탄한 것이고.

  <인스턴트 늪>의 미키 사토시 감독은 언제나 주인공들에게 친절했고, 위의 말들을 충실히 지킨다. 미키 사토시의 영화에 마냥 나쁜 놈이라고 규정지을 만한 인물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주인공을 괴롭히는 세상의 비합리를 가장 비합리적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주인공 스즈메는 평범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러자 미키 사토시는 평범함을 모토로 살고 있는 스파이들을 그녀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인 라면 장인은 정말 특색이라고는 하나 없는, 인상에 전혀 남지 않는, 그래서 스즈메와 겹쳐보이는 평범한 라면을 만든다. 그런데 그는 영화의 마지막 쯤에 이것이 가장 맛있는 라면을 만드는 것보다 힘들다고 고백한다. 즉 미키 사토시가 스즈메를 위해 만들어준 세계는, 스즈메가 굳이 평범함을 벗어나기 위해 강박적으로 무엇 하나 할 필요 없이 특별해질 수 있는 세계였던 것이다.

  이는 <인스턴트 늪>에서도 마찬가지다. 비현실적이라 생각되는 것을 믿지 않는 패션지 편집장인 하나메는 직장을 관둔 이후, 키우던 토끼를 잃어버리며, 캇파를 보고 UFO를 봤다는 어머니마저 캇파 낚시를 하러 갔다가 쓰러지고 만다. 그러던 와중우연히 친아버지의 위치를 알게 되고, 그가 골동품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골동품 가게가 도라에몽의 주머니 같은 곳은 아니고, 오히려 야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나메는,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인생의 '텐션'이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가게를 차리기까지 한다.

  영화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메를 위한 세상을 준비해두었다. 하나메가 직접 가게를 차리기 전에 참고 삼아 들린 잘나가는 골동품점은 엄숙함이 가득 들어차 불쾌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아마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그 골동품점을 조롱할 것이다. 영화 마지막 쯤 그녀는 먼 곳에 있던 가문의 창고에 있던 흙을 집 근처까지 가져와 물을 뿌려가며 '인스턴트 늪'을 만들었다. 아무 보상도 없는, 그저 배신감과 오기로 저지른 일이었음에도 늪에서 용이 튀어오르는 순간 이게 그저 삽질이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그녀가 좋아하던 분위기 있는 카메라맨은 직장 후배와 연분이 났지만 원형탈모가 생겼다. 마치 사진에 낙서를 해놓는 유치하고 소심한 복수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속은 후련하다.

  하지만 연못에 용이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만약 영화에서 어머니는 캇파도 UFO도 본 적이 없고, 하나메가 골동품 가게를 차린 후 잘 나가다가, 몇 번의 경영적 위기를 겪고 그래도 결과적으로 잘 나갔다면 어땠을까? 사실 용이 튀어나오거나 캇파가 나오는,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보다는(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거나) 하나메의 성공이 더 가능성이 있지만, 여전히 희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는 일부로 눈물을 뽑아내는 영화들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작위성이다.

  그래서 미키 사토시 감독은 아예 없을만한 일을 벌여서 그런 함정을 피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없을 거라고, 따라서 우리의 현실을 되려 비참하게 비춘다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게 만든다. 어차피 삶에서 이루는 대부분의 좋은 일은 UFO나 도시전설처럼 별 근거도 없는 의지나 희망, 상상, 그리고 선의가 토대가 되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악당들은 뒷골목에서 상상력 없이, 별일 없이 살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하나메는 가쓰에게 힘찬 목소리로 말하는데, 아마 이게 이 영화가 어설픈 CG나마 용을 만들어서까지 사람들을 위로하는 까닭일 것이다. "알고 있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대단한 일도 아니고, 사람도 울고 있는 시간보다 웃고 있는 시간이 더 길고, 믿기 힘든 것도 보이는 거고, 하룻밤 자고 나면 대부분의 일들은 잊어버리게 된단 말야! 어쨌거나 수도꼭지를 틀어서, 그렇게 해서 그 거짓말과 고집들로 덮여 굳혀져버린 시시한 일상들을 전부 씻어내버리는 거야!"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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