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장래희망에 적어야 하는 것은 '직업'이다. 장래희망 적어오라는 가정 통신문은 곧 진로 조사 설문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농촌의 가난한 아이가 그 칸에 "수의사"라고 적든, 중산층 가족의 아들이 "CEO"라고 적든 여전히 직업을 적어야 한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나 "3LDK" 같은 가족계획이나, "세기말 구세주"나 "해적왕" 따위의 만화같은 계획, "마이클 잭슨"이나 "호나우지뉴" 같은 어떻게보면 꽤 구체적인 것도 같은 추상적인 대답을 적어가면 아마 "다시 써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아이들의 순수성을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뉴스 영상이 나오고, 자료 화면이 나온다. 모자이크 된 아이나 비치고, 기자가 묻는다. "꿈이 뭐니?"라고 대답했을때 "S그룹 CEO가 되어서 수십억대 부자가 되는 것이에요."라고 말하면 세속적인 것이고, "못사는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요."하면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다. 아이들은 순수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순수하게 자라지 못했던 어른들은 여전히 직업을 가진다. 대부분 수요공급 원칙에 철저한 것이다. 그 직업에는 아이돌 가수라는 것도 있다. 그들의 이미지가 곧 그들의 생명이다. 사실 노래 실력 같은 것은 아이돌에게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좋으면 좋은거고, 나쁘면 마는거고. 아이돌 가수가 무너지는 것은 그들이 쌓아놓은 이미지가 무너질 때가 많다. 담배 하나 물었던게 찍히면 끝장이고, 입모양도 늘 조심해야 한다. '이발'이든 '씨발'이든 입모양은 비슷하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레이'와 '켄', 그리고 '해리'의 직업인 킬러도 법에 어긋난다는 점을 빼고는 직업이라고 할 만하다. 킬러라고 해도 사생활은 다들 있다. 만사를 찌질찌질 투덜대는 레이는 마약하고 섹스하는게 일이다. 레이의 선배 킬러인 켄은 나름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러니까 중세의 분위기가 온전한 보전된 아름다운 도시 브뤼주에서 관광을 할 정도는 된다. 킬러들은 나름 직업 윤리까지 있다. 둘의 보스인 해리가 정한 것이다. "아이는 죽이면 안된다."

  그리고 레이는 실수로 아이를 죽이고 만다. 위선자인 주교를 죽이는 와중에, 총알이 그만 표적을 관통하여 아이의 머리에 꽂히고 말았다. 선배 킬러 켄과, 패닉에 빠진 레이에게 바로 해리가 지령을 내린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당장 브뤼주로 튀어!"

  이 영화의 대부분은 따로 세트장을 만들지 않고 브뤼주에서 실제로 찍었다고 한다. 브뤼주는 지금까지 스크린에 비친 어느 도시랑 비교해도 중세의 풍경이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성이 남아있고, 종탑이 남아있고, 가택이 남아있고, 운하와 다리가 남아있다. DVD의 삭제장면을 살펴보면 말을 타고 도시를 돌아다녀도 썩 위화감이 없어보인다. 놀랍게도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서 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를 찍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내뱉는 단어의 3할 정도인 'Fucking'인 해리의 말을 빌리자면 브뤼주는 'Fucking 동화 속 Fucking 나라처럼 고딕 양식의 Fucking 아름다운 Fucking 도시'다. 관광을 그럭저럭 즐기고 있는 켄에게도 해리는 재차 요정이 있을것만 같은 도시가 아니냐고 캐묻는다. 자신이 7살 때 그 도시에 가봤다는 것도 알려주며(그리고 그 시절 해리는 당연히 킬러가 아니였을 것이다.), 꼭 다시 가고 싶다고. 그리고 해리는 레이도 그 도시를 즐기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아이를 죽여버린 레이는 죽어야 하니까 마지막 선물로 보내준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고.

  해리가 시원하게 켄에게 전화로 지령을 주자마자 켄의 떫은 표정이 장면 전환과 같이 사라지고, 이제 정말 브뤼주를 지겨워하다가, 우연히 헌팅에 성공한 레이의 모습이 나온다. 레이는 이제 막 여자와 섹스를 할 참이고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갑자기 여자의 남자친구가 들이닥친다. 남자친구는 총을 들이밀고, 레이는 가까스로 총을 뺏고 둘을 쫓아낸다. 그리고 집을 뒤지다가 발견한다. 마약 한 더미. 여보세요 해리, 'Fucking 동화 속의 Fucking 요정'들이 살 것만 같다면서요? 순전히 그의 어린 시절에 본 순진한 눈에 박힌 이미지에서만 따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는 그 이미지라는 것이 아주 빈번하고 노골적으로 출몰한다. 극 내에서 난쟁이가 주인공인 오마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심지어 난쟁이도 따지고보면 이미지의 집합체인 '꿈' 장면을 찍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애초에 도시를 고른 이유가 해리가 도시에 대해 가진 이미지 때문이었다. 극중 인물들이 미술관의 그림들을 관람하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대주교를 죽이는 레이의 모습과 흡사한 것도 있다. 레이와 켄은 미술관을 나오고 벤치에 앉아 이 직업에 대한 대화를 하는데 이게 또 재밌다. 너무나 상식적으로 본인들의 죄악을 부끄러워 하고 슬퍼하는데, 그 상식이라는게 조금 일반과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켄이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을 후회하는데, 레이가 그 상대가 잘만 쓰면 흉기가 되는 유리병을 들고 자기 방어를 했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라 위로를 하는 것이다. 영화 내내 이런 블랙 유머가 숨 막히게 깔려 있다.

  켄이 아이를 죽인 후 사랑에 속아 훌쩍거리는 레이의 모습에서, 오히려 레이가 순수하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킬러의 규칙과,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 브뤼주를 넘어 레이를 도시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죽이지 마라."와 "브뤼주는 Fucking 아름다운 도시다."라는 이미지를 가진 남자 해리가 드디어 브뤼주에 상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브뤼주는 과연 동화 같기만 한 도시였던가? 마약을 하는 까칠한 난쟁이는 외형은 어린아이를 닮지 않았던가?

  장르가 장르인만큼, 벤치에서의 고해성사는 어둡게 웃기는 장면이 되어버렸지만 그 순간 자체는 소중하다. 브뤼주가 점점 영화 처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죽인" 레이가 반성을 하고 있었고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수함과 가능성의 상징을 쏴 죽였는데도 여전히 레이는 순수함과 가능성이 있어보이고, 켄이 발견한 것이 그런 부분이다. 그러나 그가 정한 이미지에 경도되어 있는 해리가 그 모든 반대되는 실체와 맞닥트린다면? 그는 총을 잡고 길을 달리며 스스로 파멸한다.

  영화의 미술관 안에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 아름다운 거리와 대비될 정도로(킬러인 레이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잔인하고 풍자적인데, 마치 밖의 풍경과 대비되는 안의 본질같기도 한 장면이다. 인간의 가면을 부수고 본성을 찾으려 한 수많은 심리학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지가 끝나는 순간 같이 끝나지 않는다. 이미지보다 본질을 보려고 한 켄이 죽고, 이미지에 도취되어 스스로 생각하는 명예를 위해 해리가 파멸한 후, 사경을 해메는 레이의 반드시 사죄하겠다는 독백이 영화가 내놓은 결론일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부서져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다울 수 있다. 사람은 찬란하지는 않아도 올바르게 갈 수는 있다. 아름다운 도시, 훌륭한 미술 작품을 닮은 듯한 연출, 이미지와 본질에 대한 성찰, 숨이 막히는 블랙 유머, 단 하나도 공짜로 되는 법 없는 훌륭한 각본이 모두 뭉쳐 있는 수작이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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