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요즘처럼 멍청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예를 들자면, 불과 10년 전만 해도 논술학원에서 복거일 같은 사람들이 강력하게 주장한 영어공용화 같은 주제로 글을 쓰고 토론을 했다. 당시 나는 구체적인 논거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중학생의 머리를 쥐어짜며 논리를 만들고 또 남의 논리를 가져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에 걸리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 홍해 앞에 선 모세처럼 앞장서서 영어공용화를 주장했던 사람들도 이게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결국 미래의 담지자는 우리이며 시간이 증명할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10년이 지나고 보니 어떤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픽션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그리고 기계의 승률이 높아지면서!), 외국어 학습도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언어장벽이, 특히 영어공용화 수준의 얕은 정책으로 해결될 언어장벽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얼마나 허탈한 일인지, 영어공용화를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 근거 7번에서 8번 정도로 기계번역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간곡한 희망을 담아 말했지만,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미래를 제대로 예측한 사람이 소수 있긴 있을 것이다. 그때도 구글에는 기계번역 프로젝트 담당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영어공용화 논쟁 같은 걸 알았다면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거기서 한민족의 미래 같은 레토릭이 오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더 우스워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마당에 한민족의 미래가 문제인가? 인류의 미래부터 걱정해야 한다.

이 와중에도 독어독문학과보다는 꽤 오래 버틸 종류의 일이 있긴 하다는 건 알겠다. 영어공용화처럼 멍청한 예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세돌 같은 천재와 바둑으로 맞짱을 뜰 수는 있어도 이족직립보행은 18개월 영아들보다 힘들어하는 기계의 발전방향을 보니 대충 짐작은 간다. 방학 내내 교내 출판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책의 잘못 인쇄된 부분에 종이를 잘라 붙이거나 멍청한 지시 때문에 무거운 박스를 여기 옮기고 저기 옮겼다가 또 여기로 옮기는, 우리가 흔히 기계적이라고 부르는 일 중에서도 특히 고역스러운 일들은 막상 기계로 대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노래방 책에 A4지 끼우는 일도 사람이 계속 할 것 같다. 회식자리에서 할배들 기분 맞춰주고 잔소리 듣는 고역도 결코 기계가 대체하지 못할 일이다. 여기에는 물론 할배들과 우리가 기계로 대체되지 않았다는 전제가 붙는다.

사람을 돌보는 일도 많은 부분 기계의 도움을 받긴 하겠지만 살아남긴 할 것 같다. 간호사와, 요양보호사처럼 간호사보다 전문성과 직업안정성이 떨어지는 유사한 직업들 이야기다. 기계가 중풍 걸린 환자를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옮기는 일이나 대소변을 받는 일을 쉽고 저렴하게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 싶다.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야 사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금방 해결될 것이다. 아직은 기계가 인간을 배신할 줄 모르고,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나도 교직원보다는 기계와 일하고 싶었다. 복거일 같은 사람들의 입을 닫아준 기계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하고 가장 먼 것처럼 보이는 예술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같다. 지금까지도 악조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딥 블루’가 체스 그랜드마스터들의 신의 한 수를 직관에서 계산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던 것처럼, 기계로부터 중대한 도전을 맞이할 것이다. 감각과 이성, 감정과 이성은 얼마나 다를까 혹은 얼마나 유사할까? 데이터베이스에서 사람들이 좋다는 것들 다 끌어 모아서 만들면 좋은 게 완성되지 않을까? 창조인가 반복인가?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충무로에서는 감각과 이성이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고 호소하는, (높은 확률로 늙은 남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영화를 제작한 후, 명절에 개봉관을 2,000개쯤 잡아서 개봉할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요약하자면 좀 하찮은 일들이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일에 귀천이 어디 있냐는 뻔한 문구가 반박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물론 일에 귀천은 없을 수 있겠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있고, 인소싱과 아웃소싱도 있으며, 고임금과 저임금도 있다. 주로 후자에 속하는 일들, 시장이 하찮다고 말하는 일들, 즉 기계로 대체하기에는 까다로우면서도, 인건비는 저렴한 일들이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기계를 다루는 일들로 메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얼마나 생길 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확실한 건 학부 4년 독어독문학 배우고 대학원 가서도 여전히 기계와 먼 일이자 기계에게 대체될 게 유력할 일을 할 나의 미래는 아닌 것 같다.

뉴스를 보니 요즘 아파트마다 경비원을 CCTV로 대체하여 원가를 절감하느니 마니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단다. 경비원들 측에서 만약에 자신들을 CCTV로 대체한다면, 아이가 차에 치이는 상황 등 긴급한 행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행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옳은 말인데, 이 상황에서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떠나 많은 직업인들이 같은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효용이 있고 법리적으로 권리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피곤하고 지치는 상황 말이다. 이미 대학의 인문학자들이 수 년 전부터 해오던 일들이 모두에게 닥칠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 그냥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한다는 말이 담대하게 들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 며칠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데, 마침 필리버스터를 보는데 전순옥 의원이 그의 오빠였던 전태일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딴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구호였고, 아직까지는 기계처럼 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이제 조만간 시장에서 기계와의 차별화를 위한 구호가 될지도 모른다. 기계와 다른 인간만의 장점이 있다고. 사실 기계에게 직접 하는 말은 아니다. 기계심장을 가진 인간들에게 하는 말이 될 것이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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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보다보니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삼국지보다도 수백 년 더 앞선 이야기다.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에 백기라는 장군이 있었다. 백기는 중국사의 수많은 무장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장인데, 원체 사람 목숨이 벌레 목숨보다 못한 시대이니, 그 시대에 명장이라 함은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얘기다...사실 많이 죽인 정도가 아니다. 백기는 학살자다. 조나라 장평에서 백기가 이끄는 진나라 군은 조괄이 이끄는 조나라의 대군을 보급로를 끊고 말려 죽이는 전술로 대파하고, 결국 조괄이 죽자 조나라의 병사 삼십만 명은 진나라에게 항복한다. 하지만 백기는 진나라 군이 가진 군량으로 포로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포로를 풀어주면 다시 조나라의 전력이 될까봐 두려워한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엽기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포로 삼십만 명을 전부 생매장해버린 것이다. 이것 말고도 그는 수십만 명을 더 죽였고, 사서에 따르면 도합 백오십 만을 죽였단다. 적벽대전 때 죽었다는 조조의 백만 군사보다 많다. 중국식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치다.


전장의 도살자 백기도 사람이라 결국 죽는데, 전장에서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모함을 당해 왕으로부터 자살을 명받는다. 고대 중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형 중에서는 그나마 곱게 보내주는 형일 것이다. 어쨌든 자결하기 직전에 백기가 유언을 남기는데, 이게 참 인상 깊고 어떻게 보면 황당하다. 그에게 정말 최소한의 윤리의식은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전투에서 조나라 병사 수십 만 명을 구덩이에 파묻어 버리지 않았던가?” 세계사에 훌륭한 장군은 많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죽으면서 저런 종류의 말을 한 적은 없다. (물론 그 대부분이 모함을 받아 죽게 된 상황에 처하지 않긴 했다.) 특히 중국 고대사 무장들은 실패할 때마다 대개 하늘과 운명 탓을 한다. 그런데 수천년 중국사 그 어느 때보다 사람 잘 죽이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에서조차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많이 죽였던 자였던 백기의 입에서 운명론을 부인하면서 진솔한 반성이 나올 줄이야.


왜 뜬금없이 백기와 윤리의식이냐면...삼국지에서 유일하게 적군을 죽였다고 반성하는 인물이 만화의 주인공인 제갈량이기 때문이다. 그는 호로곡에서 올돌골이 이끄는 등갑군 오만 명을 태워 죽이는데, 그 광경을 보면서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니 자신은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눈물을 흘린다. 물론 연의에만 있는 이야기이니 허구이기는 하다만, 어쨌든 그 누구도 죽은 병사에게 사과하지 않고 그것을 비난하지도 않는 삼국지연의에서, 전반적으로 가볍게 묘사되는 남만원정에서, 하필 주인공격인 제갈량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게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이질적이다.


삼국지에서 용감하고 능력 좋은 사람은 참 많다. 정말 많다. 이토록 짧은 시기에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많이 나올 수 있나 싶다. 요즘 사업가들과 정치인들은 끽해야 감옥이지만, 삼국지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목숨을 건다. 도매금으로 묶여서 무시당하는 간옹, 손건, 미축만 개별적으로 뜯어봐도 대단한 인물들이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유비 밑에서 죽을 위기를 수십 번 넘기며 종군한 간옹이 그나마 가장 덜 대단한 사람이다. 객장으로 떠돌던 유비에게 전재산을 투자하고 따라다닌 갑부 미축은 어떻고, 또 그 빈털털이 유비를 위해 몇 번이나 국경을 넘나들며 군벌들과 목숨을 걸고 협상을 벌인 손건도 참 대단하다. 주역급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명장들이 전공을 위해 수만의 병사를 들여 남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징용된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목숨을 안 거는 것도 아니다.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튀는 인물이 있다. 수만의 백성을 끌고 후퇴하느라 스스로도 죽을 뻔한 유비가 백성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백기와 반대로 너무 많은 포로를 먹여 살리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 관우가 악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그런데 저 뛰어난 인물들이 뭘 위해 저렇게 목숨을 걸고 활약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전쟁을 종식시켜 평화를 찾겠다면 차라리 다들 평화 합의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의 때문일 것일까? 아니면 대의라는 이름의 상승욕구였을까? 주군에 대한 충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우리의 시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의식구조가 있었던 것일까?


중국고전이나 철학서 같은 건 거의 다 처세술과 그 중에서도 리더십의 관점으로 읽히고, 삼국지도 그런 경향이 큰데, 특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중국 얘기하면 정말 이런 관점으로만 얘기한다. 난세의 헐겁디 헐거운 윤리 기준으로도 비판을 많이 받은 조조를 리더로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흐름도 저런 관점에 힘입은 것이다. 앞서 나온 백기만 해도 그렇다. 방금 전에 백기를 구글에 쳐봤는데, 깜짝 놀란 게 교훈이라고 적힌 게 백기에게 당한 조괄 같이 책만 파고 실전경험이 없는 사람을 쓰면 안 된다는 글이 거의 다였다. 실제 역사가 아닌 사실을 굳이 껴 넣어서 제갈량에게 반성을 시킨 나관중만한 의식조차 없다.


이 만화가 흥미로운 게 바로 이 지점인데, 유일하게 윤리적인 틈을 보이는 제갈량과, 순욱 곽가 가후와 같은 모사들을 여자로 만들어 그들을 더 난감한 위치에 던져놓았다. 작중에서 책사들이 여자로서 겪는 어려움은 현대사회를 삼국시대로 단순히 치환한 것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능글맞게 넘어간다. 오히려 그들이 누군가를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할 때가 흥미롭다. 책략 자체는 어차피 삼국지에서 보던 것이라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표출되는 고민들은 새롭다. 가령 과격한 성대결을 지향하는 곽가와 점진적인 성향의 순욱이 맞부딪히는 장면, 강직한 관우와 찍어누르려는 곽가... 같은 건 기존 삼국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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