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40년대-컬트 히어로: 조 머서

1940년대 말, 아스날의 선수진은 노장, 야심찬 유망주, 전쟁 영웅, 그리고 컬트 히어로들이 섞인 활기넘치는 팀이었다. 2년여 동안, 이제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조지 메일과 클리프 바스틴은 아스날 팬들에게 영광스러웠던 30년대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선수 경력의 상당 부분이 전쟁 때문에 날아간 레지 루이스와 로리 스콧은 울분과 배고픔을 토하는 심정으로 경기했다. (아스날을 거쳐간 선수 중 '제 2의 알렉스 제임스에 가장 근접했던) 지미 로지는 지속적으로 골을 넣거나 도움을 올렸다. 전시에 비행 중대장으로 훌륭한 활약을 펼쳐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았던 톰 휘태커가 이제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당시 팀의 여러 선수들이 컬트 히어로라고 불릴만 했다. 큰바위 얼굴의 남자 로니 루크(레지 루이스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깡패인 줄 알았다니까. 레지 크레이를 쏙 빼다닮았지. 뭐 사실 그만한 순둥이가 따로 없었지만.")도 후보로 충분했다. 그 6피트가 넘는 거인이 공을 침착하게 몰고 나가면, 수비수들 말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아스날에서 12년을 머무르는 동안 단 59번 출장한 브릴크림을 늘 바르고 다녔던 데니스 콤프턴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로리 스콧이 회상했다. "데니스는 거의 경기장에 나가지 못 했지만, 컵 결승이라든지, 중요한 경기같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자리에 있었습니다. 데니스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해내면, 그가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지요."

  의사면허가 있었던 케빈 오플라나건(Kevin O'Flanagan)도 제외할 수는 없다. 레지 루이스가 말했다. "케빈은 모든 이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존재였어, 심지어는 그 데니스 콤프턴까지 말야. 그가 학교를 다닐 때는 아일랜드 육상 챔피언이었어. 그리고 자신이 럭비를 잘하는지, 축구를 잘하는지 감이 안 잡혀서 그림 속의 떡을 아예 꺼내 먹으셨지. 둘 다 해버렸거든. 한 주 동안은 아스날 경기를 뛰다가, 다음 주에는 아일랜드 육상 팀에서 경기를 했어.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가 골프의 천재라는 것을 알고 말았지만, 거기까지 투자할 시간은 별로 없었지. 게다가 의사였기도 했지, 믿을 수 있겠어?" 하지만 그 시절 관중들이 정녕 사랑했던 선수는 조 머서(Joe Mercer)다. 총잡이들이 강등 순위권 까지 가는 내리막을 겪고 나서 1946년 11월에 영입된 후, 머서의 안정적인 수비력은 아스날을 시즌이 끝날무렵 12위까지 끌어올렸다.

  1946년 11월에 조지 앨리슨이 9,000 파운드로 그를 영입했을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미봉책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선수였다. 이미 서른 둘이었고, 에버튼과 새 계약 때문에 논쟁 중이었는데다가, 월러시에서 번창하고 있는 식료품 가게가 있어 이제 축구계에서 완전히 은퇴할 것처럼만 보였다. 조지 앨리슨은 여러가지 양보를 하며 겨우 그를 설득시켰다. 머서는 리버풀에 머무르며 주중에는 안필드에서 훈련을 하고 경기가 있는 금요일마다 런던이나 원정 경기 장소로 이동하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로리 스콧이 회상했다. "조는 정말 기민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이런 것들을 버텨낸다면, 은퇴한 후 경제적으로 넉넉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가 축구를 관두는 것이 훨씬 금전적으로 이득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아스날에 온 까닭은, 그가 축구를 사랑했고, 아스날 같은 팀에서 뛰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조지 메일은 충분히 수긍이 갈 정도로 (20년 정도 먼저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하이버리에 와서도 여전히 선더랜드에 창업한 남성 양복점을 운영했던) 그의 친구 찰리 부찬과 사람 좋았던 조를 비교했다. "머서는 당시 아스날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40년대 말의 페인트칠이 필요했던 이스트 스탠드처럼 낡아 보였지만, 여전히 수준이 있었습니다."

  에버튼에서 온 그는 아스날의 라커룸에 즉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레지 루이스가 회상했다. "그가 온 첫 날, 그 특유의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어. 뻐드렁니의 표본이었지.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가 라커룸을 쭉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을 텐데도 이미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푸근했지. 바로 라커룸에서 한 바퀴 쭉 돌면서 한소리 하더군. 일단 가장 먼저 흥분한 로니 루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어. '야채장수가 여기서 뭐한데요?' 모두 자빠졌어. 심지어는 조지 앨리슨도 놀렸어. '조는 주말 경기를 위해 금요일날 팀에 합류할 것이라네, 일주일 내내 훈련하기에는 숨 넘어갈까봐 걱정되서.' 다시, 모두 웃느라 숨이 넘어갈 뻔 했는데 갑자기 우리의 웃음이 싹 사라지게 하는 소리가 들렸어. 조가 상처를 입은 척 하더니 말했거든. '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다면, 제가 가져온 과자는 저 혼자 다 먹어야겠군요.' 조가 간식을  가지고 온 거야. 이제 과자 배급이 시작되었지. 괜찮은 첫 만남이지만, 더 중요한것은, 경기장 위에서도 조가 우리의 신뢰를 받았다는 거야. 살짝 굽은 다리와 우둘투둘한 무릎을 가진 사람이었어. 거의 뛰지를 않았는데, 내 생각에는 발 자체가 느렸던걸꺼야. 하지만 수비진을 조직하고 지휘하는데 능숙했어. 몸을 날리지 않고도 어떻게 공을 뺏는지 잘 알았다는 점에서 보비 무어와 비슷하기도 했지. 위대한 수비수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잖아, 그리고 조가 바로 그 위대한 수비수 중 하나였어."

  조지 앨리슨과 머서는 처음에 일 년짜리 계약을 체결했지만, 머서가 하이버리를 떠난 것은 결국 7년 후였다. 로리 스콧이 설명했다. "조는 거의 마흔 가까이 뛰었습니다. 당시에는 없다시피 한 일이었어요, 틈만 보였다 하면 공격수들이 부딛혀 들어오던 시절인데다가, 당시 조의 다리가 이미 심하게 망가져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관절에 온 힘을 쏟아야 공이 튀기는 그 시절의 공들 때문에 더 힘들었을텐데, 그저 놀랍죠. 매주 토요일이면 합류하여 아스날 주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했어요."

  1947-48 시즌 시작한 후 17경기 무패에 힘입어 총잡이들은 전후 첫 우승 타이틀을 향한 여정을 순조롭게 이어나간다. 최후의 희생양 그림즈비 타운이 시즌 마지막 경기 때문에 원정을 왔을 때 하이버리는 루크와 루이스의 골에 힘입어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아스날 팬 짐 베인스가 회상했다. "내가 하이버리에서 본 경기 중 가장 황당한 경기였지. 아스날은 그림즈비를 8-0으로 때려눕혔고, 그림즈비는 그저 형편없었지. 로니 루크가 네 골을 넣었고, 아스날이 끝날 무렵 페널티 킥을 얻었어. 나는 런드리 엔드에 있었는데, 선수들은 누가 공을 찰지 아웅다웅했지. 지미 로지가 루크의 품에서 공을 뺏고 기세등등하게 그의 귀에다가 소리를 지르더군,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넣을만큼 넣었잖아 자식아, 이젠 내 차례라고.' 그때 조 머서가 걸어왔어. 아스날에 온 이후 단 한 골도 못 넣었어. 주장이라서 페널티를 차려고 했지. 다른 선수들이 제발 좀 오지 말라고 하는 모습을 보였어. 관중들은 외쳤지. '조가 차, 조가 차.' 하지만 로지가 어찌어찌 차서 넣었지. 머서는 어깨를 으쓱하고 우리 쪽을 보고 웃어댔어. 경기장 둘러 트로피를 들고 행진할 때는 아주 입이 귀에 걸렸지. 팬들과 선수들이 다같이 쭉 돌았지. 아름다운 날이었어."

  그림즈비 전은 메일의 빛나는 축구 경력의 마지막 날이었기도 하다.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고, 아스날 팬들이 제가 은퇴한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트로피를 품에 안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은 꽤 괜찮은 마무리겠죠?"

  머서는 총잡이들과 같이 몇 번 더 리그 타이틀을 손에 넣었고, 1950년에는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승리하여 FA컵까지 손에 넣는다. 1954년, 그의 마지막 경기도 진정 머서다웠다. 리버풀과의 홈 경기에서 팀 동료였던 조 웨이드하고 세게 부딛힌 후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머서는 이것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면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관중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레지 루이스가 말했다.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스스로를 어떻게 다뤄야 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 사람이었어. 그리고 늘 미소를 지은 채 뛰는 법도. 그가 은퇴하고나서 아스날이 난항을 겪은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야."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옆집 골리기(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H 범스-이건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구-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통치의 종말-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노스뱅크여 안녕-옆집 골리기(2)-개불알?-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 특급-심장 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옆집 골리기(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옆집 골리기(4)-고백:변호사, 암표 장수, 관리인, 수위-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재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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