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70년대-컬트 히어로: 테리 만시니

스날 팬들이 1970년대 초에 수비수들에게 갖은 불만을 쏟아냈다고 말하는 것은 삼가는게 좋다. 팬은 피터 심슨에게 실력을 인정했고, 프랭크 맥린톡은 늘 뜨겁게 아꼈다. 그리고 제프 블로클리가 있었는데…. 아스날은 그를 버밍엄 시티에서 200,000파운드의 이적료로 영입하였다. 6피트 3인치의 남자 블로클리는 들어오자 바로 존재감을 뽑냈다. 이적한지 겨우 이틀만에 그의 경력 사상 유일하게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블로클리는 얼마전 33살을 맞이한 맥린톡의 장기적 대체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출신의 블로클리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르게 스쿼드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맥린톡의 자리를 차지한지 겨우 2주만에, 블로클리는 하이버리 관중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블로클리의 전 동료였던 선수가 익명으로 말했다. "블로클리는 진짜 쓰레기였어. 그토록 쓸모없는 수비수도 드물었지. 우리 선수 중 몇몇은 버티 미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다니까. '버트, 이건 병신이 따로 없잖아요. 프랭크를 돌려주세요.' 하지만 으레 그렇듯이, 버트는 고집스럽게 흘려보냈고 우리는 이 장애물과 2년을 함께해야 했고 그 사이에 프랭크는 QPR로 가더군. 이상한 일이야. 하이버리 관중들이 존 새멀스에게 했던 것처럼 블로클리에게 야유를 퍼붓기를 바랐지. 그런데 이상하게 블로클리한테는 참 친절하게 굴더라구. 관중들이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2년이 지나고, 완고한 버티 미마저 지쳐 블로클리를 레스터 시티로 보낸다. 팀의 수비진에 큰 구멍이 생겼다. 유망주였던 데이비드 오리어리와 브렌던 뱃슨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수비진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경험있는 선수가 필요하였다. 미는 QPR의 32살 선수, 대머리 테리 만시니(Terry Mancini)를 데려오기로 결정한다. 겉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미가 이성을 잃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만시니가 직접 이야기했다. "아스날 팬들이 제 얼굴을 보고 썩 좋아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러니까, 버트가 프랭크를 30대 초반에 내보내고는 그보다 조금 나이를 덜 먹은 선수로 바꿨으니까요. 클럽이 위기였어요. 제가 1974년 1월에 도착했는데, 밑에서 세번째였습니다. 아스날이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처음일 것이에요. 저 스스로도 잘 알다시피, 제가 세계 최고의 선수도 아니고, 보통 상황이라면 제가 결코 아스날에 뛸 일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 정도의 팀이 문을 두드리면, 당연히 이렇게 말해야죠. 당장 가겠습니다! 팬들은 분명 선더랜드의 데이브 왓슨이 오길 기대했겠지만, 클럽 입장에서 왓슨은 데이비드 오리어리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나 봅니다. 저는 미봉책일 뿐이죠. 관중들은 제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찌만, 그런 점이 오히려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이버리 근처의 베일리 펍의 아스날 팬들은 만시니의 이름이 언급만 되어도 엄지를 치켜올리고 테이블을 쿵 친다. 스티브 애쉬포드가 열광했다. "대단했지요.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시니가 말했다. "저는 보통의 아스날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없습니다. 하지만 QPR에서의 마지막 시즌에서, 프랭크 맥린톡에게 위치선정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또한 저는 포기할 줄 모르는 선수였습니다. 버티 미는 제가 하부리그에서 많은 해를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결코 강등당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수도 하지 않았다는 걸요. 아스날은 70년대 중반에 그런 선수가 필요했습니다. 정말 강등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으니까요."

  만시니의 열정만이 그를 컬트 히어로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필드 밖의 생활로도 유명했다. 1970년대 초, 그는 '클랜'의 멤버였다. 앨런 볼, 앨런 허드슨, 말콤 맥도날드 등이 포함된 젊은 축구선수 집단이었다. 클랜은 점점 늘어나는 축구 선수들의 경제적 활동 기회를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만시니가 말했다. "허디[각주:1]랑 종종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사진사였던 테리 오닐이 우리 사진을 몇 장 찍어 대중에 공개했어요. 양복을 입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진을요. 이상한 것은,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담배라는 것을 피워 본 적이 없는데,
사진에서는 시가를 물고 있던데요."

  만시니의 아일랜드 국가대표 데뷔전 이야기도 있다. 폴란드와의 홈 경기였다. 조부모의 아일랜드 혈동 덕에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있었지만, 그는 런던 사투리로 말하는 남자였다. 두 팀이 한 줄로 서 국가가 연주될 때, 만시니가 폴란드 선수들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있다. "야, 쟤네들 국가야."라며 그의 QPR 시절 동료였던 돈 섕크스가 지적했다고 한다. 사실일까, 아니면 70년대의 도시 전설일 뿐일까? 만시니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한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제가 너무 많이 긴장해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했나봐요."

  스티브 애쉬포드와 친구들은 만시니가 '아스날 선수가 되기 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시니의 형제들은 런던의 복싱계와 연관되어 있었고, 만시니와 관중들의 의사소통도 그를 하이버리에서 사랑받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스티브 애쉬포드가 말했다. "그 시절, 오늘날과 달리 아스날 선수들은 관중들에게 박수를 쳐주지 않았어요. 만시니는 달랐지요. 아스날에 온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우리 모두 '엔리, 엔리'라며 그에게 환호성을 날렸죠. <핑크 팬더>의 주제곡을 쓴 헨리 만시니의 이름에서 따온 거에요. 그러면 만시니는 자신의 대머리를 손으로 비비며 손바닥으로 툭툭 쳤죠. 관중들에게 몇 번 말을 걸던 것도 기억 나네요. 축구를 못 했던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선수였어요. 하지만 적응을 했다는게 가장 중요하죠.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던 팀 상황에서 꼭 필요한 정신 자세였죠. 적응하거나 망하거나."

  하이버리에서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두 경기가 있다. 먼저 BBC의 <70년대의 명경기> 시리즈에 있는 경기다. 1975년 FA컵 8강 웨스트햄 전, 아스날 수비진은 갈다 만 밭두렁 같은 경기장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만시니는 동료 수비진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별 소용은 없어보였다. 웨스트햄 골키퍼 머빈 데이가 멀린 찬 공이 예상을 뒤엎고 바닥의 진흙에 딱 붙어버리는 바람에 만시니는 균형을 잃었다. 빌리 본즈가 아스날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공을 채갔고, 나머지 3명의 수비수도 공이 설마 구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진흙바닥이 모두를 속였습니다!' 해설자 데이비드 콜먼이 비명을 질렀다. 다만 해머스의 공격수 앨런 테일러는 예외였다. 그가 선취골을 성공시켰다. 웨스트햄은 깨끗한 흰색 원정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시작하여, 갈색으로 유니폼 색이 다 변할때 쯤 트레버 브루킹의 마법 같은 활약으로 두 번째 골을 기록하였다. 득점자는 이번에도 테일러였다. 그들이 4강에 진출하였다. 만시니가 말했다. "표값을 뺀다면 하이버리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경기장 상태입니다. 그날 앨런 테일러와 트레버 브루킹이 잘하기도 했지만, 하이버리가 완전히 수렁이었던 탓도 있으니까요."

  그가 아스날에서 뛰던 시절 가장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 때는 1975-76 시즌 뒤에서 4번째 경기였다. 강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에서 포병대는 울브스를 맞았다. 경기종료까지 단 몇 분 남은 시점에서, 만시니는 코너 쪽으로 뛰어가, 공이 올라오자 머리로 멋지게 집어넣어 승리를 결정지었다. 만시니의 골이 없었더라면 아스날은 2부 리그를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한 일이 무엇인지 논쟁거리가 되었다. 스티브 애쉬포드 씨의 말은 이렇다. "그는 골대 뒤쪽의 클록 엔드에서 늘 하던대로 머리를 두들겼죠. 우리 모두 미쳐 날뛰었죠." 데이브 섬머스의 말은 다르다. "코너 플래그 쪽으로 뛰어가서 한바퀴 돈 후, 엉덩이를 흔들어댔어." 의문에 휩쌓인 남자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냥 관중들하고 손 마주치고 하프웨이 라인으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울브스 전 골이 그 정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걸 떠나 경기 끝나기 직전이라 뭘 하기엔 너무 지쳤어요. 그럴 힘이 없었지요!"

  아스날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새 감독 테리 닐이 부임하자, 만시니는 25,000 파운드에 앨더샷으로 떠난다. 프랭크 맥린톡이 말했다. "브라이언 마우드와 같이 아스날의 단기 영입 중 최고의 선수가 분명해요." 만시니는 아직도 그의 전 클럽을 경외하고 있다. "아스날에서 뛰는 것은 제 경력 말미에 감투 하나 쓰게 된 셈이에요.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간에, 언제나 과거를 회상하면 난 아스날을 위해 뛰었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앨런 허드슨의 별명.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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