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50년대-환한 불빛 아래서

1932년, 아스날의 감독인 허버트 채프먼이 벨기에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만다. 브뤼셀 근처의 경기장에서 지역의 두 클럽이 자동차 15대의 헤드라이트를 켜서 필드를 환하게 비추고 그럭저럭 구색을 갖춘 원시적인 야간 경기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런던으로 돌아온 채프먼은 야간 조명 도입이 영국 축구계에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선수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알려주었다.

  조지 메일이 회상했다. "그가 우리에게 때가 되면 야간 조명이 이 나라에 정착할 것이 확실한다고 말했지요. 채프먼은 그가 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영국에는 겨울이 길고, 많은 남성들이 해가 떠 있는 동안 일을 하니, 오후에만 경기를 하는 것은 너무 제약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30년대에는 2시에 경기를 시작하여 어둑해지기 전에 경기를 끝내야만 했습니다. 가끔, 시즌 말미에 일정이 밀리면, 주중 오후에 경기를 해야 할 때도 있었지요. 사람들이 일터에 가느라 경기장에 올 수 없으니 관중수는 당연 뚝 떨어졌어요. 그러나 채프먼의 발상은 때를 잘못 만난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귀중한 에너지를 축구 경기 따위에 낭비할 수 없다는 소리만 듣고 말았죠. 제 기억으로는 채프먼은 클럽이 비용을 대면 상관이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던 걸로 압니다. 어쨌거나 그의 제안은 기각되었지만, 채프먼이 결국 타협안은 관철시켰습니다. 30년대, 하이버리 그라운드 근처에 램프들을 설치해서 우리가 희미한 불빛 속에서 훈련을 하던 것은 지금도 선합니다."

  채프먼의 생각이 실현되는데는 결국 20년이나 더 걸렸다. 1951년 4월, 하이버리에서 매년 열리는 복싱 선수들 대 경마 선수들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야간 조명이 빛을 보았다. 각각의 종목에서 명망있는 선수들이 참여하는 이 이벤트 경기는 보통 10,000명 정도의 관객을 모았다. 그러나 축구의 작지만 새로운 역사라는 점에 혹한 30,000명의 관중들이 조명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클럽, 그 중에서도 채프먼의 후계자인 톰 휘태커가 특히 야간 조명 경기의 관중 동원력을 깨달았고, 새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친선 경기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포병대는 유럽 대회의 시대 이전에도 몰리뉴의 60,000 관중 앞에서 헝가리의 명문 구단 혼베드 같은 팀들과 경기를 치렀던 당시 리그 챔피언 울브스의 사례를 유심히 살폈다. 그런 경기들 덕에 울브스의 위상이 전 유럽에서 상승했다. 물론, 30년대 라싱 클럽 드 파리스와 여러 번 경기를 치르며 대륙의 팀들과 승부한다는 발상은 아스날이 처음 고안한 것이다. 그 경기들이 대부분이 파리에서 열렸지만만, 조지 메일은 하이버리에서 열린 경기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두 번 정도 하이버리에서 평소에 전혀 마주칠 일 없는 상대를 맞은 것입니다. 우리가 라싱 클럽하고 하는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관중이 왔습니다. 그 무엇보다 생소한 것이었고, 외국 팀과 경쟁하면서 우리들의 수준도 높인다는 채프먼의 이상에도 부합하는 것이었죠."

  1951년, 덕 리쉬먼(Doug Lishman)을 포함하여 아스날 선수들은 감독 톰 휘태커에게 구단이 '야간 축구 경기'의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륙의 팀들을 초대하여 상대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리쉬먼은 외국 상대를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팀의 분위기를 말했다. "라싱 클럽과의 경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세계 2차 대전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잖습니까. 그래서 색다른 상대와 싸우게 된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매우 흥분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증 뒤에, 오만함이 조금 숨어있다고 해야겠습니다. 1953년 헝가리가 잉글랜드를 박살내기 전이라 외국 선수들의 실력이 우리보다 좋다는 것을 모를 때였구요. 1945년에 모스크바 디나모 팀이 아스날을 혼줄을 빼놓았음에도 우리가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축구라면, 우리가 잉글랜드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지요. 제가 아스날에 있던 시절, 우리팀의 많은 선수들이 많은 것을 느꼈을 겁니다. 제 기억에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경기가 있는데, 하나는 베를린과의 경기였고, 또 하나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팀과의 경기였습니다. 독일팀들의 조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브라질인들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훌륭한지 깨닫고 좌절했지요. 하이버리 관중들도 깨달았죠. 슬프게도, 유럽 대회에서 뛰기에는 저는 나이가 너무 많았지만[각주:1], 그럼에도 하파엘 텔 아비브와 치렀던 경기는 뚜렷히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스날이 야간 조명 아래서 치른 첫 경기입니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런던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4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스날 팬 레너드 그린이 말했다. "1950년대 내내 유대인들이 이렇게 많이 몰린 적이 없었어. 유대인인데 그 경기를 그날 보러 가지 않았다하면, 뭐 죽을 병에 걸렸거나 그런 셈이었지. 이스라엘 팀이 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가진 경기니까, 당연히 가고 봐야지. 아스날 팬인 내게도 즐거운 밤이 되었어. 스퍼즈가 '유대인' 클럽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기도 안찼어. 아스날에도 유대인 서포터가 얼마나 많은데. 그날부터 야간 경기를 좋아하게 되었지. 더 매력적이었어. 어둠 속에 앉아 빛 속에서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것이 근사해. 축제 분위기를 더 살려주지. 하지만 당시 50년대 초에, 아직 하이버리에서 야간조명을 본 사람이 없었어. 깜깜한 경기장을 채우고, 킥오프 직전에 조명이 이제 곧 들어올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지. 그리고 불이 켜지더니 마치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와아'하는 탄성 밖에 들리지 않았어. 모두 이곳저곳에서 박수를 치고 크게 환호했지. 경기 자체는 어떻게 됐냐면, 아스날의 연습 경기나 마찬가지여서 하파엘을 압도했고, 우리는 5-1로 이겼지. 하지만 유대인 아스날 팬인 내게는 잊을수 없는 밤이었어."

  이 경기의 성공에 힘입어(관중 숫자는 물론 기술적인 문제도 없었다는 점) 축구 협회에서는 얼마 안 있어 아스날에게 야간 조명 경기를 리그에서도 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하파엘 전에서 교체로 들어와 두 골을 작렬한 레지 루이스는 "축구계와 선수들에게 완전한 신세계"라고 표현했다. 며칠 후, 글래스고 레인저스가 하이버리에 와서 친선 경기를 치르면서 야간 조명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루이스가 회상했다. "야간 경기 일정이 잡히고 있었는데, 이는 잔디 열선 처리도 없던 시절 시즌 말미에 경기를 몰아서 할 필요가 없어졌단 소리야. 팬들과 선수들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중요한 점은 이제 주중에 경기가 열릴수 있다는 점도 있고. 그리고 클럽들이 야간조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경기를 치르기도 수월해지지. 유러피언 컵이 얼마 후 처음 열렸는데, 야간 조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걸, 주말에는 자국 리그를 치러야 하니까. 그리고 선수들과 팬에게는, 불빛 아래서 축구를 한다는 점 자체가 놀랄 일이지. 완전히 새로운 축구였으니까."

  야간 조명은 축구계 전체에 진정한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하이버리의 선수들이 유럽 대회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맛보는 날은 금방 오지 않았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유러피언 컵은 1955-56 시즌에 처음 열렸다. 첫 우승자는 레알 마드리드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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