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60년대-가장 위대한 인간

1966년 초, 하이버리는 카시우스 클레이(그는 당시 무함마드 알리로 개명을 진행 중이었다.)와 헨리 쿠퍼의 재결전이 펼쳐질 곳으로 선택되었다. 3년 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쿠퍼는 처음으로 클레이를 다운시킨 선수가 되었으나, 우리들의 헨리는 피부가 쉽게 찢어지는 약점 때문에 결국 5라운드에 쓰러졌다. 그래도 쿠퍼의 펀치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이버리 재결전 직전에 펼쳐진 기자회견에서, 클레이가 말했다. "쿠퍼 주먹이 하도 쎄서 제 아프리카 조상들도 흔들렸을 겁니다." 1966년, 클레이는 이미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고, 쿠퍼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을 때, 많은 아스날 선수들이 이 '가장 위대한 인간'가 접점을 가졌다.

  클레이 대 쿠퍼가 처음으로 하이버리에서 열린 축구 아닌 행사는 아니었다. 1959년, 데니스 콤프턴 기념 경기의 일환으로, 경기장에서 아스날 대 잉글랜드 올스타의 크리켓 경기가 열렸다. 레지 루이스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정말 희한하지. 크리켓 경기장은 보통 길죽한게 아니라 네모나야지. 그래서 타자들이 모두 공을 살살 치려고만 했지, 안 그러면 관중들이 맞을테니까, 꽤 위험한 일이고. 하지만 모두 조심했고, 축구에서나 크리켓에서나 위대한 선수였던 데니스에게는 좋은 일이었어."

  1955년 미국의 복음 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이 북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했다. 그레이엄이 하이버리 경기장 가운데 연단을 세워 그곳에서 대중들에게 연설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넘쳐났다. 그레이엄은 최초의 언론 친화적 전도사였기에, 하이버리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역 주민인 클라이브 바넷이 회상했다. "어느날 아침 문을 열었는데, 나는 조금 졸려서 뭐 우유배달원이겠느니 싶었지. 그런데 양복을 차려입은 말쑥한 남자 둘이 서 있는거야. 그들이 뭐라고 하더라고. '안녕하십니까 형제분, 주님의 은총이 오늘도 함께 하고 계시나요.' 나는 영 정신을 못 차리는 꼴이었을거야, 계속 떠들어댔거든. '진정하십시오 형제여, 진정하세요. 빌리 그레이엄 씨가 당신이 주님의 품에 안기고, 주님을 잘 알게 도와드릴 겁니다. 주님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나요, 형제분?' 그럴 생각 없다고 대답했지. 그리고 문을 쾅 닫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빌리 그레이엄이 아스날 경기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연설은 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결국 안 했을거야. 빌리 그레이엄의 사도 분들께서는 한 동안 동네를 계속 돌아다녔지. '신의 축구팀'이라는 별명도 붙었어."

  10년 내내 통틀어서 하이버리 최대의 사건이
란게 '클레이 대 쿠퍼'라는 것을 보면 아스날이 1960년대에 얼마나 부진했는지 알 수 있다. 경기는 찰리 조지 같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목돈 챙길 기회도 주었다. 그가 말했다. "시즌이 끝나고 경기가 열려서 경기장을 재단장 해야 했습니다. 이사였던 켄 프라이어가 뗏장 전체를 갈고 나무 판자를 깔아야 한다고 했지요. 다른 연습생들과, 외부에서 온 인부들과 같이 판자를 깔고, 링을 만드는 일을 했지요. 즐거운 일이었어요, 그 1군 선수들의 신발 청소하는 일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언론에서 계속 들락날락 했어요, TV 방송할 것도 설치하고, 수백 야드나 긴 케이블도 깔고 했지요. 클럽 관계자들은 46,000석이나 좌석을 깔아야 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나봐요. 그래도 저는 좋았죠. 돈도 추가로 받고, 그보다도 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헨리는 아스날을 무척 좋아했고, 그날 밤 헨리를 응원한 아스날 팬들이 엄청 많아요."

  존 새멀스와 밥 윌슨이 지역 신문에 스파링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아스날은 경기 전날 해외 투어를 떠났기 때문에 경기를 관람하지 못했다. 오직 부상 당했던 조 베이커만 홀로 남아 경기장에 갔다. "팀 동료들이 경기를 못 봤다는게 당황스러웠어요. 한 이틀정도 늦게 출국해도 되잖아요. 만약 경기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렸다고 쳐봐요. 그러면 첼시 선수들이 우르르 모두 모여서 경기를 보고, 분명 라켈 웰치도 앞자리 앉아있을 거에요! 아스날 선수들이 얼마나 복싱을 좋아했는데요. 경기 직전에, 알리가 파크 레인 호텔에서 기자 회견을 했어요. 제 친구 중 하나가 기자여서 저를 몰래 들여보내 주었는데, 이런 선수는 전대미문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옳았어요, 알리는 날것의 불 붙은 사내였습니다. 걸어다니면서 '나는 잘 생겼다', '나는 위대하다.', '이 자식은 날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박살이 날 것이다.'라며 소리를 쳤어요. 시적 감각을 뽑내기도 했죠. '쿠퍼를 쿵쿵 두들기겠어.'

  재밌던 것은 헨리가 자리에 있었다는 거에요. 꽤 즐거워하면서 알리가 혼자 쇼를 하는 동안 웃던데요. 기자회견 끝나고 알리를 만나려고 했는데, 일행이 급히 데려가던데요. 하지만 하나, 그가 기자회견에서 "축구 선수들은 못생겼다. 나보다 못해."라고 말한 것은 잊을 수가 없어요. 자신들의
영웅이 점잖고 겸손하기를 바라는 영국인들에게는 좀 심한 말이었습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대략 46,000 명의 관중들 앞에서 치러진 싸움에는 헐리우드 스타 버트 레이놀즈와 리 마빈 같은 사람들도 와 있었다. 아스날의 코치인 버트 오웬은 운 좋게도 클레이의 라커룸에 같이 있었다. 보통은 아스날 선수들이 쓰는 그 장소였다. 그가 존 새멀스에게 말한 바로 보면 아마 꽤 인상 깊었나보다. "버트는 30년대부터 코치 일을 했고, 바스틴이나 제임스 같은 온갖 아스날의 전설들과 모두 일해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알리한테는 기겁했다는군요. 알리가 경기 전에 그 유명한 몸풀기를 하면서, '파 파' 숨을 쉬는 쉐도우 복싱을 했대요. 그런데 워밍 업을 하는데, 어깨 푸는 것도 한 두번 휘젓고 말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재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더래요. 헨리로 말할 것이면, 좋은 사람이었지요. 연골 부상을 입고 나서 잠시 우리랑 같이 훈련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 알리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관중들 대부분은 아스날 팬이었다. 헨리 쿠퍼는 후에 이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전율이 찌르르 흘렀다. 내가 경기 중에서 받은 최고의 환호성이었고, 관중들은 '쿠퍼, 쿠퍼'를 연호했다. 늦은 인사이기는 하지만, 멋진 추억을 만들어준 관중들께 감사한다.' 36세의 쿠퍼는 6라운드 1분 38초까지 클레이를 몰아 세웠으나, 오른손 잽이 쿠퍼의 눈에 작렬했고, 12바늘 짜리 상처를 남겼다. 심판은 즉시 싸움을 중단 시켰고, 쿠퍼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 저주, 쉽게 살이 찢어지는 이 저주가 내게 또 한 방 먹였다." 위안거리라고는 40,000 파운드의 대전료 뿐이었다. 이후, 클레이의 매니저는 그의 잽을 '환상적인 펀치'라고 추켜올렸으나, 알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피를 흘리는 것을 싫어한다. 내 종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경기를 본 조 베이커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하이버리에서 열린 그런 사건을 목격하게 되어 축복받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스날 팀이 그런 열기를 유도할수 없어 씁쓸했습니다. 여러모로 가슴 아팠지요." 18년 후, 알리의 호적수 중 하나였던 조 프레지어가 1984년 말 루튼과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하이버리를 방문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라운지에서 프레지어를 만났다. 찰리 니콜라스가 회상했다. "거구의 남자였지만, 정말 다정다감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가 이곳이 알리가 헨리 쿠퍼를 때려눕힌 곳이 맞냐고 물었지요. 켄 프라이어에게 물어보니까, 맞대요, 바로 그 곳이래요. 그러자 프레지어가 바닥에 침 뱉는 흉내를 내더니 한탄했습니다. '빌어먹을 개자식, 어딜가나 이 놈한테 벗어날 수가 없어.' 그날 이후 20년이나 지났는데도요!"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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