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80년대-라디오 매치

현대 축구에서 한 팀이 지고 난 후에 두 팀의 팬들이 모두 기분 좋게 경기장을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1981년 5월 아스날이 아스톤 빌라를 이겼을 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시대의 아스날 선수들은 아직도 리그 챔피언이 결정되는 그 경기에서 아스톤 빌라의 원정 팬 22,000명을 포함한 55,000명이 발산했던 강렬한 기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아스날은 승리할 경우 다음 시즌 UEFA 컵에 참가할 수 있었고, 아스톤 빌라는 미들스보로에서 경쟁자 입스위치가 미끄러지기만 한다면, 하이버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타이틀을 들 수 있었다.

  경기 당일, 아스날은 시험삼아 사업 확장을 시도해보았다. 그날 오피셜 매치데이 프로그램을 구매한 사람들은 모두 펠레가 빨간점과 파란점 세 개 사이에 하얀 점이 들어가있는 스크린을 향해 무섭게 웃는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펠레는 아타리 사의 '새로운 비디오 게임 카트리지'를 홍보하고 있었고, 선수들이 경기 전 워밍업을 할 때 피치를 한 바퀴 돌았다. 아타리 혁명을 예고하며 1,000개의 풍선이 하늘로 날려질 때 관중들은 반쯤 농담으로 '펠레를 영입하자'고 함성을 질렀다. 아스날 선수들은 그 소란을 썩 즐기지 못했다. 윌리 영이 말했다. "그 빌어먹을 풍선들이 얼마나 성가셨는지 알아? 사람들은 선수들이 워밍업 때 얼마나 집중하는지 잘 모른다니까. 그런 장난질 따윈 필요 없어. 그런 경기전 행사가 보통이 되기 전에 은퇴했기에 망정이지."

  하지만 여러 선수들은 아동용 아타리 게임을 공짜로 받게 되어 기뻐했다. ("이 고물딱지를 결국 한 번도 써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내가 완전 기계치였으니까 그런 것 같네요." 폴 베센이 덧붙였다.) 하지만 정말 기쁜 일은 축구황제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베센이 말했다. "사진사는 우리가 펠레를 위로 들어올리면 그림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윌리 영이 자기가 키가 제일 크니 축구황제를 들어올려야겠다고 말했지요. 테리 닐은 찬성하지 않았구요. '안 돼, 안 된다니까. 네가 그분을 실수로 떨어트린다고 생각해봐. 다음날 신문에 쫙 뜨고 지금보다 더 악명이 높아질걸. 헤드라인이야 뻔하지. '윌리 영, 펠레 살해.' 너 말고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해.' 우리는 모두 웃느라 자빠졌죠, 펠레까지요!"

  경기장 위에서 진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빌라 팬 데이브 웨버가 말했다. "요 몇 십년간 빌라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였으니까. 5월까지 리그 타이틀을 두고 경쟁할 수 있었어. 그때, 원정 서포터들이 마구 몰려들었지. 아스날 전때는 모두들 런던으로 여행채비를 마치는 것만 같던데. 설마 다들 장담한대로 다 올 줄은 몰랐지. 뉴 스트리트에서 유스턴까지 가는 기차들이 줄을 이었지. 참 그때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어. 우리가 하이버리에 갔을 때, 클락 엔드까지 들어가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웠거든. 2시 반쯤 되니까 자홍색과 파란색 저지를 입은 빌라 팬들이 아주 때를 지어서 '빌라, 빌라'를 한 목소리로 악을 쓰는거야. 환상적인 순간이었어. 하지만 축제 분위기는 아스날이 2-0으로 앞서나가며 찬물을 끼얹고 끝났지. 빌라 선수들이 너무 긴장해 있었어. 나중에 게리 쇼하고 토미 몰리를 빌라 팬미팅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너무 긴장해서 한 발자국 옮기는 것도 죽을맛이었다고 하더라.

  아마 경기 중에 빌라 팬 둘 중 하나는 라디오를 귀에 꼭 대고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해. 후반전 때, '보로가 일을 쳤어. 입스위츠를 박살냈다니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클록 엔드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참. 믿을 수가 없었어. 아스날 팬들도 우리를 이기고 UEFA컵 출전권을 따냈기에 친절하게 맞아주었지. 우리를 향해 '챔피언스, 챔피언스' 환호성을 질렀고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을 돌 때 박수를 쳐주었지. 리버풀이 이번에는 우승 못해서 다들 기뻤던게 분명해! 솔직히 리벞풀이나 스퍼즈가 경기장을 돌고 있으면, 경기 끝날 때 다들 집에 가고 없었을 걸.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우리는 피치 위에 모여서 나는 게리 쇼를 겨우 찾아내서 내 친구들과 같이 어깨 위로 들어올렸지. 웃긴 건 론 선더스 감독도 경기장을 걷고 있었는데 특유의 퉁명스런 표정은 전혀 변치 않는다는 거지. 빌라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그는 그런 것을 별로 안 좋아했어. 모두 그에게 물었지. '수고하셨어요 론, 환상적인 날 아니에요?' 그러자 그가 마지못해 대답했어. '고맙소.'라고 먼저 말하고 '내년에는 유로피언 컵을 들어올리라고 했소.'라고 했지. 우리는 모두 웃었지만, 론의 말이 맞았어. 빌라가 해냈으니까. 그가 그때 팀을 떠났던 게 유감이야.
[각주:1]"

  윌리 영에게도 그만큼 즐거운 추억이었다. "나 현역 시절에는 빌라나 입스위치 같은 팀들이 우승하는 것이 정말 가능했다고. 아스날 선수의 시점에서 보면 빌라전은 우리가 챔피언을 꺾은 것이니까 정말 기뻤지. 내가 첫 골을 넣고, 브라이언 맥더못이 두번째 골을 넣었지. 난 기벘어. 두 팀의 팬들 다 자축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웃겼어. 빌라 팬들은 라디오를 가져와 미들스보로에서 있던 입스위치 경기를 다 듣고 있었으니까. 두 팀의 팬 모두 좋아 난리를 치는 경기를 다시는 보지 못했지.

  그날 빌라 선수들은 정말 다리에 총이라도 맞은 듯 보였어. 우리가 잘 하긴 했지만, 토니 몰리 같이 우리를 시즌 내내 괴롭히던 공격수도 기운이 다 빠진 것처럼만 보였거든. 공정하게 말하자면 빌라는 시즌내내 잘했으니 그럴만도 했지. 돌아보면 하이버리에서 정말 정말 오랫동안 그런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했을거야. 상황이 변해갔으니까. 리암 브래디가 떠나서 다들 축 쳐지고, 프랭크 스테이플턴도 떠날 예정이었고, 상황이 계속 변하니까. 하지만 빌라 전은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 경기 끝나고 그네들 라커룸에서 같이 샴페인을 땄지."

  많은 아스날 팬들에게 빌라전은 1980년대 최고의 경기였다. 레딩에 사는 팬인 데이브 챔버스가 회상했다. "하이버리에 더 이상 그만큼 많은 원정팬이 몰려올 일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지. 하이버리 도서관이라면서 놀려대지만, 사실 볼륨이 커지려면 원정 팬도 많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 경기에 20,000명 이상이 몰려들었잖아. 아주 바글바글하지. 노스 뱅크는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어 모두들 밀고 당기고 했거든. 도중에 나는 아예 몸이 들려져서 발이 땅에 닿지도 못했다니까. 즐거운 추억이지만, 80년대 경기장에 참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그걸 생각해보면 아찔하지."

  윌리 영이 말했다시피, 브래디와 스테이플턴의 이적은 클럽을 위기에 몰아놓고, 80년대 축구의 암울한 현실과 경제 불황이 곧 경기장을 뒤덮었다. 하이버리에 암흑기가 도래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선더스는 보드진과의 마찰로 시즌 중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수석코치였던 토니 바튼이 결국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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