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90년대-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

아스날의 승승장구 와중에 먹구름이 껴들기 시작했다. 코벤트리 시티 전 프로그램에서 클럽이 하이버리 스탠드 전좌석화에 드는 2천 250만 파운드 정도의 비용을 약정제나 채권제로 충당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클럽은 그 중 천 650만 파운드 정도를 팬들에게 약정계약으로 팔고 싶어했고, 나머지는 클럽의 재원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레인저스가 그런 식으로 이브록스 스타디움을 재개발하였고, 미국의 여러 클럽들도 따라했다. 분명 데이비드 데인은 그 사례에서 착안을 했을 것이다. 1,200 파운드나 1,500 파운드 정도의 약정을 구매하면 150년 동안 시즌 티켓에 대한 '독점적 권리'와 피터 힐우드와 조지 그레이엄이 서명한 약정 인증서를 발급한다고 발표하였다.

  입석을 지키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테일러 레포트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지 않는다면 1994-95 시즌을 기점으로 안전 허가가 취소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최후의 일격이었다. 100년에 걸친 전통이 끝났다. 팬들은 그에 슬퍼했지만, 그들을 더 슬프게 한 것은 클럽이 전좌석화를 진행한 방식이다. 부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데인은 팬들에게 말할 때 테일러 레포트의 여러 부분을 인용하였지만, 구단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팬들과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부분은 결코 인용하지 않았다. 보고서에서 테일러는 이렇게 적었다. "클럽은 몇몇 상황에서는 이사들이 풀뿌리 서포터들의 행복에 관심이 있는지 의심해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브닝 스탠더드>를 통해서 약정제에 대한 루머가 흘러 나왔지만, 테일러가 주장한 '설득 과정'은 애매한 공개 집회와, 리즈전 프로그램에 실린 짤막한 설문이 전부였다. 그런 설익은 질문들 가지고는 결코 전좌석제에 대한 일반의 의견을 파악할 수 없어 보였다. 사실 그 설문지에서 클럽이 얻어낸 가장 중요한 정보는 주소란에 적힌 것이었다. 15,000명 정도의 응답자들이 약정제의 장점을 설명하는 번쩍번쩍한 브로셔를 받았다. 설문지의 결과는, 영원히 공개되지 않았다.

  만약 성공한다면 약정제는 하이버리 관중들의 사회적 구성에 변화를 줄 것이 분명했다. 할부로 내면 매달 100 파운드 정도가 되는 지출이고, 합하면 일년에 대략 1,000파운드가 넘는다. 가장 비싼 시즌 티켓이었다. 축구 컨설턴트 알렉스 핀이 설명했다. "이게 중요합니다. 축구팬들이 과연 시즌 티켓 살 권리를 또 사야 합니까?" 아스날 팬들 중 일부가 1991년 여름에 독립 아스날 서포터 협회(IASA)를 만들었다. 창립자 중 한 명인 이안 맥퍼슨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클럽이 결국에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여름이 지나면 이 일을 다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사진의 행동이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오만했습니다."

  팬들의 기분은 1991-92 시즌 시작할 무렵 티켓값이 33퍼센트 더 상승할 것이라는 뉴스와 함께 더 가라앉았다. 구 노스 뱅크의 마지막 시즌에는 관중수가 30,000명 이하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급작스레 솟은 티켓 값과 약정제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당시 42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최다주주였던 데이비드 데인은 이 새 계획의 주도자였던 것이 틀림없다. 1991-92 시즌 개막 전날에 1부 리그 회장단들은 데인을 앞에 세우고 다음 시즌부터 프리미어 리그를 창립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약정제를 밀어붙이기로 작정하자, 이사진은 자신들의 팬들에게 두 가지 가증스러운 죄목으로 비난받았다. 팬들을 기만한 것과, 팬들을 대하는 고압적인 자세였다. 약정제에 반대하는 IASA는 이미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어냈다. 1991년 6월 초, <타임 아웃>의 기사에서 그들의 운동을 기사화했고 데이비드 데인은 이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 했다. 데인은 며칠 후 가라앉았다. 운동의 지도자였던 딜 데이비스와 <원 닐 다운>의 편집장이었던 토니 윌리스가 클럽 안으로 초대받아 데인과 프라이어와 만나 입장차를 정리했기 때문이었다.

  토론은 뜨거웠지만 비교적 감정이 상할 일은 없었다. 1주일 후 원 닐 다운에 대화 전문에 수록되었다. 질답 하나가 팬과 이사진 사이의 장벽을 한 마디로 보여주었다. 먼저 질문. "약정을 구매할 수 없는 충성스러운 팬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이루어질 것입니까?" (이를테면, 대다수의 10대 청소년들과, 학생들, 연금 생활자와 노스 뱅크의 핵심층 말이다.) 프라이어와 데인은 앞으로 일어난 혼란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클럽은 자선 재단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지만, 요컨대면 그들은 저소득 팬층에게는 어떤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데인과 프라이어의 대답은 무뚝뚝했고 날이 서 있었다. 1991년 크리스마스 쯤 16,000개의 약정 중, 오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5,000개만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IASA의 캠페인이 클럽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안 맥퍼슨은 원 닐 다운에 여러번 기고했고, IASA 뉴스레터를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 그는 당시 많은 팬들의 기분이 어땠는지 설명하였다. "클럽이 단 한 번이라도 우리가 왜 화났는지 이해한 적이 있기나 할까요. 노스 뱅크는 전통적으로 우리의 응원에 있어 요새였습니다. 보통 저소득 팬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구요. 이건 정말 상징적인 겁니다. 약정제는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쓰게 하는 배타적인데다가 엘리트적인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럴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클럽은 노스 뱅크의 사람들에게 간명하게 충성심보다는 돈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지요.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축구 관객층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상품에 돈을 쏟을 여유가 있는 부유한 중산층 관객들이요. 이런 것이 사실상 사회 공학의 한 형태겠지요. 당시 톰 와트가 클럽이 서포터들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한 것이 생각납니다. 클럽이 당시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 보세요. 늘 협박을 했습니다. 클럽의 내부 재원으로 해결한다면 선수를 하나도 못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경기를 보고 싶으면 시즌 티켓을 사라고, 또 그 시즌 티켓을 사려면 약정을 구매하라고 합디다. 구단 측에서는 우리를 '인텔리 계층'이라고 부르며 IASA를 노골적으로 불편해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즐거운 일이기는 하다만, 그들 주장이 모두 '진보적인 구단'이 되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겠지요. 실체는 소통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구닥다리 엘리트 집단일 뿐입니다.

  하이버리를 전좌석제로 바꾸는데 자금을 마련하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라고 보앗습니다. 먼저 채권을 만들되, 채권을 구매하면 시즌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야 진짜 투자한 만큼 혜택을 얻는 것이니까요. 그 채권을 최대 6,000개까지 발행하라고 했지요. 두번째로 한 시즌에 20 파운드 정도로 팬들에게 홈경기마다 티켓을 살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 번재로, 제한적으로 주식을 판매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것으로 2백만 파운드에서 4백 50만 파운드 정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 셋을 모두 합치면 천 이백만 파운드에서 천 사백만 파운드를 충당할 수 있었죠. 멤버쉽 카드는 다음해부터 불쑥 튀어나오더군요. 물론 구단에서 고안해낸 방식이라고 하대요!"

  얼마 후 다음 2년 정도, 경기장 수용 인원이 28,000명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클럽은 16,000개의 약정을 모두 팔기를 바랐다. 경기 날에 최대 12,000개의 표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하였다. 원정 팀들 몫을 배분하고, 암표상들이 제 몫을 챙기자, 약정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6,000장 정도가 배부될 뿐이었다. 사실상 약정이 경기장에 들어오는 필수 조건이 되었으니 하이버리가 포트 녹스[각주:1]가 될 지경이었다. 한 팬이 이 소식을 분석하자, 응원의 편지와 지원금이 IASA 본부로 몰려들어왔다. 아래 두 문단은 각각 다른 편지에서 따온 인용구이다.

  '아스날이 최고의 팀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약정에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슬픈 것은 제가 이 일을 열두살인 제 아들에게, 이제 우리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경기마다 경기장에 갈 수 없노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아들과 저는 진심으로 이 클럽을 사랑합니다. 다만 클럽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돈을 사랑하나 봅니다.'

  '아스날을 사랑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우리의 그 어떤 의견도 배제하는 재건축 계획에 진저리가 쳐집니다. 제게 두 아이의 몫까지 약정을 지불할 능력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제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요?"

  이안 맥퍼슨은 말했다. "팔리지 않은 약정 하나하나마다, 충성스러운 팬도 그 약정을 지불할 돈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2년 동안 경기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구요. 약정 계획의 실패 이후 얼마나 많은 팬들이 하이버리로 돌아오지 못했는지 아십니까. 수천은 됩니다." 알렉스 핀이 결론지었다. "돌아보면 늘 놀랍습니다. 확실한 것은 테일러 레포트는 혁명적인 보고서였고, 클럽의 입장에서는 빨리 이에 따를 수록 이득이었습니다. 다만 하이버리를 전좌석제를 바꾸는 방식이 잘못되었죠. 팬들은 당연히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구단은 영화관이나 슈퍼마켓의 소비자들과 달리 팬들은 단심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사전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다. 약정제에는 대안도 있었습니다. 클럽은 아예 천 육백오십만 파운드를 한 번에 빌릴 수도 있었겠죠. 물론 이에는 논쟁이 있었겠지요. 담보대출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해 시즌 티켓 판매와 우량 고객 우대 정책 수익으로 갚으면 되구요. 이 둘 중 어떤 식으로 했어도 클럽은 팬들을 자극하지 않고 자금을 충당했을 것입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미국의 군 기지 중 하나. 여기서 따와 미국 속어로 화려한 시설을 언급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