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70년대-편견 없이? (1)

1970년대 초, 많은 아프리카계 캐리비아 인들이 아스날 경기를 보러 왔다. 그들은 대개 전쟁 직후 영국으로 건너온 자들의 2세였다. 그들의 하이버리 나들이는 각양각색이었다. 콜린스 캠벨의 아버지는 1953년 틸버리에 정착해서("우리 아버지는, 당신 말을 그대로 옮기면 모국에 오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기회의 땅이라고 확신하셨지요.") 핀치레이에서 창고지기 자리를 얻었다. 콜린스는 BBC의 <매치 오브 더 데이>와 ITV의 <빅 매치>를 보며 축구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1973년, 그는 처음으로 축구장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 당시 그는 라스타(Rasta)식으로 살고 있었다.

  "제 인생의 등불이라 할 사람이 둘 있습니다. 우선 밥 말리(Bob Marley)가 있고, 그보다 살짝 아래 찰리 조지가 있지요. 하이버리에 가보기 전에 저는 런던의 다른 구장들 몇 개를 들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제가 스탬포드 브릿지에 첼시 경기를 보러 가겠다고 말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나는군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슨 소리냐, 절대 안 돼. 산채로 잡아먹힐 거야. 절대 가지마.'라시더군요. 저는 무시하고 갔습니다. 후회가 막심하더군요. 스탬포드 브릿지에 가는 도중에도 야유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약쟁이 자식이 어디를 돌아다녀.' 우악스럽게 코미디언 짐 데이비슨 같은 말투를 흉내 냈습니다. 다른 팬들은 제가 범죄자인 것처럼 저를 피해 다니더군요. 그들이 자메이카 억양을 흉내 내며 말했습니다. '머리 좀 자르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괴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서로 속삭이며 제 험담을 하러 등을 돌렸습니다. 제 친구 중 하나가 업튼 파크는 더 심하고 이상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클라이드 베스트가 그 팀에서 뛰었습니다. 그가 명백히 그들 선수였는데도 팬들은 말본새를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외쳤어요. '저 깜댕이 새끼한테 공을 주라고.' 몇몇은 원숭이 소리까지 냈어요.

  하이버리에 가는 것은 정말 마지막 결단이었어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두려웠습니다. 핀스버리 파크에서 걸어 내려오는데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저를 쳐다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놀라거나 불쾌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흑인이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그 와중에 첼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경기장 근처에는 정말 많은 인종들이 섞여 있었어요. 이탈리아계와 그리스계 사람들이요. 너무나 다르더군요. 재미있게도 제가 처음 하이버리에서 본 경기가 1973년 3월 쉐필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는데, 그날은 브랜던 뱃슨의 데뷔전이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경기에 나오기 전까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가 걸어나오는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관중들의 반응도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멋진 관중들이었어요. '뱃슨, 뱃슨'하고 노래를 불렀지요. 그러자 그가 관중들에게 박수를 쳐주더군요. 모두 멋진 사람들이었어요.

  그 다음주 내내 제 친구들은 모두 뱃슨 덕에 들떠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흑인이 무엇을 이룰 수 있나 보여주는 하나의 예였어요. 그러니까 오늘날의 아시아 선수들하고 비슷한 입장이라는 것이지요. 왜 그들이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하나 말이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시는 해설자라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인종적 편견을 텔레비전에서 들어내는 시대였습니다. 해설자가 흑인 선수를 보고 '타고난 리듬 감각'이라든지, 잡지에서 그들을 보고 '스페이드 에이스'라든지 하는 엄한 소리들을 쏟아냈던 것이 다 기억납니다. 그래서 뱃슨이 아스날에서 뛴 것은 제가 축구를 본 이래 가장 충격적인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그날부터 전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로 이스트 스탠드의 2층에서 경기를 보곤 했죠.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는데, 전에는 경기장에서 흑인을 본 적이 없었나봅니다. 그 중 하나가 그의 친구에게 큰 소리로 '못난 놈' 옆에 앉으려고 입장료를 낸 것이 아니라며 불평하더군요. 사람들은 '깜댕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거침이 없었고요. 저랑 <네 이웃을 사랑하라(Love Thy Neighbour)> 이야기 하면서 안면 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감도 못 잡으실 겁니다. 그 흑인 옆집에 사는 백인이 나오는 70년대 시트콤 말입니다. 하지만 아스날에는 늘 방어기제가 있었습니다. 너무 입을 심하게 놀리는 사람은 곧 자리에 앉아 경기 끝날 때까지 묵묵히 있게 되었죠."

  브렌던 뱃슨은 아스날에서 1972년에서 1974년까지 뛰며 총 6번 출장했다. "아스날에서 뛸 때는 인종차별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팀을 떠나 캠브릿지로 갔을 때 약간 있었죠. 그리고 웨스트 브롬으로 갔을 때, 저, 시릴 레지스, 그리고 로리 커닝햄은 원정 경기만 가면 온갖 욕설에 시달렸습니다. 아스날 관중들이 왜 다른 팀의 팬들보다 마음이 넓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사이프러스인들이 하이버리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클럽이 해크니 마쉬스랑 가까워서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런던 클럽 중 웨스트햄이 70년대 중반, 흑인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가장 앞장 선 클럽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클라이드 베스트는 차별을 이기지 못해 떠났죠. 반면 아스날에서, 저는 당시 유일한 흑인 선수였고, 크리스 화이트, 폴 데이비스, 라파엘 미드 같은 흑인 선수들이 들어오기 수년 전이었습니다. 아스날 관중들이 딱히 다른 팀의 팬들보다 더 개방적일 이유가 없었지요. 그들은 그저 천성이 그랬을 뿐입니다."

  하이버리 주변에 온전한 인종평등의 세계가 도래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필자가 <이슬링턴 가제트>에 하이버리 역사를 집필하기위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광고를 게제했을 때, 아스날 역 출구와 그 근처 거리에서 일어났던 문제를 지적하는 편지를 세 통 받았다. 1970년대 중반, 국민전선의 당수였던 존 틴달이 주장했다. "축구 경기장 근처에서 당원 모집 운동을 펼침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끌어올리기를 희망한다." 당시 국민전선은 분명히 하이버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이드 패커는 몇 년 동안 꾸준히 하이버리를 다니고 있다가, 그 당의 당원과 마주치고 말았다. "아스날 역으로 걸어나와 지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지어지고 있는 쪽으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가고 있었어. 하이버리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길 한켠에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띄는거야. 나를 보더니 낄낄대며 말했어. '이봐 친구, 국민전선 들어오는 거 어때?' 손에는 유니언 잭이 그려진 찌라시를 들고 있었고, 극우잡지인 <불독> 몇 부도 있던데. 내 친구 에이드가 그라운드 다른 쪽, 그러니까 이슬링턴 역에서 하이버리로 가는 길에도 불독이 팔리고 있다는 거야.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그걸 사서 읽는다는 거야. 경기장 안에서는 인종 문제 때문에 고생해본 적이 없어서 충격이었지.

  어쨌거나 그 남자가 나한테 시비를 거니까, 나는 그를 쥐어패겠다고 협박했지. 내가 덩치도 좀 있고 하니까 그자식이 당장 도망가더라고. 가는 길에 인종주의적 욕설을 내뱉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너무 화나고 충격 받았지. 내 아버지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도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것 아냐. '개와 흑인은 출입 금지'같은 팻말을 보면서 방을 구했을 것 아냐. 직장에서는 온갖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고. 아버지는 당신 말씀대로 자신은 '윈드러쉬 세대'니까 다 견뎌야 한다고 했다고 했지만, 나와 내 여동생은 그럴 필요 없다고. 내가 스무 살에 하이버리 밖에서 겪은 이 사건은 살면서 처음으로 겪은 심각한 인종 문제였어. 사람들이 차이와 차별을 잊고 즐겁게 놀아야 하는 공간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경찰은 친절했고 내 말도 잘 들어줬어. 2주 쯤 후에 경기장 근처에서 인종차별적인 문구가 담긴 찌라시를 다 압수했다고 전화를 해주더군. 국민전선은 그때 참 열심히도 당원을 모집했어.

  80년대 초가 되니까, 축구계에서, 적어도 하이버리에서는 그 사람들 모습 보기가 힘들더군. 경찰들도 참 열심히 단속 했어. 하지만 70년대에는 그 거리들을 피해 다녀야 했어. 당시에는 경기장도 거리도 어둑어둑하고 위험했으니까. 찰스 디킨스 소설의 한 장면 같았어. 암표상, 마약중독자, 어둠에서 한 걸음 밖으로 기어온 듯한 수상한 사람들. 그때 하이버리 근처는 정말 위험했지."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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