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2000년대-고백: 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

어스라이츠 변호사, 찰리 홉킨스

"어스라이츠는 1960년대 초 환경단체와 지역사회에 개발 문제와 관련된 법적 조언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초에 이슬링턴에 살았고, 제가 아스날 팬은 아니었지만, 아스날인 제 지역 팀이었던고로 호감이 있었습니다. 2002년 초 이슬링턴 경기장 지역사회 연합(ISCA)에서 난데없이 제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스날의 경기장 이전의 계획 단계 내내 지역 주민들과 협의가 덜 되었다고 느꼈고, 약속된 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스날은 웸블리와 킹스 크로스를 포함하여 다양한 장소를 고려했지만 결국 이슬링턴에 남기로 결정했고, 의회는 아스날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ISCA는 하이버리 힐의 백만 파운드짜리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부터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까지 포섭하는 대표 단체였습니다. 일부 회원은 아스날의 열렬한 팬이었기도 하니, 단체가 중산층의 NIMBY 단체거나, 반 아스날 단체는 아니었습니다. 아스날은 중요문제에 대해 지역사회와 협의하지  않는 오만한 조짐을 나타내는 사기업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계획 허가가 떨어진 이후, 강제수용명령을 행하는 방식이 ISCA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구단은 강제수용명령을 밀어붙이기 위해, 쓰레기 재활용 센터를 예를 들며 이 계획을 마치 지역 부흥 계획처럼 포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저곳을 이전시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관심사라고 주장하였지만, ISCA와 지역 상인들은 그저 최대한 빨리 아무 상의 없이 강제수용명령을 진행시키고 싶어서 하는 주장이라 파악했습니다. 여기서 강제수용명령을 위한 환경조사의 결과가 확실히 중요하겠지요. 결국, 사기업이 사유지를 뺏는 훌륭한 모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 개발이 지역에 이득이 될 것인가? 이해관계가 없는 조사관이 조사를 하였고, 그는 애쉬버튼 그루브로의 이전이 지역경제 부흥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며 ISCA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클럽과 의회에서는 새 쓰레기 재활용 시설과 구장이 고용 창출, 주거 창출, 교통 인프라의 증진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의 조사관은 존 프레스콧 부총리에게 공공에 이득이 되지 않으니 강제수용을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프레스콧은 조사관의 보고를 무시하고 강제수용을 허가했습니다. 최근 브라이튼이 팔머에 새로 지은 경기장의 경우처럼, 그가 도시계획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허가했다는 의혹이 듭니다.

  프레스콧이 결정을 내리자, 지역 상인들은 2004년 12월에 부총리에게 소송을 걸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고등법원은 지자체의 결정을 간섭하기를 꺼려합니다. 결국 2005년 1월, 법원에서는 프레스콧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정부 관료들은 결정권이 너무 강해서 일개 변호사가 고등법원에 대고 국무장관이 미쳤다고, 그러니까 제 말은 정치적인 의미로 미쳤다고 설득했다고 해도, 이미 벌인 계획을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2005년 초, ISCA와 지역 상인들은 투쟁을 그만두고 자체 보고서를 만드는데 만족해야 햇습니다.

  아스날이 새 구장으로 이전할 경제적일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이슬링턴 의회의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겠지만, 연결 융자만 2억 7천만 파운드 가량으로 압니다. 작년에 한 번 더 오른 이자율과 재산세가 유동적이라는 것을 감안할때, 몇 년 후 클럽의 경제적인 상황이 어떨지 불분명합니다. 또한 아스날은 이슬링턴 주민들에게 10,000장 정도의 시즌티켓 선매권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이것도 지역이 득을 볼 것이라는 근거로 내세웠죠. 하지만 이슬링턴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구 중 하나고,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과연 지역주민 중 얼마나 정기적으로 경기장을 갈 수 있을까요? 현재 아스날의 38,000명의 팬 중 단 5%만이 이슬링턴에 살고, 50%는 M25 고속도로 밖에 삽니다. 개발때문에, 특히 주중에 교통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짐작됩니다. 할러웨이 로드 지하철 역을 개선하자는 현 방안은, 지상의 개발과 마찬가지로 먼 후일의 일입니다. 계획은 대부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하기 전에 수립되었고, 물론 그가 온 이후 축구계는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새 경기장 계획은 아스날을 라이벌들보다 우위에 올려놓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브라모비치의 재산이라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저는 아직도,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밝혀져야할 진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날 일입니다."

암표상, 캣위즐

필자는 자칭 '관람 도우미'들의 인터뷰 없이는 하이버리의 아스날에 대한 이야기가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04년 포포투에 암표에 대한 기사를 기고하면서 처음으로 '캣위즐'을 만나게 되었다. 결코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1970년대 아동용 TV 프로그램의 지저분한 캐릭터에서 이름을 따온 그는 장발의 기름진 머리, 멋대로 뻗은 턱수염에 창백한 안색을 지닌 남자였다. 콧물은 내내 흘렀고 눈가는 젖어있었다. 미리 그의 불같은 성질에 대해 주의를 들었지만, 만나보니 제법 붙임성이 있었다. "프라이 업만 사주면 다 답해줄게."라고 말해놓고, 방금 자신들의 영웅 데니스 베르캄프를 보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팬들에게 위조티켓을 팔았냐고 조심스레 묻자 그는 불쾌한 행동을 시작했다. 핀스버리 파크 역 반대편에 널린 싸구려 식당에서, 그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함을 쳤다. "너 씨발 뭐하는 새낀데 나한테 그딴 걸 쳐물어?"라고. 프라이 업이 '일주일간 유일하게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해놓고, 그날 만남 마지막 몇 초간을 반쯤 씹다 만 달걀, 베이컨, 빵을 내 얼굴에 튀기는데 보냈다. 녹음기를 내 엉덩이에 쑤셔넣겠다고 협박한 이후, 음식이 가득 찬 테이블을 넘어트릴 뻔하며 가게를 가로질러가 뛰쳐나갔다.

  18개월 후, 그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며 프라이 업 사달라는 요구도 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암표 좀 팔아보려면 하이버리가 최고지. 아주 암표상들의 천국이야. 술집, 카페, 매춘굴까지 가릴 곳이 없어. 하이버리의 장점이 뭐냐면, 팀은 존나 잘하는데 경기장은 좆만하다는 거야. 돈줄이지. 티켓값 두배로 부르는 것은 예사야. 큰 경기 때는 더 부르지. 요즘은 담덩이들이 더 커졌어. 핀스버리 파크 역이랑 세인트 토마스 로드 내려오면서, 또 윌리엄 힐 출판사 지나가지고, 올드 트라이앵글 쪽 지나오면 스무 명은 있다니까. 짭새들은 사실상 하는 것도 없고. 우리 암표상들도 축구 문화의 일부 아니겠어, 펍이랑, 또 경기장에서 노래 부르는 것처럼 늘 있었잖아. 나는 그냥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 한 번은, 어떤 아스날 팬이 내 옆을 지나가면서 '도둑놈'이라고 부르던데, 난 그냥 장사꾼이라구. 관람 도우미. 아스날 경기를 존나 보고 싶으면, 내가 행복을 약간 주는 거지.

  팬들 대부분이 우리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몰라. 알면 암표 안 살걸. 보통은 도박 때문에 빚더미에 빠지거나, 술쳐먹고 약하고 하지. 내가 오늘 번 돈의 반도 카지노에서 날릴 걸. 늘 날려먹는 거지. 다들 하이버리에서 몇 년째 그짓하고 있지. 뭐 도중에 깜방도 갔다오고. 우리는 그런 놈들이야.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는 잘 모를거야. 당신 쓴다는 책 읽는 사람의 반은 모르겠지만, 뭐 알아야겠지. 축구 사이트가 아주 먹잇감들이 넘쳐나. 사이트에 메세지를 띄우는 거야. 충성스런 팬이라면서 티켓이 필요하다고, 정말 몇 년 동안 경기가 보고 싶었다고 계속 씨부럴대면 원가에 티켓 파는 놈들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표를 얻는 암표상이 하나 있어. 놀랍지. 휴대폰도 참 좋아. 팬들 있는 곳으로 가서 팔고, 경찰 오면 알리고 하면 되거든. 현대 기술이라는게 장사하는데 참 좋더라.

  클럽은 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핫라인을 만들어서 암표 산 사람이 전화해가지고 이름하고 좌석번호 부르게 했어. 그래서 티켓 등록이 취소된 사람들 꽤 있지. 클럽이 인정하지 않는 건 90년대 초에, 티켓 등록 제도 만들면서 지들이 암표상들에게 시장을 열어줬다는 거야. 아무나 접수할 수 있어가지고, 그때 기회잡은 놈들이 좀 많지. 가짜 이름하고 친구들 주소 써가지고 10개 이상 계좌를 만들었어. 그래서 경기날에 개중 몇 놈은 티켓을 아주 한다발 들고 와. 그냥 다 비지니스라니까.

  순해 빠져가지고 암표상에게 티켓 넘겼다가 회원 정지된 놈들이 뭐가 불쌍해. 사람은 약고 봐야 한다니까.

  나 한참 뛸 때는 경찰들이 뭐라 하고 여기서 사라지라고 막 그랬지만, 좀 재주가 생기니까 사람들 사이에 섞여다니고 한 곳에 오래 안 머물면 되더라고. 티켓다발 압수당한 적 한 번도 없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야. 뭐 나도 이제 끝났지. 하이버리 크기가 늘 티켓 수요를 높여줬는데, 특히 아르센 벵거가 온 이후에 더 심해졌어. 그런데 길레스피 로드 쪽으로 오면서 새 경기장 올라가는 것만 보면 심장이 철렁해. 20,000명이나 자리가 더 생기면 이제 티켓 사겠다고 덤벼드는 놈도 없을테고. 여분이 뭐가 필요하겠어. 하이버리에 있는 동안 열심히 팔아봐야지. 그 다음엔 모르겠어. 스탬포드 브릿지로 옮길까봐."

아스날 경기장 총괄 관리인, 스티브 브래덕

"하이버리의 총괄 관리인으로 임명되기 전에 브룩만스 파크의 왕립 수의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유소년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거기서 제게도 경기장 잔디를 잘 관리했다고 상을 주었습니다. 팀의 감독이었던 데니스 모리스가 조지 그레이엄의 친구여서 그를 불러서 수상식을 하게 했죠. 전 아스날 광팬인지라 너무 놀랐어요. 혹시 하이버리에 자리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전임자가 떠나서 자리가 있다고 하는 순간 안심이 되더군요. 저는 제 어머니 집 번호를 주고 왔어요. 당시 저 살던 곳에는 전화가 없었거든요. 시간이 좀 흘렀는데, 어느날 빨랫감 좀 들고 어머니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조지 그레이엄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었더라. 당장 전화 달래.'라고 지나가듯 말했어요. 저는 당장 전화를 걸었고, 그는 그답게 바로 용건을 말했어요.

  '경기장 관리인을 구하고 있소만, 오후에 하이버리에 올 수 있소?' 오후에 일이 있어 힘들 것이라고 해명하니 '올거요, 말거요?'라고 다시 묻더군요. 그래서 병원가야 한다고 상관에게 말하고, 하이버리에 갔어요. 준비는 하나도 못했구요. 켄 프라이어와 조지 그레이엄이 면접관이었고, 면접이 그렇게 잘될지는 몰랐습니다. 켄 프라이어가 마지막에 제게 질문 있냐고 물었는데, 데이비드 로캐슬이 다음 시즌에는 건강히 뛸 수 있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피치를 보긴 했는데 상태가 영 좋지 않더군요. 처음 면접 보러 갈 때는, 보조자리인줄 알았고 천천히 승진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바로 총괄 관리인 직을 얻게되자 놀랐습니다. 예상도 못했거든요.

  하이버리 경기장의 문제가 뭐였냐면, 열선을 깔긴 깔았는데, 열선 파이프가 너무 얕게 설치되어있었던 거에요. 이래가지곤 배수가 잘 안되요. 제가 경기장 다지다가 정으로 파이프를 찍어버린 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심각하게 잘못된 거였죠. 1988-89 시즌에는, 아스날은 우승했고, 피치는 박살이 났습니다. 쉐필드 웬즈데이 전이 있었는데 이긴게 다행이었죠. 모래를 경기장에 부었어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요 경기장은 '하이버리 뻘판'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웬즈데이 경기 끝나고, 농담 잘 하던 브라이언 마우드가 라디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을 거에요. '지금쯤 우리 경기장 관리인은 업무유기로 짤렸겠네요.'라고요. 농담이었지만, 뭔가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할 시점이란 건 명확했습니다. <이브닝 스탠더드>의 마이클 하트 기자는 저보고 경기장이 썰물 때 조개줍기 딱 좋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시즌이 끝나고, 경기장을 싹 갈고, 파이프를 더 깊게 묻었습니다. 좋은 잔디로 유명한 코벤트리와 쉐필드 웬즈데이 경기장을 포함하여 경기장을 엄청 많이 보러다녔습니다. 흙은 원래 있던 흙을 깔았지만, 레스터에 본사를 둔 회사가 뗏장을 새로 입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채프먼 시대에 만들어진 용재 부대를 발견했어요. 초기의 배수 시설이었죠. 여기서 하이버리 경기장이 채프먼 시절부터 평평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물을 남김없이 빼내려면 약간 경사진 피치가 필요하다고 봤을테니까요. 저는 클럽에 더 좋은 장비를 구매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죠. 새 스파이커처럼요. 1989년 쯤부터, 우리는 좋은 피치가 있는 클럽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잔디의 질을 유지하려면, 계절차를 잘 살펴야해요. 10월부터 3월 말까지 점점 상태가 안좋아지거든요. 습기는 차오르고, 날은 어두워져 잔디가 잘 자라지 않아요. 네덜란드식 인공 조명법을 도입하여 겨울에 빛을 쬐었죠. 네덜란드에서는 장미 육성에 쓴다고 하더군요. 직원 교육과 향상된 기술의 도움으로 요즘은 경기장 상태가 훨씬 좋죠. 올해의 경기장 관리인 상을 받는 것은 참 기쁜 일이지만, 좀 부끄럽기도 해요. 일단 우리 클럽의 조건과 제약이 더 좋고, 햇빛이 남쪽에 더 많이 쬐는지라 경기장 상태도 좋거든요.

  요즘 아르센 벵거 감독의 스타일 때문에, 공이 빨리 굴러가는 좋은 피치를 원해가지고, 직원들이 잔디를 청결히 유지하느라 힘듭니다.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하이버리를 전담할 때는, 바쁜 날이면 하루에 16시간도 일했거든요. 제가 집착을 하는 편이고, 완벽주이자이기도 하니까요. 이 일을 하려면 그래야만 해요. 세인트 알반스의 훈련장 피치를 관리해야하느지라, 저는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폴 버게스가 하이버리에서 하는 일을 이어받았죠. 폴은 하이버리 금잔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뻐해요. 저도 세인트 알반스 잔디를 칭찬해주면 기쁘고요. 1989년하고는 완전 다르다니까요!"

안내인, '노비'

"하이버리 안내인으로서 제 역할은 서포터들을 매표소로 안내하고 관광을 도와주는 것이었으며, 경기일에는, 선수들과 관람객드레게 이스트 스탠드 안팎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3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선수들의 패션이 바뀌는 것이 제일 놀라웠습니다. 축구계에 패션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조지 베스트가 처음이었습니다. 맨유 선수로 여기 올때마다 각이 딱 잡힌 양복을 입고 왔죠. 사랑스러운 숙녀분들이 제게 와서 '이 편지를 조지에게 건내줄 순 없으신가요'라고 부탁할 때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던게 안타깝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옷을 잘 입은 팀은 레스터 시티였습니다. 알란 버체널이나 프랭크 워딩턴 같은 선수들은 비싼 옷을 입고 하이버리로 들어가면서 고급 애프터쉐이브 냄새를 풍기죠.

  돈 레비가 참 친절했긴 하지만, 리즈 틱틱이들은 우스웠어요. 똑같이 입고 와가지고 군대 행진하는 것처럼 들어와서, 경기 끝나면 쏜살같이 나가요.

  여기 온 선수 중에 가장 놀라웠던 사람은 요한 크루이프였습니다. 1970년 초에 아약스 소속으로 두 번 왔지요. 이스트 스탠드의 아름다움에 반한 것처럼 보였어요. 늘 제 안부를 챙겼고, 두번째 왔을때는 가족들이 잘 있냐고 묻더군요. 게다가 제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려깊은 사람이에요.

  요즘 아스날 선수들은 홈경기가 있지 않은 이상 하이버리에 오지 않아서 잘 보지 못합니다. 70년대에는 늘 담소 나눌 시간이 있는 조지 암스트롱이나 프랭크 맥린톡 같은 선수들하고 친하게 지냈어요. 다른 경기장에도 안내인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이런 점이 클럽에 품격을 더해준다고 생각합니다. 30년대의 발상이긴 합니다. '공작새적 접근법'이라고 했다더군요. 세상에 클럽의 품격을 뽐낸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 안내인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돕고, 이 멋진 건물에서 일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제가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일은 즐겁습니다. 아직도 관광객들이 와서 이 건물의 역사에 대해 묻곤 합니다. 이스트 스탠드와 웨스트 스탠드가 세계 축구의 상징적 건물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죠."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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