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80년대-컬트 히어로: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Vladimir Petrovic)는 현재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표팀 감독이다.[각주:1] 아스날에 뛰던 시절보다 살이 많이 불었고, 영어실력도 꽤 늘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사반세기 전만큼이나 번뜩이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 테리 닐은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던 그를 하이버리의 암흑기를 끝낼 플레이메이커로 점찍어두었다. 하지만 하이버리로 그를 데려오려는 협상은 질질 늘어졌고…또 늘어졌다.

  그가 회상했다. "테리가 저를 처음 본 것은 1981년의 일이었습니다. 전 레드 스타에서 뛰고 있었습니다. 철의 장막이 굳건하던 시기라 동유럽의 클럽에서는 위에서 이상하다고 판단을 하면 이적을 몇 개월이나 막아둘 수 있었습니다. 이적 이야기는 말짱 도루묵이 될 것만 같았어요. 그때 테리가 다시 협상을 시작해서 1982년 여름에 매듭지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지요. 제가 월드컵 때 유고슬라비아 대표 선수로 뛰었는데 참담한 경기를 했고, 축구협회에서는 징계 차원으로 서유럽 클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는 낙담했습니다. 이미 여름부터 아스날 선수들하고 같이 훈련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적이 깨진 셈이니까요. 절망한 채 레드 스타로 돌아가야했습니다. 그때, 겨울이 되자, 레드 스타에서 '아스날로 떠나도 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기뻤지만 돌이켜보면 그땐 이미 조금 늦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국에서 그는 재치있고 섬세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가 아스날로 왔을때 관중들은 우왕좌왕 불안해하고 있었고, 팀은 리그 테이블 아래쪽에서 해메고 있었다. 포병대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짐이 안겨졌다. 페트로비치의 지적인 스타일에 맞춰줄 만한 여유(혹은 그럴만한 능력을 지닌 선수)가 없었다. 그는 하이버리에서 스완시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토니 우드콕이 환상적인 스루패스를 넣어주어 도움을 추가하였다. 하지만 경기 시작 1분도 되지 않아 좋지 않은 징조가 보였다. "관중들은 저를 환호해주었고 힘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만, 경기 시작 1분도 되지 않아 그들 수비수들 중 떡대 하나가 제 발목을 차고 들어오더군요. 제가 그때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아마 그가 '잉글랜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말했을 겁니다." 몇 주 후, 그는 스토크와의 홈경기에서 35야드짜리 프리킥으로 멋지고 공을 휘어넣는다.

  하지만 그의 동료인 스튜어트 롭슨의 기억에 따르면 페트로비치는 그 이상의 선수였다고 한다. "그는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는 선수였어요. 제가 같이 뛰어본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힘에서 밀리고 여러번 위협당했습니다. 희안하지만 지금의 아스날이라면 그에게 이상적인 팀이었겠지요. 그의 패스는 정말 수준이 달랏고, 요즘은 옛날처럼 공격수들을 걷어찰 수 없는 시대니까요. 그가 요즘이라면 훨씬 더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페트로비치가 덧붙였다. "제가 여름에 왔더라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리시즌 트레이닝을 하면서 잉글랜드 축구의 속도와 리듬에 적응해가고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레드 스타로 돌아가자 속도는 느려지고 무릎도 조금 다쳤습니다. 제가 하이버리에 다시 왔을 때, 경기를 치를만한 몸이 아니었어요. 너무 빨리빨리 돌아갔어요. 딱딱한 피치가 제 다리를 망가트렸지만 저는 바로 경기를 뛰어야했습니다. 요즘 외국인 선수들은 한 시즌 정도는 여유가 있습니다만, 저는 처음부터 재단되고 있었으니까요. 웃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하이버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데, 아스날 팬 하나가 그레이엄 릭스가 정교한 패스를 하려고 하니 '뻥 까버려!'하고 외쳤다는 거에요. 요즘 아스날 팬들은 쓸데없이 공을 날렸다고 뭐라 할겁니다. 하이버리 관중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지요."

  당시 팀 동료들은 '블라디'를 무척 아꼈다. 브라이언 맥더못이 회상했다. "런던을 사랑하는 멋진 남자였어요.그랑 대화를 할 때마다 아내하고 두 딸하고 놀러갈 계획이 늘 짜여있더라구요, 그리고 런던 탐방을 떠나는 거죠. 잉글랜드에 사는 것을 즐기는 만큼이나 팀에 금방 녹아들었구요. 다만 영어를 못한다는게 문제였어요. 경기장에서 토니 우드콕하고 앨런 선더랜드가 팔을 간절히 휘두르며 '블라디, 블라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불러야 했으니까요. 블라디는 명랑한 남자였고, 좀 더 팀에 오래 있을 기회가 있었더라면, 참 아쉬운 일이죠. 하지만 레드 스타는 영구 이적료로 400,000파운드를 원했고, 당시 축구계 사정이 워낙 안 좋았어야죠. 어쩔 수 없이 팀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아스날에서 페트로비치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치데이 프로그램 몇 권에 팀메이트랑, 혹은 그의 아내 자가와 같이 특유의 놀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가 아스날 셔츠를 입고 뛴 경기 중 가장 멋진 경기는 1983년 아스톤 빌라와의 FA컵 8강전일 것이다. 페트로비치 극장이었다. 스튜어트 롭슨이 회상했다. "테리가 시즌 말쯤, 시즌이 끝나고 블라디를 내치기로 결정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빌라를 상대로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죠. 유러피언 컵 우승팀의 수비수인 데니스 모티머와 켄 맥너트 사이를 제집 안방 넘나듯이 하면 골을 넣었어요.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와 한 방 쐈죠. 우리는 너무 기뻤고, 그는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죠.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그는 또 아무 것도 하지 못했어요. 만약 벵거가 그를 지도했더라면, 벵거가 그를 설득하여 조금 더 적합한 롤에 뛰도록 하였겠지요. 하지만 말했다시피 그 시대에서 그럴 수는 없었어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싸울 배짱도 없는 비실비실한 외국인으로 비쳐졌을 뿐이죠."

  테리 닐이 페트로비치가 아스날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하자, 아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페트로비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 물론 제가 간다고 해서 폭동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멋진 편지 몇 장을 받았지요. 그 중 하나는 절 울렸어요. '언젠가 우리가 아스날에서 기술적으로 훌륭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광경을 보게 될 지도 모르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언젠가 아스날 팬들이 육상 선수와 격투기 선수 무리가 아닌 아름다운 축구를 보고 즐기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르센 벵거가 편지를 썼던 걸까요?"

  아스날 팬인 스티브 더피가 당시의 분위기를 말했다. "이스트햄, 조지, 마리넬로에 이어 페트로비치까지. 팬들 사이에서는, 그리고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시니컬하게 아스날이 이제 자신들 스타일에 너무 경도되어 있어서 천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지. 벵거 이후 아스날을 응원하게 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80년대 초반에는 이런 허탈감까지 느껴야했다고. 천재들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고, 그저 달리고 넘어트리고 하는 선수들만 한 가득. 관중들이 '블라디, 블라디' 외치기만 하면 그는 무언가를 반드시 보여주었거든. 요즘이야 그런 선수들이 넘쳐나지만 1983년에는 페트로비치와 우드콕 뿐이었어. 우드콕도 페트로비치에 비하면 좀 아니었지. 하지만 그가 떠났을 때도 우리는 별 말 없었지. 그때 잉글랜드 축구에 외국인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필자가 2000년에 처음 페트로비치를 만났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늘 발에 채였어요. 잉글랜드에서는 공을 잡을 시간이 없었지요." 브라이언 맥더못은 이렇게 주장한다. "늘 위태위태해 보였죠. 언제라도 땅바닥에 푹 꺼져버릴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언젠가 잉글랜드 축구를 자신 같은 선수들이 지배할 날이 온다고 미래에서 보낸 전령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걸 알기에는 너무 근시안이었습니다. 우리의 답장은 '우리와 다르니까 저리가.'였구요."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아스날에서 16경기를 뛰었고, 3골을 넣었다. "아스날 팬들 대부분이 저를 기억도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선수가 엉망진창이던 80년대 초반에 패스를 뿌려대는 그 장면만은 목격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아스날에 진정한 첫번째 외국인 스타가 그의 족적을 깊이 남겼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2004년까지 국가대표 청소년 팀을 지휘했다. 이후 보즈보니다, 다롄 스더,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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