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70년대-컬트 히어로: 윌리 영

억력 좋은 하이버리 단골들끼리 누구의 하이버리 데뷔전이 최악인지 꼽는다면 둘로 갈릴 것이다. 이안 어 혹은 윌리 영으로. 1953년, 어는 울브스 전에서 아스날 셔츠를 처음으로 입게 되었다. 그는 던디에서 62,500 파운드라는 깜짝 놀랄만한 이적료로 옮겨와, 영국 축구 사상 가장 비싼 수비수가 되었다. 금발을 휘날리는 어는 60년대 축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 중 하나였다. 울브스 전,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눈에서 지울 수가 없었는데, 쾌속정에게 둘러쌓인 유조선처럼 울브스의 발빠른 공격수들에게 시달렸고, 영국 중부에서 온 울브스가 3-0 승리를 거둔다. 어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데뷔전은 재앙 같았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새 환경 탓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아직 흔들리고 있었을 수도 있고, 이적료 때문에 부담도 되었고. 하지만 잉글랜드의 강팀으로 이적하는 스코틀랜드 선수들은 적응 때문에 해메는 경우가 많잖아." 어는 데뷔전의 여파에서 천천히 벗어나기 시작하고, 아스날 팬들에게 사랑 받지는 못해도 존중은 받게 된다.

  어의 악몽 같은 데뷔전이 있고 13년 후, 후배 스코틀랜드 선수 윌리 영이 1977년 3월 입스위치 전에서 관중들에게 첫 인사를 올린다. 입스위치의 기민한 공격수였던 트레버 와이마크와 존 워크는 시즌 내내 상대팀 수비수들을 괴롭혀왔고 영은 두 달여간 공식 경기를 뛰지 못 했다. 영은 폴 마리너와의 공중전에서 시종일관 밀리기 시작하며, 안 좋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은 악몽 같은 경기를 보냈고, 감독 테리 닐은 이렇게 말하였다. "펠레, 베스트, 그리고 거슨을 합쳐 놓은 것처럼 경기하려 하였건만, 자신이 14스톤[각주:1] 짜리 스코틀랜드 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지."

  갈린 앞니 사이로 소리를 내며, 영이 데뷔전을 회상했다. "몸이 덜 만들어져 있던터라 경기 전부터 감이 좋지 않았어. 경기를 오래 뛰지 못해서 달리거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어도 날카로움이 부족하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되거든. 입스위치는 강한 팀이었지만, 세 골 다 내 책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 두 번째 골은 완전히 공이 튀기는 방향을 잘못 짚어서 헛발질을 했고, 존 워크가 슬금 들어와 득점했으니까. 그 순간에는 그냥 그대로 쓰러져서 다시는 못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었지." 윌리와 그의 새 팀메이트가 고개를 수그리고 터널로 퇴장하자, 시끄러운 야유가 한 바탕 쏟아졌다. ("그 상황에서는 그럴만하지. 다 이해해.") 하이버리 관중들이 데뷔 선수에게 이렇게 가혹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는 아스날에서 겨우 90분만에 금기를 두가지나 범하고 말았다. 첫 번째, 관중들이 박수를 쳐주었을 때 알아주지 않았다. 영은 인정했다. "정말 관중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몰랐어. 경기에 정신이 뺏겼거든. 하지만 관중들에게 아무 반응 하지 않은 것은 내 실책이 맞겠지." 그리고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하게도, 윌리는 토튼햄에서 왔다.

  아스날 팬인 트레버 바로우는 영이 아스날에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처남이 전화를 했어요. '아스날이 중앙 수비수를 데려왔는데, 누군지 절대 못 맞출걸요.'라길래 저는 아는 이름을 쏟아냈죠. 테리 부처? 그때 한참 뜨는 선수였으니까요. 데이브 왓슨? 앨런 핸슨? 다들 그를 파틱 티슬 FC에서 빼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으니까요. 저는 계속 선수들 이름을 불렀고 결국 처남이 '이러다가 날 가겠네요. 윌리 영이에요.'라길래 나는 '윌리 영이라니…그 씨발 윌리 영?'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믿기지가 않았어요. 북런던 더비에서 프랭크 스테이플턴을 발로 차고 퇴장 당했던 놈이 온 거라구요. 스퍼즈가 필요가 없어 내친 것을 우리가 주워먹었다는 것이잖아요! 아니 대체 무슨 일이냐 싶었죠. 그리고 입스위치와 경기를 했구요. 우리 모두 제프 블로클리의 재림이라고 믿었죠. 게다가 움직이지도 않는 제프 블로클리요. 영이 한 2주 버티다가 못 견디고 스코틀랜드로 꺼질 줄 알았어요."

  입스위치 전이 끝나고 영은 클락 엔드 뒤쪽에 주차되어 있던 자가용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화난 아스날 팬이 나타나 그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온갖 말을 다 하더라. 좆 같은 놈이라느니, 스코틀랜드 쌍놈이라느니. '쓸데없는 새끼, 스퍼즈로 다시 꺼져라 제발.'이라더군. 그런 말에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영은 그 순간 참았던 성질이 터졌다. "난 내 가족이 있고,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도 하등 없어. 그래서 꺼지지 않으면 목을 비틀어버리겠다고 했지. 그 놈은 금새 사라지더라고. 내 할 말을 확실히 하긴 했지만, 앞으로 아스날 팬들에게 인정받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어."

  3주 후, 아스날이 스퍼즈를 맞게 되었을 때도 영의 활약은 여전히 미미했다. 이슬링턴 가제트 지에서는 영이 '하이버리에서의 힘겨운 삶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아스날 선수단이 2시 55분 피치에 나타났을 때, 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두 팀 모두의 팬에게 나온 반응이 참 독특하다 할만 하겠다. 영이 말했다. "나는 런던 더비에서 양팀 팬들에게 모두 야유 받은 첫 번째 선수일 거야. 아스날 팬들은 나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경기를 지게 생겼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고, 스퍼즈 팬들은 내 충성심을 가지고 비야냥댔고. 허나 지금 돌아보면, 하이버리 생활의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어. 이상한 것이, 아스날 팬들은 솔 캠벨이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말아먹었을 때는 참 따듯하게 대해줬잖아. 활약을 기대하면서 말야."

  말콤 맥도날드의 극적인 결승골 덕에 아스날은 1-0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아무도 윌리가 가장 빛나는 선수였음을 의심치 않았다. 경기 시작 10분 후, 스퍼즈의 공격수 피터 테일러와 제리 암스트롱은 영의 치열하고 강력한 몸싸움에 밀려 잔디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30분 후, 그의 머리가 글렌 호들과의 공중전에서 부딛혀 머리가 찢어졌고, 그는 치료를 받으러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10분 후, 윌리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다시 나타났다. "폴티 타워즈의 '독일인들'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었잖아. 거기서 바실 폴티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 다시 아수라장으로 돌아온 그는 스퍼즈 선수들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테리 닐이 설명햇다. "윌리는 그날 대단했소. 아스날 팬들이 조금만 참을성만 가지면, 데이비드 오리어리의 좋은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보통은, 발 빠른 데이비드가 모든 것을 처리하지만, 공이 위로 뜨면 윌리가 해결해야 했지. 그리고 윌리는 늘 열심히 뛰었으니. 스퍼즈 전이 끝나고, 아스날 팬들에게 '우리 팀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는 메세지를 받았다고 하더군. 아스날이 (결국 실패했지만) UEFA컵 진출을 노리고 있었고, 영은 응원가도 만들어졌소.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윌리가 이 곳에 있다네.'가 그중 하나지만 대부분 팬들은 '윌리, 윌리'라며 간단하게 함성을 쳤지. 특히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난전을 벌이고 있을때 말이오."

  모든 아스날 팬들이 문제만 생기면 공을 관중석으로 걷어차는 습관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리 칠버스가 회상했다. "버밍엄과의 홈 경기가 있었는데, 윌리 영이 경기 내내 이스트 스탠드 1층으로 공을 걷어냈어요. 1분 정도 남았을 때, 내 친구에게 말 좀 걸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빵! 걷어낸 공이 얼굴에 맞은 거에요. 안경알은 가루가 되고,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어요. 머릿속이 지끈지끈하고, 제 주위에서는 다들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리더군요. 부끄러웠지요. 집에 오니 어머니가 화가 잔뜩 나셨어요. 공에 맞아서 그리 될리가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한 동안 축구장에 못 가게 하셨죠. 제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싸움에 휘말렸다고 믿으셨으니까요. 30년이나 흘렀는데, 아직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으셔요. 빌어먹을 윌리 영!"

  그 후 몇년간, 영의 전설은 피치 밖에서도 이어졌다. ("맥주 한잔, 쓸데없는 싸움, 닐과의 불화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윌리는 행복했죠." 앨런 허드슨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컬트 히어로의 위상도 높아졌다. 영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붉은머리 스코틀랜드 인을 아스날에서 볼 날은 없을 거야. 테리 만시니 같은 대머리는 어림도 없지. 요즘 선수들은 다 똑같잖아. 난 다르다구." 분명 그는 그러했다. 굳이 아스날 팬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극적으로 뒤집었기 때문이 아니라도. 때때로, 악당들이 영웅이 되곤 한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영국의 무게단위. 1스톤은 약 6.3kg 정도다. 따라서 14스톤이면 대략 90kg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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